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무기간 늘려 병역회피 악용 가능성 낮춘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안 마련이 시급해졌다. (연합)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해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체복무 이슈가 처음으로 불거진 때는 2001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합헌’이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 이슈가 제기된 지 17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양심적 병역 거부자 이슈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양상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둘러싼 논란의 첫 번째 이유는 형평성 문제다. 병역의 의무를 지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양심의 기준이 병역을 피하는 정당한 수단이 될 수 있느냐다. 그래서 형평성에 부합하는 대체복무법안이 필요하다.

지난 22일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복무기간을 36개월 혹은 27개월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육군 현역병의 최종 복무기간인 18개월의 2배 혹은 1.5배 수준이다. 현재 논의되는 사안은 현역병의 2배인 36개월, 소방이나 교정시설에서 합숙을 원칙으로 하는 업무가 유력하다.

36개월이라는 복무기간에 대해 국방부는 “영내에서 24시간 생활하는 현역병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대체복무제를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충분한 기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현재의 공중보건의, 공익법무관 등의 복무기간인 36개월과 같다. 형평성 차원에서 무리 없는 복무기간이라는 분석이다.

대체복무 인력은 현 시점에서 연간 500~600명 수준으로 선발하기로 계획돼 있다. 이들의 급여 수준은 일반 사병과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됐다. 대체복무제 실무추진단을 구성한 국방부는 법무부, 병무청과 함께 정부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공식적인 정부안에는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의 의견도 반영됐다.

민간 전문가로 참여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 중 ‘양심’이 잘못됐다는 지적에 대해 “양심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군대에 간 사람들이 비양심적이라는 것이 아니고, 군대를 선택한 이들은 국토 방위수호라는 양심에 따라 군대에 간 것”이라며 종교와 이념, 가치관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을 군 복무기간의 1.5배로 권고했다. 그 이상은 인권 침해를 유발하는 징벌적 성격이 짙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군 복무기간을 무엇으로 잡을 것이냐도 상당한 논란거리였다. 최종적으로 단축되는 육군의 18개월을 기준으로 한다면 27개월이 되고, 22개월인 공군을 기준으로 2배를 적용하면 최대 44개월까지 기간이 늘어난다. 따라서 복무기간의 기준과 배수 적용에 대한 토론이 이어져 왔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정부안은 18개월 기준에 2배를 적용한 36개월이 대체복무 기간으로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1.5배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2배여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2배라는 기준 때문에 분명히 유엔의 권고가 꾸준히 제기될 것이며 결국엔 복무기간이 1.5배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대체복무를 적용하는 여러 나라는 유엔의 권고에 따라 대체복무 기간이 일반 복무기간의 1.5배로 수렴하는 상황이다. 대체복무법안을 발의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체복무 기간에 대해 공군의 2배인 44개월을 주장한다. 김 의원은 “공익법무관이나 공중보건의도 지금 36개월을 복무하고 있다. 형평성 논란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과도하게 보장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 의원 측은 “개인의 종교적 신념만을 이유로 입영, 집총을 거부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체복무 기간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다. 김 의원의 발의안에 따르면 지뢰제거 지원, 전쟁 예방 활동, 보훈 사업, 소방 업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도 높은 업무를 시키자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임 소장은 “소방 업무는 수요가 있어서 가능하며 대부분 교정시설에 투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교도소나 구치소 등에서 업무를 지원하며 합숙생활을 하는 것이 수요도 충족하면서 적합한 업무 투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중에서도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비율이 99%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측은 종교적 이유로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서만 대체복무를 적용하자는 입장이다. 종교적인 이유는 명확한 거부 근거가 있으나 평화주의나 이념에 따른 거부는 심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우려 때문이다. 개인의 양심을 법 테두리 안에 담아서 심사하고 판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 김 의원 측의 공식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헌재 결정에 의해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양심의 자유라는 것은 종교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닌 포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사안인 만큼 특정 법안이 헌재의 결정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측은 “개인의 양심을 판단할 수 있는 심사 기준도 모호할뿐더러 또 다른 인격 침해와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우려 때문에 종교적 거부자들만 포함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보면 전문적인 심사를 위한 병무청장 소속의 ‘대체복무위원회’를 둔다. 대체복무 신청에 대한 기각과 각하 결정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고, 국가인권위원회 소속의 ‘대체복무재심위원회’를 설치해 재심사를 담당하기로 했다. 심사와 재심사를 주관하는 기관이 다른 이유에 대해 김 의원 측은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병역 회피를 위한 거짓 진술 및 증거가 발각되면 1년에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조항도 마련됐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도 문제다. 그 판단 기준을 명확히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국방부는 무분별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 선별을 막기 위해 제한된 인원 수, 즉 쿼터를 정했다. 현재로서는 한 해에 500~600명 정도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선별할 예정이다.

임 소장은 이에 대해 “대만의 사례를 보더라도 많은 젊은이들이 일반 군 복무기간보다 훨씬 더 긴 대체복무제를 선택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복무기간이 우리보다 긴 대만의 경우 대체복무 인원 비율은 상비 병력 대비 1.5%다. 우리의 5배 수준의 비율이다. 첫 해에만 쿼터 이상의 지원자가 몰렸을 뿐, 이듬해부터는 쿼터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인원이 지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막상 대체복무를 실시해보니 군대에 가지 않을 만큼의 효용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무분별한 병역 회피의 수단으로 대체복무를 악용할 것이라는 일각의 의견은 지나친 우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천현빈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