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자’였나, ‘전달자’였나, 檢의 명확한 판단 결여 지적한 禹

우병우, 검찰 측 중형 구형에 ‘정치보복’ 주장

禹, 자신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헌법재판소 판례 인용… “명확성 원칙에 위반”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한 ‘전달자’일 뿐이었다는 禹, 재판부 받아들일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우병우(51·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에게 주어진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한 단순한 전달자였을 뿐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특히 검찰이 직권남용죄에 대한 명확성 원칙을 위배했다며, 팽팽한 법정공방을 이어갔다.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우 전 수석에게 징역 8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최종의견을 통해 “피고인(우병우)은 민정수석이 가진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감찰권을 남용했으며, 본연의 감찰업무는 외면해 국가 이익을 심각하게 저해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반성하기보다 모든 책임을 위로는 대통령에게 아래로는 민정비서관과 직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 측도 양형사유를 설명하면서 엄중한 책임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만큼, 징역 8년형은 보통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 혐의에서 주어지는 양형보다 다소 엄격한 측면이 있었다.

이에 우병우 전 수석은 자신의 최후진술에서 검찰 측 구형량에 대해 지나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 전 수석은 “저도 20년 이상 검사로 근무했지만, 만약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라 하더라도 8년이라는 구형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라며 “구형까지 8년이라고 하는 것은 표적수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저로서도 이런 일련의 상황이 과거 제가 검사로서 처리했던 사건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이번 구형과 현재 자신에게 추가로 기소를 한 부분에 대해 현 정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정치보복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날 재판에서 우 전 수석의 ‘정치보복’ 발언과 함께 이목을 끈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이 사건 재판에서 우 전 수석에게 적용된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에 관한 의견이었다.

검찰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8년형을 구형했다. (사진=연합)
우 전 수석은 최후진술에서 “청와대 내 일상적 업무가 직권남용으로 이뤄져 기소됐다는 것이 당황스러울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지난 2006년 판례를 들어 직권남용의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추상적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해석 역시 추상적 내용만을 제시할 뿐 직권남용의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수사기관이 그 위법행위를 명확히 인식해 어떤 행위가 어떤 법률조항에 해당하는지 일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 전 수석은 “(직권남용죄가) 이른바 정권교체에 이용되며, 고위공직자들을 상징적으로 처벌하는데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라며 “이 사건 법률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우 전 수석은 앞서 자신이 인용한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무슨 의미인지 1년 전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 측은 우 전 수석에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그가 박근혜(66·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과 민정수석으로서의 권한을 뛰어넘어, 행정부처 인사에 대한 부당한 조치를 취하거나 비선실세 최순실(62·구속기소)씨의 이권 챙기기에 협조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우 전 수석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과장들에 대한 세평을 수집해 관련 사항을 대통령에 보고한 뒤 이들 국과장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지시받고, 문체부 장관에 명확한 사유를 알리지도 않은 채 사실상 좌천성 인사조치를 요구 또는 강요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행정기관 공직자에 대한 복무 점검 및 직무 감찰을 할 권한은 있지만, 이들에 대한 인사조치 권한은 대통령의 지휘·감독 아래 각 부처 장관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 전 수석 측 역시 탄탄한 방어논리로 마지막까지 맞섰다. 앞서 언급한 직권남용죄에 대한 명확성 원칙의 위배를 강조하면서, 해당 국과장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실행’한 것이 아닌 단지 ‘전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들어 권한을 남용해 인사조치의 실행을 강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 지시를 단순히 전달했을 뿐인지, 검찰 측에서 객관적 증거를 들어 일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꼬집으며 이 부분의 명확성의 원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우 전 수석 및 민정비서관으로부터 국과장들에 대한 인사조치 전화를 받았다는 김종덕(60·구속기소)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53·구속기소) 전 문체부 1차관 역시 당시 지시사항을 우 전 수석이 아닌 대통령의 지시라고 받아들였다고 증언한 부분이 자신의 주장의 근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우 전 수석 자신은 인사조치의 실행자가 아닌 전달자로서 직권남용 당사자에 해당할 수 없고, 검찰 측도 우 전 수석이 전달자가 아닌 실행자라는 주장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예상대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측의 대응논리는 빈틈이 없었다. 재판부가 선고 마지막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사진=연합)
또 우 전 수석 측은 모든 조치사항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보고했고, 이행한 지시사항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 지적받은 문제가 없는 만큼, 정해진 업무 프로세스를 지켰다는 설명이었다.

설령 그 지시사항이 불법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불법적 인사조치에 대한 지시를 실행한 김종덕 전 장관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기소되지 않은 점도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우 전 수석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해 직권을 남용한 실행자인지, 단순한 전달자인지, 재판부의 판단에 벌써부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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