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 핵심 공소사실 ‘문체부 살생부’… 억울하다는 禹, 의혹 벗을까

우병우 직권남용 혐의 핵심 공소사실, 문체부 국과장 좌천성 인사조치 의혹

檢 “대통령 결재 편취한 민정수석의 명백한 직권남용” 주장

“대통령 지시를 성실히 수행했다”는 禹… ‘실행자’아닌 ‘전달자’로 의혹 벗을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관련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달 29일 오후 결심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우병우(51·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가 일주일 안으로 다가왔다. 본래 재판부는 지난 12일 이 사건 재판에 대한 선고공판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설 연휴를 앞두고 오는 22일로 선고 연기를 결정했다. 앞서 지난 달 29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에게 징역 8년형을 구형한 바 있다. 이날 우 전 수석 측은 검찰 측 모든 공소사실에 설득력 있는 근거를 들어 반박해 내며, 재판부를 더욱 고민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6월 16일, 이 사건 재판의 첫 증인신문부터 거의 매 재판 방청에 빠짐없이 참석해 취재를 해왔던 본지 기자는 선고공판을 앞두고, 이 사건 공소사실별로 그동안의 재판 내용을 되짚으며, 우 전 수석에게 주어졌던 의혹과 판결의 향방에 대해 독자들과 논해보고자 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제1항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과장에 대한 좌천성 인사조치를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일부 언론에서 이를 우 전 수석의 ‘문체부 살생부’로 표현하면서, 그에게 주어진 여러 직권남용 혐의들 중 대표적 사건으로 알려진 상태다.

해당 공소사실에 대한 재판 증인신문을 위해 다수의 전현직 문체부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고, 그 중에는 김종덕(61·구속기소) 전 문체부 장관과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 정관주(54·구속기소) 전 문체부 1차관 그리고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김종(57·구속기소) 전 문체부 2차관과 그의 문체부 내 측근 윤 모 과장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우 전 수석의 지시로 좌천성 인사조치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 문체부 국과장들도 증인으로 출석해 장시간 동안 상세한 증인신문 과정을 거쳤다.

그만큼 검찰 측은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문체부 인사개입 및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려 노력했고, 변호인 측과 결심공판까지 치열한 법정공방을 이어갔다.

이 사건 공소사실과 증인신문을 통해 밝혀진 사실에 대해 정리해보면, 모든 것은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2·구속기소)씨에서 비롯된다.

지난 2016년 1월말에서 2월초 사이, 최순실씨는 김종 전 차관과 만난 자리에서 “박민권 문체부 1차관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알아봐 달라”라는 취지의 부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문체부 내 주요 인사들을 김종 전 차관 중심으로 맞춰, 문체부에서 추진하는 각종 사업을 편취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서 박민권 전 1차관은 최씨 입장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박 전 차관은 최씨가 실소유 했던 것으로 알려진 미르재단의 설립 그리고 블랙리스트 관여에 소극적인 편이었고, 오히려 블랙리스트 인사들을 구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최씨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

최씨의 부탁을 받은 김종 전 차관은 앞서 언급했던 자신의 문체부 내 측근이었던 윤 모 과장과 문체부를 출입하던 국가정보원 연락관을 통해 박민권 전 차관의 문제점과 기타 정보를 수집했고, 이를 수시로 최씨에 구두 전달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씨. (사진=연합)
당시 김종 전 차관이 윤 모 과장 등으로부터 들었던 박민권 전 차관의 문제점은 그가 문체부 내 파벌을 만들어 동향·동문 인사를 특별히 챙긴다는 점이었다. 또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행사인 프랑스 장식 미술전의 개최 무산에 책임이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물론 향후 당사자들이 직접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부분이 상당했다. 단순히 김종 전 차관이 소수의 문체부 인원들로부터 접한 뒤 작성한 일방적 세평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최씨는 박민권 전 차관의 문제점에 대해 접한 지 얼마 뒤 김종 전 차관에 전화해 “정관주를 아는가, 정관주가 문체부 1차관으로 내정됐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비슷한 시기인 2016년 2월 26일 오후, 박민권 전 차관은 김종덕 전 장관으로부터 한통의 연락을 받는다. 박민권 전 차관의 법정증언에 따르면, 당시 김종덕 전 장관은 “나도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차관님을 그만두시라고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덕 전 장관은 박민권 전 차관의 경질에 대해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고, 결국 박 전 차관은 다음 날인 2월 27일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인 2016년 2월 28일 문체부는 새로운 1차관으로 정관주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이 내정됐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주목해볼 점은 박민권 전 차관의 경질과 정관주 전 차관의 내정 바로 직전의 최씨와 김종 전 차관의 행보였다.

최씨는 2월 26일 오전, 김종 전 차관에 전화를 걸어 박민권 전 차관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정리해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김종 전 차관은 윤 모 과장 등으로부터 들었던 박민권 전 차관의 문제점을 컴퓨터 워드로 다시 정리해 메모 형식으로 출력했고, 이것이 앞서 언급했던 ‘문체부 살생부’의 초안이 됐다.

다음 날인 2월 27일, 김 전 차관은 해당 메모를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39·구속기소)씨에게 건넸다. 장씨는 같은 날 곧바로 이를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넘겼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종 전달돼 박민권 전 차관의 경질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종 전 차관은 해당 메모에 오로지 박민권 전 차관의 문제점에 대해서만 기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 전 차관의 법정증언에 따르면, 그는 당시 윤 모 과장으로부터 들었던 문체부 내 ‘박민권 라인’의 국과장급 세 명의 인사 그리고 김종덕 전 장관과 동향인 과장급 인사 한 명과, 보좌관 한 명, 총 다섯 명의 문제점에 대해 메모에 정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사진=연합)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박민권 라인’ 등 문체부 내 파벌의 실체는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었다. 또 메모에 언급된 국과장들 다수는 윤 모 과장이 개인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거나 경계한 인물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박민권 전 차관은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문체부 내 파벌 형성과 박민권 라인 등에 대해 “전혀 가당치도 않고, 사실과 다른 부분을 왜곡한 것”이라며 “(박민권 라인은) 실체가 전혀 없었고, 사악한 몇몇 사람들이 조직을 흔들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가공한 내용”이라고 증언했다.

사유도 명분도 없었던 인사조치

검찰 측은 박민권 전 차관의 경질에 대해 최순실씨와 김종 전 차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점은 공소사실에 제대로 적시하고 있었다. 다만 우병우 전 수석이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심은 하고 있지만’, 공소사실에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았다.

검찰 측이 우 전 수석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부분은 문체부 살생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까지 전달된 것으로 나타난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김종 전 차관이 정리한 메모에 적시됐던 다섯 명 외에 다른 세 명의 국과장들을 더해, 우병우 전 민정수석 측에 이들에 대한 문체부 내 인사 난맥과 파벌의 실체 등에 대한 복무점검을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추가된 세 명의 국과장들은 역시 박민권 전 차관과 동향·동문이거나, ‘비(非) 김종 라인’으로 김 전 차관 그리고 윤 모 과장과 마찰을 겪거나 눈 밖에 났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민권 전 차관 역시 퇴직 후 김종덕 전 장관 등 문체부 내 선후배들로부터 ‘박민권 라인’에 대한 살생부가 민정수석실에 들어갔고, 관련 소문이 문체부 내에서 떠돌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법정증언한 바 있다.

실제로 우병우 전 수석은 대통령의 지시 이후,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과 국정원에 이들의 국과장들의 명단을 전달해 세평 수집을 지시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향후 검찰 측이 국정원을 통해 제출받은 문건 등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애초에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복무점검을 지시받은 명단과 우 전 수석이 국정원에 지시한 명단이 달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측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덟 명 중 최 모 문체부 정책보좌관에 대한 복무점검 역시 포함시킬 것을 우병우 전 수석에 지시했지만, 막상 우 전 수석이 국정원에 내려준 명단에는 최 모 보좌관 대신 백 모 문체부 감사담당관의 이름을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에 해당 명단의 복무점검 결과를 보고했고, 이후 여덟 명 중 여섯 명에 대한 인사조치 지시를 받았다.

이후인 2016년 4월경 민정수석실은 윤장석 전 민정비서관이 정관주 전 1차관에 전화를 걸어 이들 여섯 명의 국과장에 대한 소속기관으로의 전보조치를 요구했고, 이에 대한 사유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억울하게 공직을 마감해야 했던 박민권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사진=연합)
정관주 전 1차관은 특검 조사 과정에서 “당시 윤장석 민정비서관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국장 세 명과 과장 세 명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이분들에 대한 전보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라며 “제가 이들을 전보 시키는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몇 번을 물었더니, 윤 비서관이 ‘차관님께는 사유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다. 위에 보고가 된 사항’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물론 정관주 전 차관으로부터 이에 대해 보고받은 김종덕 전 장관은 민정수석실의 일방적 인사조치 지시를 처음에는 보류하자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리 김종덕 전 장관이 문체부 내 인사권자 였지만, 이들 국과장들에 대한 인사조치의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문체부는 이미 2016년 2월에 정기인사를 실시했고, 비정기 인사조치를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필요했다.

이에 김 전 장관은 우 전 수석에 직접 전화해서 사유를 파악하려 했지만, 역시 이에 대한 이유를 듣지 못한 채 이들 국과장들에 대한 소속기관으로의 인사조치를 단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공무원법·공무원임용령 위배 소지 다분했던 인사조치 요구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의 문체부 인사개입과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설명하며, 그가 대통령의 지시를 뛰어넘어 다른 인물을 복무점검 명단에 임의로 추가한 점 그리고 법률상 대공·대테러 등과 관련된 보안정보만 수집할 수 있는 국정원을 동원해 문체부 공무원들에 대한 사찰을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특별감찰반과 국정원으로부터 보고받은 이들 문체부 국과장의 복무점검 결과 및 문체부 내 파벌의 실체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왜곡해 김종덕 전 장관에 이들 국과장에 대한 무리한 좌천성 인사조치를 요구했다고 보고 있다.

사실 민정수석은 행정기관 공직자에 대한 복무점검과 직무감찰 권한이 있으나, 부처 국과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요구 또는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문체부 국과장에 대한 인사조치 권한은 대통령의 지휘·감독 아래, 장관에게 주어져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문체부는 정기인사가 실행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고, 이들 국과장들은 당시 보직으로 인사발령을 받은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공무원 임용령 제45조에 따라 공무원이 전보조치를 함에 있어 필수보직 기간을 준수해야 하는 만큼, 이번 사례는 법령상 정해진 필수보직기간까지 위반하면서 소속기관으로의 인사조치를 밀어붙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병우 전 수석이 해당 국과장들에 마치 자세히 말해줄 수 없는 비위가 있는 태도를 보이며, 인사조치를 요구한 점은 ‘편취’이자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검찰 측은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 임용령을 보더라도 이번 사례는 명백히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26조에는 ‘공무원의 임용은 시험성적·근무성적, 그 밖의 능력의 실증에 따라 행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임용은 공무원의 임명과 면직뿐만 아니라, 전보·파견 등의 인사조치도 물론 포함하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연합)
또 공무원 임용령 제44조에서는 ‘공무원이 전보를 실시할 때, 맡은 직무에 대해 전문성과 능률을 높이고, 창의적이며 안정적 직무수행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정수석실에서 이들 국과장들에 대해 파악한 복무점검 결과는 모두 허위·과장된 부분이 많았고, 문체부 내부에 파벌이 없었음에도 무리한 인사조치를 요구한 것은 앞선 두 법령에 위배, 민정수석의 자의적 판단에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물론 공무원 임용령 제44조와는 다르게 이들 국과장들의 인사조치는 전문성과 능률을 높이거나 창의적이며 안정적 직무수행을 돕는 차원이 아닌, 좌천의 성격이 강한 것도 사실이었다.

검찰 측은 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우병우)의 지시로 좌천된 문체부 국과장들은 모두 매우우수 또는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라며 “그들이 인사조치된 이유는 단지 부처 내 공무원 두세 명에게 전해들은 세평이 전부였고, 객관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 측은 우 전 수석의 당시 직권남용으로 의심 가는 모든 행위가 최순실씨와 공모해 그의 문체부 내 걸림돌들을 제거해 주기 위한 일환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단순한 ‘전달자’였다는 禹… 최순실 공모 의혹도 철저히 반박

우병우 전 수석 측은 재판 초기부터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 성실히 업무를 수행한 것이 직권남용으로 비춰져 억울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우 전 수석은 단지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한 ‘전달자’로서, 그 지시와 무관하게 직권을 남용해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만약 우 전 수석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면, 김종덕 전 장관 역시 직권남용의 공범이 돼야 하지만, 검찰 측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서 김 전 장관을 오히려 피해자로 적시했다는 설명이다.

우 전 수석 측 변호인단의 주장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행정부의 수장이자 각 부처의 인사권 행사를 포함한 장관의 업무 전반에 대해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김종덕 전 장관은 당시 대통령의 업무상 지휘·감독권 행사에 따를 의무가 있었지만, 만약 대통령의 지시가 명백히 위법내지 부당한 경우라고 판단될 경우 장관은 이에 복종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김종덕 전 장관은 이 사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우병우 전 수석과의 전화통화에서 국과장들에 대한 인사조치 지시에 관해, 우 전 수석 개인의 의사가 아닌 대통령의 지시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윤장석 전 비서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정관주 전 차관도 민정수석실의 자의적 판단이 아닌, 대통령의 지시로 받아들였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바 있다.

그만큼 김종덕 전 장관이 당시 국과장들에 대한 인사조치 지시가 부당하거나 위법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에 복종하지 않더라도 정당한 권리행사였다는 지적이었다.

만약 김 전 장관이 이런 점을 충분히 인식한 채 그 지시에 따랐다면, 검찰 측 공소사실 내용대로 직권남용의 피해자가 아닌 오히려 공범이라는 설명이다. 검찰 측이 공소사실에 김 전 장관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않은 이상, 우 전 수석 역시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우 전 수석 측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은 명단 속 문체부 국과장들에 대한 복무점검과 파벌로 인한 난맥의 실상 파악 등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의 임무는 이를 제대로 파악해 그 결과를 대통령에 보고하고 끝났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관련 사항을 ‘해결하라’가 아닌 ‘알아본 뒤 보고하라’가 우 전 수석에 주어진 임무였을 뿐으로, ‘해결하라’까지 미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인사조치 시행은 우 전 수석이나 민정수석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인사조치의 주체인 대통령의 장관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발동된 사항을 전달하기만 했을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당시 우 전 수석이 대통령의 지시를 김종덕 전 장관에게 전달하며, 국과장들의 인사조치에 대한 사유를 말해주지 않았던 것도 자신은 단순한 ‘전달자’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인사와 관련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할 때, 인사보안을 위해 대통령의 특별한 지시가 없는 이상, 일반적으로 각 부처 장·차관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사례의 경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종덕 전 장관 등 문체부 전체에 대한 인사난맥을 추궁하려는 차원도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 지시의 사유를 김 전 장관에게 알려줄 이유나 의무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연합)
우 전 수석 측은 김종 전 차관이 작성해 장시호씨를 통해 청와대로 들어간 메모가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 입증이 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호성(49·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재직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모든 문서들을 대통령에 전달하기 전 자신이 먼저 확인했는데, 김종 전 차관이 작성했다는 메모와 관련된 문서를 본 기억이 없다고 법정증언한 바 있다.

우 전 수석 측은 당시 김종 전 차관의 메모에는 문체부 인원 다섯 명이 기재돼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우 전 수석에게 언급한 인원은 여덟 명인 점을 들어,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여러 정보채널을 통해 이미 문체부 내 문제점을 인지한 채 지시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 공소사실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당시 민정수석실의 해당 국과장들에 대한 복무점검 결과가 과연 옳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검찰 측 주장과는 다르게 우 전 수석 측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우 전 수석 측은 특감반이 파악한 바에 따라 분명히 문체부 내부에 파벌에 따른 인사 난맥이 존재했다는 복무점검 결과는 정확했다는 설명이다. 또 인사조치된 국과장 상당수가 복무점검 결과대로 인사난맥으로 인한 부당한 혜택을 받았다는 점 역시 수사 및 재판 과정을 통해 입증됐다고 밝혔다.

우 전 수석은 그 복무점검 결과를 왜곡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주장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검토의견을 통해 문제가 없었던 인원을 배제하고 새롭게 문제가 발견된 인원을 추가했을 뿐, 우 전 수석이 대통령으로부터 결재를 편취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우 전 수석이 직권을 남용했거나, 부실한 복무점검 결과 또는 허위사실을 들어 강요를 했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위법하다는 설명이다.

본지의 우병우 전 수석과 관련된 지난 보도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시 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를 비호하며 이번 인사조치를 최씨와 공모했다는 검찰 측의 의심에 대해서도 우 전 수석 측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병우 전 수석은 최순실씨를 개인적으로 절대 알고 있지 않았고, 이에 대한 근거로 특검과 검찰이 우 전 수석의 휴대전화를 수차례 압수수색 했음에도, 그가 최씨나 최씨의 측근들과 전화통화 등의 연락을 주고받은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우병우 재판 바로보기②]에서 계속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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