“승계작업 없었다”는 삼성 거드는 공정위… 文의 큰 그림인가?

동일인 변경 계획 발표로, 경영권 승계작업 사실상 부정한 공정위

승계작업 필요성 및 존재 없어지면… 부정한 청탁도 사라져

‘하필 이 시기’ 삼성 도움 되는 행보 나선 김상조… 文 정부, 삼성에 기대하는 것 때문(?)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선고공판을 앞두고 의외의 행보를 보이며, 다양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재용(50·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의 동일인을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할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동시에 공정위의 이번 발표가 항소심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정위의 계획대로 현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총수로서 지정된다면, 이 사건 혐의 중 핵심 부분이 무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9월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삼성그룹과 롯데그룹의 총수를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김상조 위원장은 그룹 내 실질적인 경영지배권을 가지는 동시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체 지정하는 동일인(총수)은 사망 이후 변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 부분을 현실에 맞게 변경하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이건희(76) 회장은 와병으로 병석에 누워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또 신격호(96) 회장 역시 고령과 지병으로 총수로서의 의사결정에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다수를 이루면서, 이미 지난해 3월 롯데그룹 모든 계열사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사망하거나 경영권에서 완전한 영향력을 잃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상조 위원장은 조만간 이들의 ‘후견인’들을 각 그룹의 동일인으로 지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달 26일 ‘2018 업무계획’을 통해 오는 5월부터 삼성과 롯데의 동일인 변경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삼성의 총수를 기존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그리고 롯데의 총수를 기존 신격호 회장에서 신동빈(63) 롯데그룹 회장으로 각각 변경 지정하겠다는 의미였다.

공정위 측은 이를 통해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를 보다 강화해,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던 재벌개혁 과제에 속도를 내겠다는 목표다.

신동빈 회장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그룹 내 실질적 총수로서 인정을 받아왔고, 지난해 12월 경영비리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경영권 공백 우려를 불식시켰다.

때문에 롯데그룹 측에 대한 이번 공정위의 발표는 예정된 절차라는 데 큰 이의가 없는 상황이다.

반면 삼성그룹의 경우에는 ‘왜 하필 이 시점에’라는 의문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 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 결과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고, 공정위가 이재용 부회장을 사실상 삼성의 총수 자격으로 인정했다는 점은 이번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이재용 부회장은 최지성(66)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부회장과 장충기(63) 전 미전실 사장 등 전직 임원들과 함께 뇌물공여와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상황이다.

이 사건 1심 재판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66·구속기소) 전 대통령과의 세 차례의 단독면담을 통해 자신의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청와대가 도움을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했고, 그 대가로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62·구속기소)씨에게 승마지원 및 영재센터 지원 등 뇌물을 제공한 것을 유죄로 판단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연합)
특히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측 피고인들이 최씨와 박 전 대통령 간의 공모관계를 인식한 채 지원에 나섰고, 이재용 부회장이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으로부터 지원 경위에 대해 보고받은 뒤 이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뇌물공여 행위 전반에 관여했다고 판시했다.

물론 당시 재판부의 판결은 여러 논란거리를 남긴 채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이 논란거리 중 이 사건 항소심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인 한 가지는 바로 ‘경영권 승계작업의 유무’였다.

이재용 유죄 이끈 ‘승계작업 존재의 인정’… 공정위는 정반대로(?)

이 사건 공소사실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최씨 측에 뇌물을 제공한 경위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신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특검 측이 공소사실에 적시한 이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한 주요 개별현안은 네 가지로,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이었다.

특검 측은 이재용 부회장 측이 이 네 가지 개별현안 각각에 대해 박 전 대통령에 명시적·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개별현안 각각에 대한 부정한 청탁이 이뤄졌다고는 보지 않았다.

단지 재판부는 삼성그룹 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작업이 추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특검 측이 제시한 각각의 개별현안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 등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판단한 승계작업이란,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라는 목적 아래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개별현안들을 포괄한 것이 승계작업이며, 특검 측이 제시한 개별 현안들 사이의 진행 순서에까지 그 개념의 범위가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말대로라면 이재용 부회장은 네 가지 개별현안 각각이 아닌, 이들을 합한 포괄적 현안의 해결을 위해 박 전 대통령 측에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고, 동시에 승계작업을 추진했다는 설명이었다.

승계작업이라는 것을 원인으로 두고, 부정한 청탁 및 현안 해결을 과정 그리고 승계를 결과로 본다면 여기서 한 가지 변수가 생기게 된다.

바로 이재용 부회장에게 당초 승계작업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진다면, 당연히 승계까지의 연결선상에 있는 부정한 청탁의 필요성과 존재 역시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당시 삼성그룹 내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승계작업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한다면, 이 사건 1심 재판부의 판단 역시 위법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 또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역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뇌물공여 등 사실상 모든 혐의가 무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정위의 이번 발표는 인위적 승계작업이 없이도,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동일인 지정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
그런데 이번 공정위가 발표한 삼성그룹의 동일인 변경 계획은 이런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사실상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에게 승계작업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이 승계작업이 완료되지도 않은 현 상태에서 그에게 공정거래법상의 총수지위를 준 꼴이 되기 때문이다.

김상조 위원장과 공정위 측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으로서의 지위가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위해 인위적 절차, 즉 승계작업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동일인은 회사 내 주요 의사결정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구성원으로서 특정 시점에서 자신이 보유한 지분과 선대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은 지분 등을 통해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선대가 후대를 위해 단순히 지분을 넘겨주고 상속·증여해 그의 재산이나 의결권이 높아진 것만으로는 동일인 성립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

중요한 부분은 바로 기업 내 의사결정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 주주와 사내 임직원들로부터 그 지위를 실질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한 지분 확보만이 아닌 경영 능력 등 개인적 역량을 내외부에서 인정받아야지만 완전한 승계가 이뤄졌고,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그 역량이 부족해 주주와 사내 구성원 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면, 승계작업이라는 인위적 절차를 통해 부족한 지배력을 보완 및 강화해 나갈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미 기업 내 자신의 지분이나 의결권 등이 충분히 확보됐고, 주주와 임직원들, 나아가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상태라면 굳이 승계작업의 필요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공정위, 사실상 승계작업 부정… 고민커지는 항소심 재판부

당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의 필요성을 인정했던 1심 재판부 그리고 특검 측 공소사실은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 삼성 내 보유 지분이나 개인적 역량이 부족해 승계작업을 추진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이번 공정위의 발표는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작업 없이도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으로서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앞선 네 가지의 개별현안의 해결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이미 끝났고 때문에 공정위가 이 부회장을 동일인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이는 삼성 지배구조에 대해 부족하게 인지하고 있는 이들로부터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오해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해 1심 판결에서 인정한 포괄적 승계작업을 통한 승계란 네 가지 개별현안의 합(合)으로만 이뤄질 수 없다.

어느 대기업 집단에서나 승계작업이 필요할 경우 후견인에게 부족한 개별현안이 해결돼야 하는데 이는 1심 판결처럼 순서도 없는 무작위가 아닌, 순차적 작업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는 삼성 측 변호인들 역시 이 사건 항소심에서 강력히 주장했던 내용이다. 경영권 승계작업은 개별현안을 순차적으로 해결한 뒤, 플러스알파(+α)로서 최종 목표를 담은 마스터플랜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
흥미롭게도 특검 측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1심 재판부의 판결과는 다르게 그 최종 목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담았다.

실제로 공소사실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에 대한 최종 목표로서 중간금융지주회사와 이것의 전제가 되는 삼성전자의 일반지주사를 제시했다.

심지어 김상조 위원장도 이 사건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 승계작업의 핵심 목표에 대해 삼성전자의 일반지주회사 전환이라는 부분에 대해 동의한 바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 문제는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등으로 결국 백지화된 바 있고, 그렇다면 경영권 승계작업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현 상황에서 공정위가 이재용 부회장을 삼성의 동일인으로 지정했다는 점은 그에게 경영권 승계작업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이 당시 보유 지분이나 의결권을 비롯해 개인적 역량마저 부족해 경영권 승계작업이 필요했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특검 측 공소장이나 1심 판결문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 수준이 부족했다는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나타나 있지 않았다.

당시 삼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이건희 회장 다음으로 삼성의 경영권을 넘겨받을 인물이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이들은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난 2016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지분구조는 외국인 지분율이 약 54%로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일가와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등의 내부 지분율은 약 18%를 유지했다.

지난 1998년 삼성전자의 내부 지분율 약 16.5%보다 높아진 상태로, 공정거래법상 해임·정관 변경 등 예외적인 경우를 포함하고서라도 총수일가,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등이 최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내부 지분율인 15%를 이미 넘어선 상태였다.

특히 그룹 내 또 다른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경우에는 내부 지분율이 무려 52%로, 국내 다수의 상장 보험사 및 기타 금융사가 20% 남짓한 내부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통상 총수일가와 특수관계인 등의 내부 지분율이 50% 이상이면 ‘확고한 지배’에 포함되는 만큼 삼성생명의 내부 의결권 지분은 충분하고도 확고한 상태였다.

52% 중 20.7%가 이건희 회장의 지분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여기서 20%의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여전히 30% 이상의 내부 지분율을 보유하면서, 최대치까지 의결권 행사가 가능했다.

물론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아직 삼성의 동일인이 되기에는 개인 역량이 부족해 승계작업이 필요했다는 목소리도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 내 최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지난 1991년 입사해 2009년 부사장으로 그리고 2012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미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전부터 삼성전자라는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의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공정위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고, 이번 동일인 변경 계획 발표에도 이 부분이 충분히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이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흘 앞둔 상황에서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필요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공정위의 발표는 끝까지 재판부를 고민에 빠지게 할 전망이다.

단순히 변호인이나 언론 또는 민간기관에서 밝힌 것이 아닌 공정위에서 판단한 내용인 만큼, 재판부가 1심 판결과는 다르게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문재인 정부의 눈 밖에 난 상황이고, 김상조 위원장도 취임 초기부터 삼성을 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봤고 공정위 차원에서 압박을 예고했다.

때문에 이번 항소심 재판 결과에 있어 삼성 측에 유리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정위의 행보를 선뜻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의 큰 그림이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17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참여연대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
공정위 차원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이쯤 하면 됐다’는 결론을 내리는 한편, 현재 여당과 금융당국에서 크게 문제시하고 있지만 삼성과 일부 은행권들로부터 상당한 반발을 사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에 대해 삼성 측의 협조적 판단을 바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2월 5일로 예정돼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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