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비리 낙인’ 찍어 공개···선량한 피해자들은 눈물 흘린다

10월 국정감사에서 ‘비리 유치원’이 큰 이슈로 부상했다. 비리 유치원으로 지목된 곳에서는 회계처리 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이들을 위해 쓰여야 할 공금을 유치원 대표자들이 사적으로 유용한 것은 물론 명품백, 성인용품 구입, 친인척 장학금으로 쓰기도 했다. 관심의 초점은 어떤 ‘회계프로그램’을 사용하느냐, 공립이냐 사립이냐, 비리 유치원이냐 아니냐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비리의 기준은 무엇이며, 공개된 유치원 명단 또한 정확한지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가며 ‘비리 유치원’을 2018년 4분기 최대의 이슈로 만들었다. 정작 공개된 유치원들이 어떠한 근거로 ‘비리’라는 낙인이 찍혔는지에 대한 상세한 보도는 없다. 그리고 해당 유치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도 찾기 힘들다.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한 비리 유치원 보도만이 양산되고 있을 뿐이다. 비리 유치원 문제의 본질을 짚고 명단 공개의 객관성과 명확성을 집중 취재했다.

예상대로 비리 유치원을 접촉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특히 언론사의 취재요청은 극도로 꺼렸다. 그중에서 한 유치원을 어렵게 접촉했다. 지난 25일 비리 유치원으로 추가 공개된 서울의 ‘충신유치원’이다. 충신유치원을 비리 유치원이라고 보도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운용자금의 사용계획을 사전에 관할청에 신고하지 않고 시설적립금 명목으로 1억 원 이상을 적립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1억 원을 불법적으로 빼돌리거나 유용한 것이 아니라, 시설적립금으로 적립한 사실 자체가 비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결론은 아니다. 감사대상으로 지정된 충신유치원은 ‘감사대상 유치원’일 뿐이지 ‘비리 유치원’이 아니다. 감사 결과 회계내역에서 위와 같은 사안을 지적받은 것뿐이다. 그것으로 비리 유치원으로 낙인 찍히고 언론에 보도될 시에 맞을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세한 보도가 없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독자들은 충신유치원을 그저 비리 유치원으로 기억하게 된다.

충신유치원의 송은영 원장은 “우리는 감사받은 유치원이지 비리 유치원이 아니다. 언론에서 무분별하게 보도되고 있는 비리 유치원 명단이 바로잡혀야 한다”며 “충신유치원이 감사받은 유치원으로 정정 보도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치원 업계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의 입에서 ‘비리’라는 단어가 오르내린다고 한다. 아이들이 본질적으로 유치원과 선생님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송 원장은 “요즘 유치원의 모든 사람들이 신경 쓰고 있다”며 “근로자들도 아이들도 모두 피해자다. 특히 다음 세대에게 잘못된 생각이 뿌리내리면 교육적으로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른 '비리유치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연합)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 입에서도 ‘비리’

취재 결과 실제로 충신유치원은 학부모운영위원회를 통해 감사를 투명하게 진행하고, 감사 결과도 지적받은 대로 명시하며 개선 방향도 공지한다고 한다. 충신유치원은 봉고차량 교체, 도색페인트 등으로 이월된 적립금 1억 원을 바로 소진했다. 적립한다는 것 자체가 회계 지적 사안인 만큼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다. 충신유치원은 적립금 보고도 매년 시행해왔다. 다만 2015년에 마련된 사립유치원을 위한 재무회계규칙에서 올해부터는 세부규칙도 추가됐다. 하지만 관련기관으로부터 세부규칙을 자세히 안내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송 원장은 “재무회계규칙을 정확히 안내하지 않았다”며 “사립에는 의무적으로 적용이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기존의 방식대로 적립금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송 원장은 “우리 유치원은 교회에서 운영하며 이사회도 있다”며 “매년 모든 회계 관련 내역을 보고하고 깨끗하게 운영한다”며 기존의 지침대로 조치를 취했는데도 비리 유치원으로 명단이 공개된 것에 대해 억울함을 드러냈다. 교육부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송 원장은 충신유치원이 비리 유치원으로 지정됐다는 기사를 본 졸업생 학부모의 연락을 받았다. 그 학부모는 ‘항상 통신문으로 중요한 사안을 보고하고 운영위원회를 통해 차량도 교체하며 시설환경 보고도 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고 하면서 의문을 나타냈다고 한다. 송 원장은 “비리 유치원이라는 홍역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니 관련 원장들과 선생님들의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며 “다음 세대를 교육하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육청을 탓하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려 한다.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잘 교육할 수 있도록 언론에서 많은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실제로 비리 유치원과 관련된 보도는 특정 유치원에 대한 마녀사냥, 여론몰이로 인한 피해 유치원 양산이 대부분이다. 송 원장은 마지막으로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중요한 교육의 현장을 지켜주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신유치원과 비슷한 사례로 인터뷰에 거의 근접했다가 실패한 서울시 강동구의 A유치원도 비슷한 억울함을 간단히 표명했으며, 더 이상 언론에 노출되기 싫다는 유치원 측의 요구로 더 이상의 인터뷰는 진행되지 못했다.

비리 유치원과 더불어 관심이 집중된 ‘안심 유치원’도 명단이 공개됐다. 비리 유치원 선정의 기준이 회계 중심의 감사 결과였다면 안심 유치원은 급식과 시설에 대한 안정성이 검증 사안이다. 서울의 세명유치원은 안심 유치원으로 선정됐다. 세명유치원 측은 “안전 부문에서 인증을 받았다”며 “안전과 건강분야, 위생시설이라든지 안전시설, 급식시설 등은 모두 비용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심 유치원의 골자는 안전이기 때문에 비용 문제가 선정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박용진 의원은 지난 11일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각 시·도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된 1천878개 유치원의 명단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연합)

‘에듀파인’ 회계 시스템 도입하면 비리 차단

비리 추적의 핵심은 회계프로그램 감사다. 안심 유치원 선정기준에서 회계 감사가 빠져 있다고 해도 종합적이고 정기적인 유치원 감사에서 회계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점검사항이다. 공교롭게도 안심 유치원의 대부분은 공립 (단설) 유치원이다. 공립 유치원들은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써야 한다. 원천적으로 ‘에듀파인’은 회계를 조작하거나 빼돌릴 수 없는 구조다.

세명유치원 측은 “에듀파인을 쓰면 공금을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예산이 잡히면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분류되고 해당 품목을 선택하면 그 금액만큼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예 교육 목적 외의 상품을 구할 수 없을뿐더러 정해진 가격으로 제시된 물품만 구매할 수 있다. 2020년까지 국공립을 비롯한 사립유치원까지도 에듀파인을 적용한다는 제도권의 대책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명유치원 측은 “에듀파인이 적용되면 사립유치원 비리도 원천 근절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에듀파인은 초기 예산이 잡히면 업무추진비가 교무실, 행정실 등으로 세분화된다. 인건비와 관리비, 시설비 등도 세세하게 나뉜다. 그리고 에듀파인이 적용되면 효율적이고 날카로운 회계감사가 가능하다. 에듀파인을 바탕으로 교육청의 감사관들이 집중 회계감사를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에듀파인이 적용되면 회계가 투명하게 운용될 수밖에 없고 조작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공립유치원들의 설명이다.

안심 유치원으로 선정된 곳은 보통 공립 (단설) 유치원이다. 대부분의 경우 공립 유치원이며 병설보다는 단설이 압도적인 수치를 보인다. 그 이유에 대해 또 다른 안심 유치원인 서울 마곡유치원(단설)은 “공립인 병설 유치원은 초등학교와 함께 ‘클린행정’으로 재정이 운용된다”고 설명했다. 병설 유치원은 따로 검증절차를 위한 자발적인 신청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교육과정에서의 공문이 내려오면 단설 유치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신청했고, 그것이 공립 (단설) 유치원이 압도적으로 안심 유치원으로 선정된 배경이다.

비리의 중심인 회계프로그램에 대해 마곡유치원은 “공립 유치원은 회계처리를 방침에 맞게 운영하기 때문에 비리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며 “정기적인 감사는 물론, 급식 분야 전문가, 시설 전문가 등이 평가지표를 내고 보험 여부도 확인하며 현장 평가도 한다”고 말했다. 개선할 점은 바로 유치원에 전달되고 추후 개선 과정까지도 감사대상이다.

마곡유치원도 비리 근절의 핵심을 ‘에듀파인’으로 꼽았다. 에듀파인은 회계처리 절차에서 조금이라도 저촉되는 것이 있으면 모두 보여주고, 오류는 수정할 수 있도록 행정실과 연결된다. 지자체별로 형식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쓰는 방식이나 결제방법 등 굵직한 내용은 똑같다. 회계입력에서 수기는 허용되지 않고 오직 온라인 입력만 허용된다. 결제시스템도 까다로워진다.

마곡유치원은 “물품 구매도 유치원이 속해 있는 관내에서만 가능하다”며 “구입 요청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구매가 불가능하고, 빗자루 하나를 사더라도 마곡동에서 사야지 김포나 다른 강서 관내에서 구매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격대가 싼 것을 찾아서 구매하고 싶다면 행정실이 사전에 검열을 하기도 한다. 그 가격이 합당한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는 절차도 있다고 마곡유치원 측은 덧붙였다.

지난 21일 경기 동탄 지역 사립유치원 학부모 500여 명이 유치원 비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

사립 유치원들은 에듀파인 일괄 적용에 반발도

유치원 업계에서는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 회계프로그램이 일괄 적용되는 것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도 나온다. 사립은 개인 사업체이다 보니 이윤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데 나라에서 무조건 회계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이 적법한 절차냐는 것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최대 이슈가 된 비리 유치원 문제는 결국 2020년 공립, 사립 등 모든 유치원의 에듀파인 일괄 적용으로 갈무리되는 모양새다.

안심 유치원에 대한 해당 학부모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 아닌가?’다. 많은 유치원들은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도 많이 오고 급식 식재료도 함께 고르며 당번제로 함께 참여한다. 관련 소위원회에서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유치원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의 반응이 ‘안심 유치원이라니 정말 좋네요’가 아닌 ‘당연한 거죠’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외에도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에코 인증’ 시스템은 환경안심유치원으로 인증해주는 제도다. 시설에 쓰인 기본 자재가 그린에 해당하는 등급으로 따지기에 유치원별로 관심도에 따라 공모가 들쭉날쭉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청공모를 안 한 곳은 에코 인증을 받을 기회조차 없다. 그래서 유치원업계에서는 안심유치원, 비리유치원 등의 평가가 일괄 적용되도록 ‘교원평가’와 같은 의무적인 제도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각종 인증이나 기관의 감사를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비리유치원으로 낙인 찍힐 우려도 나오고, 환경안심유치원, 급식안심유치원 등의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국정감사의 핫 키워드는 단연 ‘비리 유치원’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민감한 학부모들의 관심만을 끌어내기 위한 자극적인 보도와 국정감사로 인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치원들이 생겨나고 있다. 비리에 관한 정확한 사실관계와 문제의 본질이 되는 회계문제를 명확히 알려야 한다는 유치원 업계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를 입은 유치원들, 학부모와 아이들, 교원들과 다음 세대의 교육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