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민 “비자금 의혹 피하려 대납한 40억원 돌려달라”…법정공방 예고

오리온 비자금 사건 시절 문제됐던 40억여원, 담철곤 부부 미술품 구입비였나

조경민 전 사장, 의혹 무마 위해 담 회장 측과 40억원 대납 약정 주장

패소한 200억원대 소송과 다른 상황… ‘핵심증인’ 증언 나설까

지난 2011년 불거졌던 오리온 비자금 사건이 현재 40억원대 민사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미술품 구매를 통한 돈세탁으로 40억 6000만원을 챙겼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검찰은 조경민 당시 오리온 전략부문사장과 미술품 판매자를 구속기소한 바 있다. 그런데 조경민 전 사장이 당시 40억 6000만원을 둘러싼 숨겨진 내막을 들추며 수십억대 소송으로 이어지게 됐다. 조 전 사장은 당시 40억 6000만원이 담 회장 부부가 고가의 가구와 그림을 구입하기 위해 마련된 돈으로, 검찰 측의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자 담 회장 측이 해당 의혹을 피하기 위해 가구ㆍ그림 구입비 40억원을 되돌려 놓으려 했고 이를 자신에게 대납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조 전 사장은 개인 재산을 털어 40억원을 대납했지만 담 회장 측이 약속대로 이 금액을 갚지 않아 담 회장 그리고 부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1년 오리온 비자금 사건 때 검찰 조사 결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주식회사 이브이앤에이는 2006년 7월경 서울시 청담동에 소재했던 오리온 사업소 및 창고 부지를 매수한 부동산 시행사 회사였다.

당시 오리온 측이 이브이앤에이에 해당 부동산을 인근 시세보다 저가에 매도했는데, 계약서상이 아닌 실제로는 40억 6000만원이나 더 높은 금액을 받았다는 의혹이 대두됐다.

검찰은 다음달인 2006년 8월 이 40억 6000만원이 이브이앤에이에서 미술품 판매업체 주식회사 서미갤러리에 입금됐고, 이것이 오리온 그룹의 비자금으로 조성됐다고 바라봤다.

이에 검찰은 조경민 당시 오리온 전략부문사장이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2011년 5월 그를 구속기소했고, 곧바로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역시 해당 40억 6000만원을 입금받아 미술품 거래를 통해 ‘돈세탁’을 한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담철곤 회장의 개입이 있었고, 해당 비자금이 최종적으로 담 회장 측에 흘러갔다고 보고 회삿돈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이후 비자금 조성 사건은 사실상 조경민 전 사장이 주도했다는 모양새로 나아갔고, 담철곤 회장은 수감 8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런데 현재 진행 중인 조경민 전 사장과 담철곤 회장 부부 간 40억원의 약정금 소송은 당시 사건의 숨겨진 내막을 보여주고 있다.

조 전 사장 측은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면서 2006년 8월 당시 이브이앤에이에서 서미갤러리에 입금된 40억 6000만원은 담철곤 회장 부부가 서미갤러리 측으로부터 가구와 그림 구입비로 사용할 목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담 회장 부부는 홍송원 대표로부터 마리아 페르게이(Maria Pergay)의 메탈 침대 프레임과 테이블 등 40억 상당의 고급 가구와 그림을 구입했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40억 6000만원은 담 회장 부부가 서미갤러리로부터 물품을 구입하기 위한 ‘선금’이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던 2010년 3월 초순경부터 이 40억 6000만원이 오리온 그룹의 비자금이라는 취지의 언론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검찰과 세무당국이 오리온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벌였다.

조 전 사장은 당시 담철곤 회장 부부가 40억 6000만원을 다시 이브이앤에이에 돌려주라는 지시를 받았고, 홍송원 대표와 만나 이와 같은 사항을 전달했다.

물론 당시 홍 대표에게는 40억 6000만원을 돌려달라는 부탁이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담철곤 회장 부부가 40억 상당의 가구와 그림을 구매해 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조경민 전 사장은 당시 홍 대표로부터 이미 담 회장 부부에게 납품한 가구와 그림 대금 40억원을 돌려줘야만 40억 6000만원을 반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조 전 사장은 다시 홍 대표의 의사를 담 회장 부부에 전달했지만,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담 회장 측이 40억원을 직접 홍 대표에 지급하면 일이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다른 제안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 전 사장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홍 대표에게 40억원을 대신 지급해 주면, 다음 날 바로 40억원을 조 사장에게 갚겠다는 의사였다.

이에 조 전 사장은 2010년 6월 중순경 40억원 중 24억원을 홍 대표에 대한 자신의 채권 24억원으로 상계하고, 나머지 16억원에 대해서는 자신이 과거 홍 대표로부터 매수한 16억원 상당의 그림의 소유권을 홍 대표에게 이전하는 방법으로 40억원을 상계처리 했다.

그런데 조경민 전 사장은 당시의 40억원을 담 회장 부부가 현재까지 자신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어 약정금 소송을 걸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핵심증인’ 홍송원 대표, 증언 나설까

조경민 전 사장은 지난 2016년 7월에도 담철곤 회장 등을 상대로 200억원의 약정금을 내놓으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조 전 사장 측은 해당 소송에서 지난 1992년 오리온의 전략조직이었던 에이팩스 대표이사를 맡아 신사업을 성공시키면 오리온 주가 상승분 10%를 받기로 담 회장과 약속했지만, 담 회장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담 회장 및 오리온 측은 조 전 사장이 주장하는 약정을 한 것은 사실이 아니며,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해당 약정이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았던 만큼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취지로 맞섰다.

결국 법원은 지난해 8월 조 전 사장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 재판부는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았던 증여가 당사자들로부터 해제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담 회장 부부가 지난 2016년 답변서로써 증여를 해제한 만큼 약정이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40억원의 약정금 소송에 대한 오리온 측 소송대리인들의 명확한 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기존 200억원 약정금 소송에서와 같이 조 전 사장이 담 회장 측과 협의해 홍송원 대표에 40억원을 대신 납부했다는 점을 조 전 사장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지적한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당시 약정에 대한 서면 증거가 없어 역시 법적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대응한다면, 이번 소송 역시 조 전 사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번 소송에서는 이 사건의 핵심인물이 증인으로 나서 조 전 사장의 입장에서 유의미한 증언을 해줄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제21부(부장판사 이재석) 심리로 열린 이 사건 1차 변론기일에서 조 전 사장 측은 이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홍송원 대표를 신청했다.

조 전 사장 측 소송대리인들은 홍 대표가 과거 40억 6000만원을 이브이앤에이로부터 입금받은 경위와 담 회장 부부가 서미갤러리에서 가구와 그림을 구매하며 이 돈을 정말 사용한 것인지 여부 그리고 문제가 된 조 전 사장과의 40억원 상계처리건과 관련해 구체적인 증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증인신청 취지를 밝혔다.

이미 조 전 사장 측은 홍 대표 측의 사실확인서를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고, 향후 증거를 보강해 나갈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홍 대표 측이 작성한 사실확인서에는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과의 계약으로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가구와 그림을 납품했으며, 이에 대한 대금 40억원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또 이 40억원을 조 전 사장이 대납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재판에서 담 회장 측 소송대리인들은 재판부에 구석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조 전 사장 측이 주장과 입증취지 등을 좀 더 명확히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조 전 사장 측은 오히려 이 사건 사정에 대해 잘 알면서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담 회장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