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梁 사법부 ‘입질’… 석방된 왕실장도 ‘쌍끌이’ 하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구속만료로 석방

金, 원심-항소심 모두 징역형에 두 건의 형사재판 진행 중

석방 두고 의문 끊이지 않아… 梁 사법부 잡기위한 檢의 ‘정해진 수순’인가

박근혜 청와대, 일본군 강제동원 재판 두고 대법원과 재판거래 필요성 있었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지난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박근혜(66∙구속기소)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만료로 석방됐다. 동시에 양승태(70)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김 전 실장의 석방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그에 대한 소환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의 이번 석방을 두고 일각에서는 공소유지에 대한 검찰 측의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제기하며, 그의 석방이 ‘정해진 수순’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검찰은 김 전 실장의 석방 여부와 관계없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김 전 실장이 개입했다는 유의미한 증거를 찾아낸 만큼, 향후 수사 강도를 보다 높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지난 9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조사를 위해 검찰 출석을 요구했다. 김 전 실장 측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검찰의 김 전 실장에 대한 출석 요구는 그가 지난해 1월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구속기소돼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던 중 구속만료로 석방된 지 사흘만이었다.

앞서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하면서 지난 2013년 9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대외비)’라는 문건을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부가 대법원으로 올라온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소송건에 대해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라는 외교부의 민원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법원행정처 측이 외교부의 해당 민원에 대해 고려하면서 판결을 지연시키는 대가로 판사들의 해외 공관 파견과 고위 법관 의전을 늘리는 것을 강조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강제 징용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청와대와 외교부에 해외 법관 파견을 청탁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며 지난 2일 외교부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당시 검찰은 외교부 동북아국과 국제법률국, 기획조정실 등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러면서 김 전 실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13년 10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찾아가 강제징용 소송 및 해외 법관 파견에 대해 논의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다량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검찰은 또 다른 관련 문건에서 해외 법관 파견과 관련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당시 청와대 고위인사들과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에 김 전 실장도 이번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핵심 인물로 보고 그를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날 김 전 실장의 출석 불응으로 검찰은 오는 14일 그를 재소환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만약 김 전 실장이 또 다시 출석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
앞서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또 세월호 보고 조작 그리고 화이트리스트 사건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으로 검찰 측에서 공소유지를 위한 구속영장 발부를 법원에 요청했던 만큼, 그의 구속만료 석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 측이 법원에 김 전 실장에 대한 공소유지를 보다 강하게 주장했다면, 그가 석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본지의 취재에 응해준 지방법원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김 전 실장의 석방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미 1심과 2심에서 징역형 판결이 나왔고, 다른 형사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측이 마음만 먹었다면 재판부에 김기춘 전 실장의 구속기간 연장을 요구한다는 의견을 보다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고, 그랬다면 충분히 구속영장이 다시 발부됐을 것”이라며 “재판부가 단순히 김기춘 전 실장의 건강 악화 때문만이 아닌 검찰 측의 공소유지에 대한 의견이 부실하거나 그 내용에 공감하지 못해 석방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전 실장의 석방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는 검찰에 있어 ‘정해진 수순’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청와대, ‘일본군 강제동원 재판’ 두고 대법원과 거래 필요성 있었나

검찰은 김기춘 전 실장이 석방되기 전 그가 수감돼 있는 구치소를 방문해 앞서 언급한 재판거래 의혹에 관한 조사를 시도했지만, 김 전 실장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만큼 김 전 실장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검찰 측 역시 오히려 그가 불구속 상태에서의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검찰의 입장에서 김기춘 전 실장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또 다른 핵심 인물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김 전 실장과 양 전 원장은 경남고와 서울대학교 법학과 선후배 사이로 수십년 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사법부를 잇는 큰 축을 담당했던 인물들이었다.

사법농단의 발단으로 알려진 대법원의 상고법원 입법 추진에 있어서도 법원행정처는 청와대에 여러 로비성 전략을 짜면서, 지난 2016년 2월 24일 작성한 ‘2016년 사법부 주변 환경의 현황과 전망’ 문건에서 우병우(51∙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포스트 김기춘’, ‘王(왕)실장에 이은 王수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근혜(사진 왼쪽) 정부 청와대가 양승태(오른쪽) 대법원에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 지연을 거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필요성이 있었냐는 점에 대해서도 여러 합리적인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사진=연합)
그만큼 대법원 측이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청와대 내 특별히 관리할 인물로서 ‘우병우 전 수석 이전에 김기춘 전 실장’이라는 의미였다.

때문에 현재 의혹으로 제기되고 있는 청와대와 사법부 사이의 재판거래 관련 부분에 대해서도 김 전 실장이 충분히 개입돼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당시 청와대가 대법원에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 지연을 거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필요성이 있었냐는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합리적인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은 과거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에게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 9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 재판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1심과 항소심이 진행됐고, 당시 법원은 각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지난 2012년 대법원은 기존 재판 결과를 파기, 원고인 피해자들의 승소 취지로 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지난 2013년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는 두 회사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 사실이 일본에도 전해지면서 일본 내 반발 기류가 상당했다. 실제로 당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심의관(현 주미 일본대사)는 우리 법원의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에 대한 패소 판결을 두고 국제 사법 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밝혔고, 일본 측의 이런 뜻이 박근혜 정부에도 전달됐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스기야마 신스케 전 일본 외무성 심의관(현 주미 일본대사). (사진=연합)
당시 일본 정부는 외무성을 중심으로 한국 정부가 해당 재판 결과에 대한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ICJ 제소 외에 제3국에 중재 신청을 검토하는 등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만큼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실장의 청와대가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대법원과 재판거래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정황은 향후 검찰의 김 전 실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도 반영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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