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적 청탁 폭탄 맞은 신동빈… 이재용, 승계작업 존재 재차 부정돼

이재용 1심에서 발목 잡은 묵시적 부정한 청탁, 신동빈 유죄 판결 근거로

재판부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신동빈 측 부정한 청탁 대상으로 인정

삼성재판 핵심 쟁점 ‘경영권 승계작업 유무’, 벌써 두 번째 부정… 이재용에 유리해진 상고심

신동빈(왼쪽) 롯데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희비가 엇갈렸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2·구속기소)씨와 박근혜(66·구속기소)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신동빈(63·구속기소) 롯데그룹 회장에 실형이 선고됐다. 이는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순실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같은 사건의 피고인으로 기소된 신 회장에 내려진 유죄 판결이었다. 갑작스러운 신동빈 회장의 경영 공백으로 롯데 내부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날 재판으로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 측은 수혜를 입게 됐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본지 기자는 이날 선고공판이 시작되기 직전, 재판정 주변 화장실에서 홀로 들어오는 신동빈 회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기자는 바로 옆에 선 신동빈 회장에게 인사하며 일본말로 “고생하십니다.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ご苦ろう樣です。無罪になると思いますか。)”라고 물었다.

이에 신 회장은 기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은 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의 일본어로 “글쎄(さあ)”라고 답했다.

신동빈 회장은 선고결과 예측에 대한 확답은 피했지만, 심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유로운 분위기가 강했다.

특히 신 회장과 같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최근 항소심 선고에서, 법원이 “최고 권력자의 겁박이 삼성의 뇌물공여로 이뤄졌다”고 판시하며 감형 및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역시 대통령이라는 권력자의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뇌물을 건넸다는 점 그리고 그동안 롯데가 국가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 부분 등이 반영돼 비교적 관대한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날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뇌물 범죄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엄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라며 “그것이 정치권력의 최상위 층에 있는 대통령 그리고 재벌기업 회장 사이에서 이뤄지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판단된다”며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수동적으로 응했다는 점을 특별 감경요소로 감안하더라도, 신 회장에게 권고되는 형량은 징역 2년부터 3년 사이라면서 그에게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아마도 신동빈 회장과 롯데 측이 절실히 바라고 있던 “다만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라는 말을 재판장은 끝끝내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는 신 회장 측이 K스포츠재단에 공여했다가 돌려받은 뇌물액 70억원을 추징하겠다고 덧붙였고, 재판이 끝난 뒤 신 회장은 법정구속돼 즉시 구치소로 향했다.

재판부는 이날 신동빈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판결하면서,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단독면담에서 뇌물을 요구받고 ‘묵시적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에 따르면, 최순실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모해 롯데그룹 측에 최씨가 실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출연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1차로 45억원을 출연한 바 있고, 이 70억원의 추가 출연금은 최씨가 추진했던 하남 5대 거점 체육시설 건립 사업의 자금으로 사용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지난 2016년 3월 14일 박 전 대통령은 신동빈 회장과 청와대에서 단독면담을 가지며, 하남거점 체육시설의 건립자금을 위해 롯데그룹의 K스포츠재단에 대한 70억원의 추가 출연을 요구했다.

선고재판 직전 본지 기자가 만난 신동빈 회장은 매우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진=연합)
신동빈 회장은 대통령의 뇌물공여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당시 신 회장 자신과 롯데그룹의 최대 현안이었던 월드타워 면세점의 특허 신청과 관련된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리해 보자면, 최순실씨가 뇌물의 최종 수수자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 뇌물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수수하는 사람이다. 또 신동빈 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에 관한 부정을 청탁을 하면서 뇌물을 공여했다는 설명이었다.

검찰 측은 이 부분 공소사실이 제3자 뇌물수수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제3자 뇌물수수죄는 단순 뇌물죄와는 다르게, 앞서 언급했듯이 수수자인 공무원이 수뢰자(제3자)로부터 자신의 직무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받아야 성립할 수 있는 범죄다.

기존 대법원 판례와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사건 1심 판결에서도 밝혀졌듯이, 이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 의사표현을 물론이고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해서도 성립 가능하다.

물론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뇌물 수수자와 수뢰자 사이에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의 내용 그리고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그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양해가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신동빈 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의 단독면담 자리에서 월드타워 면세점 관련 현안에 대한 명시적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는 보지 않았다.

비록 당시 단독면담을 위해 준비된 대통령 말씀자료에 월드타워 면세점과 관련된 내용이 기재돼 있었지만, 이는 단순한 말씀참고자료에 불과해 박 전 대통령이 면담 시 이를 반드시 언급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단독면담 직후 신 회장과 나눈 이야기를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은 안종범(59·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그 사항을 기재한 업무수첩에는 롯데 그리고 면세점과 관련된 내용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때문에 단독면담에서의 명시적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묵시적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되기 충분해”

다만 재판부는 신동빈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의 묵시적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바라봤다.

재판부는 당시 롯데그룹의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신청이 신동빈 회장에게 얼마나 중요한 현안이었는지 그리고 단독면담을 전후로 신 회장과 롯데그룹 측의 K스포츠재단 자금 지원에 대한 행보에 주목했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은 지난 2015년 8월 호텔롯데 상장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일본 주주 지분을 낮춤으로써, 롯데가 일본 기업이라는 인식을 덜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이에 신 회장은 호텔롯데를 비롯해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기 에, 당시 신 회장에게 있어 호텔롯데의 상장은 분명히 중요한 현안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난 2015년 11월 월드타워 면세점이 특허 심사에서 탈락했고, 호텔롯데에서 면세 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과 월드타워점의 면세 사업부에서의 큰 비중을 봤을 때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신청은 롯데그룹에게 더욱 중요한 현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재판부는 당시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신청이 롯데그룹뿐만 아니라 신동빈 회장 개인에게도 중요하면서 시급히 해결돼야 할 현안으로 바라봤고, 이후 롯데그룹 측이 청와대와 국회, 관세청 등과 접촉해 이를 위한 노력을 해온 점을 참고했다.

또 신동빈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단독면담이 이뤄지기 사흘 전인 2016년 3월 11일,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신동빈 회장이 안종범 전 경제수석과 만나 면세점 관련 이야기를 했고, 안 전 수석이 이를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점을 지적했다.

물론 신동빈 회장 측은 기존 공판에서부터 당시 안 전 수석에게 면세점과 관련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재판부는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동빈 회장의 독대 자리에서 오고간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 판단했다. (사진=연합)
그러나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이 검찰 수사과정에서부터 이 부분에 대해 비교적 뚜렷이 기억해 일관되게 진술해 왔고, 당시 롯데그룹 내부에서 안 전 수석을 면세점 특허 취득을 위한 집중 설득 대상자로 파악하고 있었던 점을 들어 신동빈 회장 측 해명에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단독면담을 마친 직후 신동빈 회장이 회사로 돌아와 고(故)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을 만나 K스포츠재단 지원 관련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어 이인원 부회장이 이석환 롯데그룹 상무에게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올 것이라며 사업제안을 챙겨보라고 지시했고, 계속해서 협상 과정을 지켜봤던 점에 주목했다.

결국 롯데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출연했고, 이 재단에 추가 자금을 출연했던 기업이 롯데가 유일하다는 사실은 단독면담 자리에서 뇌물요구와 청탁이 오고갔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는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안종범 전 수석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신동빈 회장과의 단독면담 시 하남 거점사업에 관해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자신으로부터 롯데그룹의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와 관련된 보고를 수차례 받았고, 이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단독면담 자리에서 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된 묵시적 부정한 청탁이 오고갔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고, 이에 롯데그룹 측이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원은 뇌물로 볼 수 있어 그 혐의가 유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단독면담 시 신동빈 피고인에게 K스포츠 재단에 대한 추가지원을 요구했고, 신동빈 피고인의 경우에도 당시 여러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을 확신할 수 없었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신동빈 피고인이 롯데그룹의 현안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상, 사실상의 영향력, 또 그와 같은 대통령의 영향력이 롯데그룹에 유리한 방향으로 행사될 것이라는 기대를 주된 고려 요소로 삼아 K스포츠재단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 사건 뇌물공여 범행은 면세점을 운영하거나 면세점 특허를 취득하려는 경쟁 기업은 물론이고, 정당한 경쟁을 통해 국가로부터 사업 인허가를 받거나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기업에 허탈감을 주는 행위”라며 “대통령의 요구가 먼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70억원이라는 거액의 뇌물을 공여하는 피고인을 선처한다면 어떤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실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다소 위협이 따르지만, 손쉽고 보다 직접적 효과가 있는 뇌물공여라는 선택을 하고 싶은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엄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동빈 재판부도 부정한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작업 존재’

이날 선고공판 이후, 당연히 롯데그룹 측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이 신동빈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이 법정구속 되면서 일본 롯데홀딩스가 이사회 등을 통해 그의 대표이사직 해임을 의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과 함께, 심지어 이번 판결에서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 지목된 롯데그룹의 면세점 특허에 관한 관세청의 취소 검토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면, 같은 국정농단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삼성 측은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는 지적이다. 이번 판결 내용이 이재용 부회장 등에 감형이 내려진 항소심 재판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이 경영권 승계작업은 특검 측이 공소사실에 적시한 대로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단독면담 자리에서 뇌물을 요구받으며 제시한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다. 신동빈 회장의 경우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제3자 뇌물수수죄로 기소됐고, 때문에 수뢰자로 지목된 이 부회장이 부정한 청탁을 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할 수 없었다.

최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
당연히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 유무는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사건 재판에서 최대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삼성 측은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를 부정해 왔지만, 원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이 있었다고 판단해 유죄로 판결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이 있었다고 볼 수 없었다고 판단하면서, 부정한 청탁의 존재가 부정됐고 관련 혐의들이 줄줄이 무죄로 결론이 났다.

이 사건 재판부 역시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단독면담에서 당시 삼성그룹과 이 부회장 자신의 주요 현안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물론 재판부는 당시 삼성그룹에 승계작업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승계작업의 개념이 보다 명확해야 하며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돼야 하지만, 특검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재판부는 “설령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그 개념과 내용을 뚜렷이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관한 자신의 직무집행이 삼성그룹에 대한 지원 요구와 대가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특검이 주장하는 개별현안에 대해 명시적 또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데, 그 개별현안을 구성요소로 하는 포괄적 현안이라는 승계작업에 대해서도 명시적 또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밝혔다.

삼성 측은 이번 최순실씨 및 신동빈 회장 등에 대한 판결에서 나온 이재용 부회장 등의 혐의 관련 부분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건 재판에서도 핵심 쟁점인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가 부정되면서,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삼성 측에 상당히 유리하게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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