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과실’ 책임 회피에 시민 두 번 울려

한국수자원공사 소유‧관리하던 도로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고

수자원공사, 사고 책임 전적으로 피해자 시민에게 돌려

법원, 수자원공사 면책 주장 받아들이지 않아… 극심한 고통 겪을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

자사 과실로 발생한 사고의 원인을 사고 피해자인 시민에게 전가하려 했던 한국수자원공사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관리‧감독하던 도로의 하자로 인해 시민이 큰 사고 피해를 입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특히 당시 사고가 한국수자원공사의 과실이 명백했음에도, 수자원공사는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하며 사고의 원인을 전적으로 피해자인 시민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법원은 당시 사고에 대해 수자원공사 측 책임이 명백했다는 판결을 최근 내렸다.

A씨는 몇 해 전 가을 지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조성된 한 자전거길을 따라 라이딩을 즐기고 있었다.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A씨 일행은 인근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고, 이곳에서 약 한 시간가량을 머물다 오후 7시경 다시 이동을 했다.

A씨는 자전거를 타고 이 휴게소의 주차장 출구에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진출했다. 이곳 내리막길 도로는 1차선 일방통행로로 U자형으로 굽어지는 구간이었다.

그런데 A씨는 주차장 출구에서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좌측 굽은 곡선 구간에서 중심을 잃었고, 자전거로부터 5m 전방에 튕겨져 나가 도로 경계석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A씨는 머리에 심각한 상해를 입었고, 뇌 손상에 따른 허혈성 뇌졸중 및 기억력 감퇴 등의 후유증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사고 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A씨를 끔찍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당시 사고의 원인은 바로 ‘도로바닥’에 있었다.

A씨의 사고가 난 지점의 도로 바닥에는 그가 자전거를 타고 진출하던 방향을 기준으로 도로 정 가운데에 세로형태의 긴 홈이 파여져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자전거가 내리막길을 빠르게 통과하는 과정에서 바퀴가 홈에 끼게 됐고, 결국 중심을 잃으면서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 도로의 소유‧관리자는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자원공사)였다. 도로가 주변에 위치한 댐 시설물의 일부로 편입됐고,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15조 제2항에 따라 수자원공사가 이 도로를 국가로부터 위탁받아 소유 및 관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측은 당시 사고의 원인이 도로 상 결함으로 발생했고, 수자원공사가 이 도로의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그 결함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민법 제785조 ‘공작물 등의 소유자 책임’에 따라 수자원공사 측을 상대로 이 사건 손해에 따른 배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사고 당시 A씨의 자전거는 기능상 고장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고, 그의 자전거 조작 소홀이 사고를 일으켰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때문에 A씨의 주장대로 사고의 원인은 도로의 결함에 있던 것이 분명했고, 이에 대한 책임은 수자원공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수자원공사 측은 A씨의 사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당시 사고에 자신들의 책임은 없으며, 오히려 당시 사고의 원인은 A씨 측에 있었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이 사건 소송에 있어 수자원공사 측의 주장에 따르면, 사고가 일어난 도로는 주로 자동차가 통행하는 곳으로서 당시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홈과 같이 파손된 부분은 다른 자동차 통행도로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해당 도로에 있어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여지는 없으며, 사고지점 인근에 별도에 자전거 도로가 있었기에 A씨가 이곳으로 통행하지 않았던 잘못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수자원공사 측은 A씨의 과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A씨가 사고 당시 내리막길 급커브 구간에서 자전거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도로에서 자전거는 우측 가장자리에서 주행해야 했음에도 도로 정 가운데에서 주행했기 때문에 그곳에 파여 있던 홈에 바퀴가 끼게 됐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A씨의 이런 이례적 행동에 따른 사고에 대비했어야 할 방호조치 의무를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판단이었다.

수자원공사 측은 “사고가 발생한 도로에는 설치 및 관리상의 하자가 없었고, 설치 및 관리상의 하자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하자와 A씨의 사고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라며 “A씨의 손해배상 청구에 응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자신만만히 책임 전가했던 수자원공사에 극심한 고통 겪은 A씨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도로 위에서 시민이 끔찍한 사고를 겪었다. 또 사고 원인이 도로의 결함이자 그 도로 관리자의 책임이라는 주장에 대해, 수자원공사는 책임을 순순히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아닌 이를 강력히 부정한 채 오히려 그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도로 위에서 시민이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다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관리 담당자인 수자원공사는 처음에는 자신들의 과실을 부정했다. *위 사진은 기사에 제시된 사연과 관련없음. (사진=연합)
다시 말해 시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는 공공기관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매정함과 냉철함을 보였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당시 수자원공사 측의 태도는 이와 같은 지적을 불식시킬 수 있을 정도의 대응논리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법원은 최근 항소심 판결을 통해 수자원공사 측의 A씨의 사고에 대한 면책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판결 내용에 따르면, 우선 사고가 발생했던 도로는 수자원공사 측 주장대로 자동차가 주로 통행하는 곳이 옳았다.

다만 자동차‘만’ 통행하거나 자동차가 ‘우선’하는 도로는 아니었고, 자동차가 보다 많이 통행할 뿐 엄연히 자전거의 통행이 허용된 도로였다.

수자원공사 측이 “사고지점 인근에 별도에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라고 주장했지만, A씨가 향하고자 했던 주차장 출구 방향에는 자전거 도로가 조성돼 있지 않았다.

특히 수자원공사 측이 말한 자전거 도로는 사고가 난 지점으로부터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다시 말해 지대가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으로의 경로를 살펴보면, 자전거 도로 다음에 휴게소, 이어 휴게소 주차장이 있고, 이 주차장 출구를 통해서만 휴게소 구간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자전거 도로에서 곧바로 나갈 수 있는 ‘샛길 출구’는 없었다.

때문에 수자원공사 측 주장은 휴게소를 빠져나가기 위해 주차장에서 다시 높은 곳에 위치한 자전거 도로로 되돌아가라는 설득력 떨어지는 설명일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라면 주차장 출구의 반대편 즉 입구로도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올 가능성도 있었지만, 입‧출구 도로 모두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에 이 지적 역시 적절하지 않았다.

법원의 판단을 정리해 보자면, A씨가 당시 자전거를 탄 채 주차장 출구 도로로 나간 것은 전혀 문제가 없는 매우 정상적 행위였다.

이에 사고가 발생한 곳이 자동차 도로로 A씨가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한 파인 홈이 자동차 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았기에 도로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었다는 수자원공사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 사건 재판부는 “수자원공사가 이 사건 도로를 관리함에 있어서 주로 통행하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 사고의 원인이 파인 홈이었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당시 홈의 상태가 자전거 바퀴가 빠지기 충분한 너비와 깊이였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특히 A씨의 귀책을 주장했던 수자원공사 측 주장과는 반대로, 재판부는 수자원공사의 관리의무 소홀을 보다 강하게 지적했다.

재판부는 “수자원공사는 홈을 메우는 간단한 조치를 이행함으로써 사고 발생을 방지할 수 있었지만,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며 “사고 지점 인근에 자전거로 통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리막 급경사인 사고 지점 도로에 자전거 이용자들에 사고를 경고하는 교통안전 표지판 등을 설치하지도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자동차 도로에서 자전거는 우측 가장자리에서 주행해야 했다”는 수자원공사 측 주장도 재판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 재판부의 판단은 매우 상식적인 부분인데, 자전거가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로 운행해야 한다는 도로교통법 제13조의2 제2항의 규정은 자전거가 다른 자동차와 동일한 도로를 운행하는 경우 통행 흐름과 자전거 안전을 고려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한다.

재판부는 이 규정에 대해 도로 위 다른 자동차의 통행이 없는 상황에 자전거가 도로 중앙으로 통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금지된다는 취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A씨가 당시 홈이 파인 도로 중앙에서 자전거를 운행한 것도 정당했으며, 사고가 수자원공사의 도로 관리상 하자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더 줄이지 않은 점, 즉 자전거 운행상 안전의무에 보다 충실히 하지 못했던 점 역시 사고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고 바라봤다.

이 사건에서 수자원공사 측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며 무려 사건발생으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법원의 항소심 판결이 최근 나올 수 있었다.

이학수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사진=연합)
그 긴 시간 동안 A씨는 당시 사고로 인해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고, 무엇보다 사고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수자원공사 측 주장으로 더 극심한 상처를 입은 채 재판에 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공공기관으로서 제대로 된 법적 대응논리도 갖추지 못한 채 책임을 시민에게 몰아붙였던 수자원공사 측의 태도를 재조명해야 하며, 수자원공사를 비롯해 사고가 발생한 도로를 위탁한 상급기관 역시 이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수자원공사 측은 당시 사고에 대해 도로 하자가 원인이었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며, 현재는 사고 지점에 ‘위험 이륜차 주의 사고 잦은 곳’이라는 내용의 표시판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또 사고의 원인이었던 도로 지면의 파인 홈 역시 보수를 완료했고, 나머지 법원의 판결 부분 모두를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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