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에 김백준 마저 檢 공소사실과 어긋나

MB 혐의 중 향후 유죄 판결 시 형량에 큰 영향 주는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정원 자금 수수 부분, 검찰 공소사실과 관련자 입장 어긋나

혐의 입증까지 중요 과제 생긴 檢, MB 반격의 여지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주어진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혐의를 둘러싸고 검찰 측의 불안요소가 드러나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명박(77ㆍ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재판이 본격적인 공판기일에 들어가면서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 측은 향후 재판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혐의 대부분을 입증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 주어진 혐의 중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부분이 향후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형량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입증에 보다 공을 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 부분 혐의의 검찰 측 공소사실과 관련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며, 이 전 대통령 측에 반격의 여지를 줄 가능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검찰이 기소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범죄사실은 크게 7가지로, 이는 세무적으로 총 16가지의 혐의로 나눠 볼 수 있다.

이 16가지 혐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바로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다스(DAS)를 둘러싼 비자금 횡령과 법인세 포탈, 직권남용, 삼성그룹 뇌물수수 등에 대한 범죄사실이다.

여기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횡령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조세포탈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이 적용됐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에게 주어진 각종 혐의 중 향후 이 사건 재판부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을 경우, 가장 무거운 형량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바로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다.

특가법상 뇌물수수죄에 있어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 10년 이상의 실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대법원이 정한 양형 기준에 따르면, 뇌물 수뢰액이 5억원 이상이라면, 9년에서 12년의 징역형이 기본적으로 내려질 수 있다.

검찰이 판단한 이 전 대통령의 뇌물액수는 국가정보원 불법자금 7억원, 민간영역에서 불법자금 36억 6000만원, 삼성그룹 뇌물수수 67억 7000만원 등 총 111억원 상당이다. 산출해 보자면 5억원의 20배 이상의 뇌물액수로, 이 부분이 향후 유죄로 인정된다면 이 전 대통령은 중형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혐의 중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뿐만 아니라 특가법상 국고손실죄까지 더해져 그를 매우 부담스럽게 하는 범죄사실이 있다.

바로 ‘국가정보원 불법자금 수수’에 관한 부분이다. 이 범죄사실에는 세부적으로 4가지의 혐의가 포함돼 있는데,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특가법상 뇌물수수 및 특가법상 국고손실까지 적용됐다.

해당 혐의 4가지 중에는 우선 지난 2008년경 3월에서 5월경, 이 전 대통령이 김성호 당시 국정원장으로부터 2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수수했다는 사실이 명시돼 있다.

또 2008년 4월에서 5월경, 역시 김성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활비 2억원을 추가로 교부받은 행위도 포함된다.

이어 지난 2010년 7월부터 8월경 원세훈(67·구속기소) 당시 국정원장으로부터 2억원의 국정원 특활비를 수수했고, 2011년 9월부터 10월경 역시 원세훈 전 원장으로부터 국정원 자금 10만 달러를 공여받은 부분 또한 해당된다.

검찰 측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이들 두 명의 전직 국정원장들이 인사권자였던 이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자금을 상납하는 대가로 향후 자신들의 국정원장직 유지와 국정원 각종 현안에 대해 편의를 제공받을 것을 기대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공무원이 그 직무와 관련돼 뇌물을 수수 및 공여했고, 국가정보원법 제3조 제1항에 적시된 국정원 업무와 관련 없는 용도로 국정원 자금을 사용한 것이 명백하므로 뇌물죄와 국고손실죄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특가법상 국고손실죄는 국고의 손실액이 5억원 이상이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이 파악한 이 부분 범죄사실에 있어 이 전 대통령이 수수해 손실된 국고의 액수는 7억원에 달한다.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혐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향후 유죄판결 시 형량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사진=연합)
정리해 보자면,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라는 범죄사실 하나만으로도 특가법상 뇌물수수와 특가법상 국고손실죄를 물을 수 있고, 재판부가 이 부분을 유죄로 받아들인다면 이 전 대통령에게는 최대 ‘무기징역과 무기징역을 더한’ 상상을 초월하는 중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만큼 검찰 측 역시 이 전 대통령의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에 대한 혐의 입증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작부터 MB에게 불리한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혐의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진행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첫 공판기일에서 이 전 대통령 측은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혐의 전체를 부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검찰 측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로 흘러들어가는 데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밝혀낼 만한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 그리고 그 자금이 검찰 측이 공소사실에 적시한 목적과 용도대로 쓰였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김성호 전 원장과 관련된 총 4억원의 국정원 자금 수수 부분에 대해서는 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었고, 당연히 누군가에게 이에 대한 지시를 내린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원세훈 전 원장과 관련된 2억원과 10만달러의 국정원 자금 수수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은 있지만, 공소사실과는 다르게 뇌물 의도가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검찰 측이 이 부분 공소사실을 특정하게 된 점이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사건 관계자들의 추측에 기초한 진술뿐이라며,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자금을 받아오도록 지시했거나 실제로 수수했다는 점에 대한 확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뇌물죄 사건에서는 확증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고, 이 사건 공소사실은 지금으로부터 약 7년에서 10년 전의 일이며, 심지어 청와대와 국정원이라는 정부기관 사이에서 일어진 사건이었던 만큼 수사기관의 확증 제시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사법부 역시 굳이 확증까지 제시되지 않더라도 일부 간접증거와 관련자들의 증언의 합리성을 통해 뇌물죄의 유무죄를 판결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66‧구속기소)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등의 판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 측의 강경한 태도에도, 검찰 측은 일부 증거에 더해 관련자들의 진술만으로도 충분히 이 부분 혐의를 유죄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분위기다.

그런데 <주간한국> 이 부분 혐의의 공소사실 일부와 관련자의 증언 중 엇나가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원세훈 전 원장과 관련된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혐의 부분이다.

원세훈 전 원장의 2억원 및 10만달러의 국정원 불법자금에 대한 검찰 측 공소사실에 따르면, 우선 지난 2010년 7월에서 8월경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원세훈 전 원장에게 국정원 자금 2억원을 교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연합)
이에 원 전 원장은 2010년 6월 18일 국정원 직원이 리비아에서 강제추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국가 간 문제로까지 번지자, 이에 대한 해결과 향후 국정원장직 유지 및 각종 현안 해결에 대해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편의를 받고자 국정원 자금을 상납하기로 마음먹었다.

원 전 원장은 당시 국정원 예산관 최 모씨에게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백준에게 2억원을 갖다 줘라”라고 지시했고, 예산관 최씨는 국정원 자금에서 2억원을 준비해 청와대 인근에서 김백준 전 기획관이 보낸 경리팀장을 만나 각 현금 1억원이 들어있는 쇼핑백 2개를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지난 2011년 9월에서 10월경 원 전 원장은 당시 미국 순방이 예정돼 있던 이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자금을 자진 상납하기로 마음먹고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게 연락해 “대통령 해외 순방 시 달러가 필요할 수 있으니 직원을 보내겠다. 대통령께 전달해 달라”라고 말하며 국정원 자금 10만달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원세훈 전 원장과 관련된 국정원 불법자금에 대한 범죄사실 중 첫 번째인 지난 2010년 7월에서 8월경 부분의 공소사실이 관련자 증언과 엇나가고 있었다.

검찰-원세훈-김백준, 엇갈리는 국정원 자금 수수 경위

이 사건과 연관된 당시 국정원 예산관 최씨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원세훈 원장이 저에게 ‘김백준 알지’라고 해서 제가 ‘모릅니다’라고 했다”라며 “그러자 원세훈 원장이 ‘청와대 총무비서관 말이야. 청와대에서 기념품을 살 돈이 없는 모양인데, 김백준 비서관에게 연락해서 한 2억원을 가져다 줘라’고 말하며 저에게 김백준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김백준 전 기획관은 검찰조사에서 “원세훈 원장이 저에게 먼저 전화해 ‘대통령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원해 드리겠다’라고 하면서 국정원 직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라며 “메모지에 원세훈 원장이 알려준 전화번호를 기재한 뒤 ‘잘 쓰겠다’라고 대답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명백히 이 사건 공소사실과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도 검찰조사에서 자신의 당시 기억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전체적 상황을 봤을 때 예산관 최씨에게 지시해 김백준 전 기획관에게 국정원 자금 2억원을 전달하도록 한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고 진술했다.

다만 원 전 원장은 자신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금 지원 요구를 직접적으로 받은 적이 없었고, 자신이 김백준 전 비서관에 전화해 자금 지원 사실 알린 적도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로 흘러가는 경위를 둘러싸고, 공소사실과 원세훈 전 원장의 기억이 완전히 달랐다.

우선 원세훈 전 원장은 검찰조사에서 지난 2010년 7월 당시 자신의 국정원 부하직원 누군가로부터 “청와대에서 시계가 소진됐다고 하는데, 시계를 주문제작할 예산이 부족하니 좀 도와줬으면 한다고 한다”라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원 전 원장은 원래 이에 대한 기억조차 없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자금 수수와 관련된 조사를 받는 도중 “기념품은 기억에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당시 부하직원이 “청와대에서 시계를 만들 자금이 부족하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났기 때문에 관련 진술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사진=연합)
이는 검찰 측 공소사실에 적시된 지난 2010년 6월 18일 국정원 직원이 리비아에서 강제추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국가 간 문제로까지 번지자, 이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는 취지로 국정원 자금을 이 전 대통령에 상납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부분과 배치되고 있었다.

심지어 검찰 측은 당시 국정원 직원의 리비아 강제추방 사건에 대해 원 전 원장과 전혀 다른 이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당시 리비아 주재 국정원 직원이 리비아의 건설공사 정보를 빼내기 위해 현지 정보원에게 돈을 건넨 장면이 촬영돼 구속 및 강제추방을 당하는 사건이라고 알고 있는 상태다.

반면 원 전 원장 측은 당시 사건이 건설공사와는 관련이 없이, 리비아에 거주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국정원 공작원들이 현지에 파견돼 정보 파악에 나서다 일이 잘 못된 것이었을 뿐 검찰 측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무엇보다 원 전 원장은 당시 국정원장으로서 직원이 리비아 현지에 구속 수감된 상태로 심각한 문제로까지 번졌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 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에 2억원을 전달했다는 검찰 측 주장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은 앞서 언급한 김백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김백준 전 기획관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은 김 전 기획관에게 전화해 “대통령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원해 드리겠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날 재판에서 원세훈 전 원장은 “김백준 기획관에게 전화해서 ‘돈 보내겠다’ 이렇게 하지 않았고, 그런 기억도 없다”라며 “제가 만약에 했다면(돈을 보냈다면) 국정원장의 상식으로 밑의 직원에게 알아서 지시를 했겠지 직접 청와대 비서관에게 전화해 ‘돈 보낼테니, 받아라’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목해 볼 부분은 이런 원 전 원장의 주장에 신빙성을 실어줄 만한 당시의 정황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런 정황은 아이러니하게도 검찰 측과 배치되는 원세훈 전 원장의 주장이 아닌, 김백준 전 기획관 측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김 전 기획관 변호인 측의 원 전 원장에 대한 증인신문 내용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는 매년 설과 추석,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보훈단체에 격려금을 지원했다.

그런데 지난 2010년 6월 호국보훈의 달는 청와대 예산 부족 문제로 보훈단체에 격려금 지원을 못하게 되는 바람에, 청와대와 이 전 대통령 측은 보훈단체로부터 항의성 민원을 받게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김백준 전 기획관이 관련 문제에 대해 이 전 대통령과 상의를 하게 됐고, 그 상의의 결과가 국정원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정리해 보자면, 2010년 7월에서 8월 당시 국정원에서 청와대에 자금이 지원된 경위에 대해 총 세 가지 주장이 나온 상태다.

우선 검찰 측은 원세훈 전 원장이 2010년 6월 18일 국정원 직원이 리비아에서 강제추방 당한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을 지원했다고 공소사실에 명시하고 있다.

이어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부하직원으로부터 “청와대에서 시계를 살 자금이 부족해 도와달라고 한다”라는 취지의 보고를 받고, 지원에 나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김백준 전 기획관 측은 당시 2010년 호국보훈의 달에 보훈단체에 지급할 격려금이 부족했고, 이에 대통령과 상의 끝에 국정원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각자의 주장이 분명 제각각인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검찰 측 공소사실이 이 사건 핵심인물 두 사람과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측 불안요소를 향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반격이 예상된다. (사진=연합)
심지어 검찰조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 낸 김백준 전 기획관 마저도 이 부분 공소사실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주장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만큼 확증 대신 일부 간접증거와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 이 전 대통령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혐의를 입증해 내려는 검찰 측에 큰 과제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 부분을 검찰 측이 제대로 소명해 내지 못한다면, 향후 이 전 대통령 측에 강한 반격의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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