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기금운용본부, 정부 감시∙압박이 ‘위기’ 부추겼나

문재인 대통령, ‘국민동의’로 국민연금 사태 진화 나서

이미 엎질러진 물… 국민연금 폐지론 활활

국민연금 위에 주목해 볼 기금운용본부… 정부 감시∙압박에 흔들렸나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상 등의 개선안의 계기가 기금운용의 실적 부진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국민연금이 보험료 인상과 연금지급 시기 연장 등을 골자로 한 개편안 루머가 확산되면서 ‘폐지론’ 폭풍까지 맞고 있다. 심지어 최근 국민연금의 자산운용에 대한 실적 부진의 결과가 나왔고, 기금 고갈이 앞당겨 졌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보험료 인상 등을 내용으로 한 이번 개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상 등의 개선안의 계기가 기금운용의 실적 부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과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국민연금 문제로 여론이 들끓는다는 보도를 봤다. 보도대로라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노후소득 보장을 확대해 나가는 게 우리 정부 복지 정책의 중요 목표 중 하나인데, 마치 정부가 정반대로 대책 없이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높이거나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춘다는 등의 방침이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알려진 연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상 등의 개선안에 대한 사실상의 반대의 표시였다.

앞서 오는 17일 열릴 보건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정책자문안으로 다뤄질 국민연금 개편 사항에 보험료 인상, 의무가입 연령을 현행 60세 미만에서 65세 미만으로 그리고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기존 65세에서 68세로 단계적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폐지론과 정부 책임론까지 대두되면서, 청와대 차원에서도 진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다음 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의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68세로 늦추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박 장관은 지난 12일에도 기존에 언론으로부터 전해진 정책자문안의 내용에 대해 “정부 확정안이 아니며 논의 중”이라는 공식 입장문을 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이 국민적 동의를 강조하며 논란의 확산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국민연금 반대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걷잡을 수 없는 국민적 공분의 계기는 바로 국민연금이 최근 실적 부진을 겪으며 기금의 고갈이 앞당겨 질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실제로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이 지난 13일 공개한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 성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1.1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수익률 26.31%에 비해 크게 악화된 수준이다. 때문에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액 역시 5월 말 기준 약 130조 149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조 3710억여원이 줄어들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현행 60세 미만에서 65세 미만으로 상향할 예정이다. (사진=연합)
또 같은 기간 해외 주식 수익률도 1.67%로 역시 지난해 10.68%의 수익률에 한참을 못 미치는 결과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보다 심각한 사실은 국민연금 측의 실적 부진이 비단 주식 운용 측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최근 공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민연금의 전체 자산운용 수익률은 0.49%로 이를 연 수익률로 환산하면 약 1.16%로 추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과거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자산운용 수익률에서 연 4~7%대를 기록한 것에 비해 역시 낮은 수준이다. 올해 예상 기금투자수익율이 7%대인 것에 비해 1%대의 추정 수익률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감사원이 지난 2015년 3월 16일 공개한 ‘국민연금 재정추계 및 국민연금기금운용 수익률 설정 부적정’이라는 제목의 보건복지부 통보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기금운용 수익률이 추정 수익률 대비 매년 1%p 낮으면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단축된다. 만약 2%p 낮다면 9년이 단축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 2016년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 자료와 감사원의 감사결과 보고서에서는 기금투자수익률이 예상보다 1.5% 하락할 경우 기금 고갈이 2060년에서 2053년으로 앞당겨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기금운용 수익률의 기대치가 하락세를 이어간다면, 오는 2060년으로 예측되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를 훨씬 더 앞당길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위기=기금운용본부의 위기… “정부가 부추겼나”

국민연금의 최근 실적 부진은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에서의 타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올해 국내외 악재로 인해 코스피 지수가 하락하고 있는 점이 주식 운용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어차피 주식 곡선은 내려가면 또 오르기도 마련인 만큼 비교적 단기간의 손실을 두고 기금 고갈 시기의 단축 등 장기적 불안요소까지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반면 국민연금 실적 부진의 문제를 코스피 지수가 아닌 국민연금 내부로 좁혀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최근 힘을 얻고 있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을 책임지는 기금운용 담당 부서에 과연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장 자리를 지난 1년 동안 공석인 상태다. 얄궂게도 기금운용 본부장의 공백이 생기자 매년 4~7%대의 자산운용 수익률이 1%대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난달 기준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실장급 이상 책임자는 총 9석 가운데 4석만이 현직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 부서 실장들이 실장 공석 상태인 부서까지 겸임하거나 직무대리 체제로 운영되는 현실이다.

지난해 7월 퇴임한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직무대리로 근무하던 조인식 전 해외증권실장도 지난달 초 사표를 냈고, 이어 기금운용본부 대체투자실 실장마저도 회사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정치권과 정부부처 등으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아왔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사진=연합)
지난달 18일 김순례 의원이 공개한 ‘최근 5년간 기금운용본부 퇴사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금운용본부 정원 278명 중 97명이 퇴사했고 지난 2016년 30명, 지난해 27명, 올해 들어 7월까지 16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을 총괄하는 자리가 공석인 동시에, 실장급 책임자들마저 전체의 절반 이상이 공석인만큼 예년의 자산운용 실적을 내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다수의 고급 인력들이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국민연금에서의 경력으로 대기업 자산운용부서나 여의도 증권가 고위직으로 떠나갔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본지가 여의도 증권사 관계자 그리고 국민연금 내부 사정에 밝은 이들을 통해 취재한 결과, 앞서 언급한 부분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외부의 압박과 부담’이라는 점이 고급인력들의 기금운용본부 이탈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아무리 연봉을 더 높여준다고 해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가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기금운용본부가 정치권과 정부부처 등으로부터 소위 ‘찍힌 상태’로 기금운용 실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압박과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는 지난 2015년 11월까지 기금운용본부의 본부장을 맡았던 홍완선 전 본부장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주요 사건 중 하나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개입돼 법원으로부터 징역형까지 받게 된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후 정치권 등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대기업과의 유착과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원회 등에 대한 부당한 개입 등 부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며 일종의 감시하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돼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으로부터 정기감사를 받거나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대상으로 한 질의 등이 집중되면서 이 역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홍완선 전 본부장 시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비춰지면서 마치 해당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 내부에서의 적폐세력인 것처럼 왜곡해 바라보는 점에 있어 본부장뿐만 아니라 다른 소속 직원들 역시 기금운용본부에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인선에 청와대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내부에 한바탕 잡음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대기업 압박 정책 역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에도 다소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6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자신의 위원장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대기업 총수 일가가 보유한 SI(시스템통합),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 비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팔고, 팔지 않으면 공정위 조사 및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자 다음날 삼성그룹 계열 SI사인 삼성SDS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연합)
이에 삼성SDS의 지분 5.17%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 역시 이날 주가 하락으로 약 1280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국내 대기업의 주식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만큼, 현 정부의 기조 역시 기금운용에 영향을 끼쳤을 소지가 높다는 분석이다.

기금운용에 있어 정부마저 예측할 수 없거나 크게 도움 되지 않는 정책을 펴나가는 만큼, 소속 인력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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