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스킨’ 곽태일 대표의 초유 스토리 ‘화제’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부 출범식 행사를 마친 뒤 인근에 마련된 K 스타트업 페스티벌 부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팜스킨’ 곽태일 대표가 설명하는 모습.(곽태일 대표 제공).

충북 청주의 한 돼지 농장네 아들은 학창 시절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부모님을 도왔다. 매일 아침 돼지 60마리를 트럭에 싣고, 남는 시간에는 돼지 똥을 치웠다. 남들은 ‘지독하다’고 말하지만, 그에겐 구수했다. 동물과 함께 한 어린 시절 때문인지 돼지 농장네 아들은 건국대 동물생명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내내 농림축산식품부 장학금으로 공부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그는 쓸만한 ‘아이템’을 찾기 위해 10여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독일의 한 농가에서 ‘보물’을 발견했다.

버려지는 초유(初乳)를 활용해 마스크팩을 만드는 ‘팜스킨’ 곽태일(28) 대표의 얘기다. 분만 후 사흘까지의 소젖을 의미하는 초유는 비릿한데다 쉽게 부패해 가공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내 농가에선 초유를 버린다. 이 양이 매년 4만톤(t)에 이른다. 하지만 독일에선 초유가 핸드크림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초유를 다루는 농장 주인의 손이 부드러운 것을 본 그는 초유를 이용해 창업에 나섰다.

◇버려지는 초유를 ‘보물’로

우리나라에서 초유라고 하면, 분유를 쉽게 떠올린다. 영양이 풍부해 초유로 만든 분유는 보통 분유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 하지만 초유 분유는 대부분 뉴질랜드에서만 생산된다. 분유 가공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곽 대표는 버려지는 초유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 초유마스크팩이라 신선하다. 어떻게 개발했나?

“사람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의 태반으로 대부분의 영양소를 얻는다. 하지만 송아지는 출생 후 약 3일간 초유로 평생의 면역력을 얻는다. 영양소가 아주 풍부하다. 건국대 축산대 대학원생 시절 밤마다 삶아도 보고 끓여도 보는 등 초유 가공기술을 개발했다. 무항생제 인증, HACCP 인증을 받은 목장에서 초유를 직접 구입해왔다. 멘토들의 조언을 얻어 마스크팩 배합 및 화장품 테스트를 거쳐 국내 최초로 초유 마스크팩을 출시했다. 화장품 테스트 결과, 보습, 미백, 주름개선, 피부결 개선, 피부 리프팅 효과 등 다양한 효능이 확인됐다.”

-원래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나?

“처음에 축산대 대학원생 남자 넷이서 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에 대해 잘 몰랐다. 주말만 되면 남자 넷이서 건대입구역 올리브영이나, 왓슨스에서 화장품 전성분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게점원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남자 넷이서 화장품을 사지는 않고 전성분표나 보면서 조사를 하고 있는 게 흔한 광경은 아니다.”

- 직접 목장에서 초유를 구매해 온다고 들었다.

“농가 상생에 이바지해 농림부 장관상을 3회 수상했다. 농가는 버려지는 초유를 팔아서 새로운 이익이 생겼다. 제품 겉면에 표시된 목장은 간접광고 효과도 누린다. 초유를 가지러 갈 때마다 농촌이 고령화된 것이 보인다. 농촌은 젊은 사람이 필요한 곳, 꿈꿀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청년들이 진로선택지중 하나로 농촌을 생각했으면 한다. ‘초유’말고도 과잉 생산으로 버려지는 숨어있는 보석이 많다.”

◇학생창업, 한마디로 ‘사서 고생’

초기 스타트업은 1년만에 매출 성과를 내기 힘들다. 곽 대표의 팜스킨은 2017년 6차산업 공모전에서 농림부 장관상을 받았다. 힘들었던 시작에도 불구, 다시 한번 초유 사업에 확신이 생겼다. 이후로도 농협 공모전에서 농림부 장관상, 대학 창업 유망팀 300에서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상, 도전 k-startup 2017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초유를 통한 농가 이익 향상으로 농촌진흥청장상도 받았다. 제품 출시 3개월 만에 소량이지만 홍콩과 중국, 미국에 시장 테스트용 제품을 수출을 막 끝낸 상태다.

-시작에 어려움은 없었나?

“우선 일할 공간이 없었다. 매 끼니를 해결한 후 카페로 향했다. 새벽 2~3시까지 늘 카페에 있다보니 커피값이 만만치 않았다. 3~4개월이 지나니 돈이 없어서 다같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지도 교수님에게 얘기했더니 선뜻 연구실을 빌려주셨다. 비로소 사무실이 생겨 돈을 아낄 수 있었다.”

-초기사업에 비용이 많이 들어갈텐데 투자금은 어떻게 얻었나?

“처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래처를 찾아다녔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전국 곳곳을 영업사원 처럼 누볐다. 출장을 마치고 오면 보통 저녁 6시. 그제서야 일을 시작했다. 하루에 4시간도 자지 못했다. 교통비가 만만치 않아 중고차를 샀다. 몇개월 동안만 한 6만km를 달린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죽고싶다는 생각도 했다. 한 청년 창업 단체는 지원해 주겠다고 해놓고 우리 자료를 허락없이 홍보 수단으로 이용했다.”

-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던데

“있어보이는 것 같지만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그냥, 비행기 왕복 티켓이랑 에어비엔비 숙소 구해서 가는거다. 홍콩 공항에 내리자마자, 짐 푸는 시간도 아까워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홍보했다. 2017년 ‘홍콩 코스모프로프’라는 뷰티 박람회에 참가했다. 300만원의 부스비는 저희에게 사치였다. 우리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홍보했다. 점심도 굶은 채로 백팩에 300개의 제품을 넣고 아침부터 밤까지 뿌리고 다녔다. 마지막 날 한끼라도 제대로 먹고 가자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이 사라질 정도였다. 몇 군데서 저희 제품의 우수성을 알고 연락이 왔고 보자고 하면 무작정 달려갔다. 시제품 수출을 끝낸 상태다.”

◇시작이 반인데, 반이 끝난듯하다. 앞으로의 반과 그 너머는?

-첫 마스크팩 제품이 나왔을 때 느낌은 어땠나?

“제품이 나왔다는 기쁨보다 감사함이 더 컸다. 제품이 나오기까지 디자인, 배합, 동판 제작, 충진 등에서 많은 난관이 있었다. 청년 창업을 응원해주시는 교수님들, 멘토님들 덕분에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 때문에 주변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첫 제품을 전부 비매품으로 찍었다.”

-힘들었던 만큼 아직은 보수가 많이 따라주지 않을텐데, 창업한 것을 후회하지 않나?

“ 청년 창업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좋지 않다. ‘갓 대학 졸업한 애가 돈이 어디있냐’ , ‘취직도피냐’ 등 반대가 많았다. 축산학이 부가가치가 높다고 배웠는데 다들 제약 등 다른 업계로 진출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싶었다. ‘사서 왜 고생이냐’는 부모님 세대들의 걱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도전을 장려하고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 혁신은 변방에서부터 일어난다.”

-앞으로의 꿈과 계획은 무엇인가?

“앞으로 건국대 축산대에서 초유를 더 연구해 세계적인 초유 전문 기업이 될 것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세계적인 K-beauty 문화를 선도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농가와 상생을 위해 힘쓸 것이다. 농촌에서 자라 제 인생목표이기도 하다. ‘팜스킨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이 곧 농촌의 행복’이라는 기업 철학을 실현하고 싶다. 젊은 농촌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면 앞장서서 돕고 싶다.”

장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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