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임금체불 왜 이렇게 심각할까

예술인들의 임금체불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연극인 임금체불 문제는 1년 전 언론에서 잠깐 이슈가 됐지만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 1년이 넘게 출연료를 받지 못하면서도 정당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했던 연극인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연극인들에 대한 임금체불이 업계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고 폐쇄적인 위계질서, 다닥다닥 이어진 연줄 등으로 연극인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최근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예술인 임금체불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 차원에서 연극인들에 대한 임금체불 문제를 제기하면서 연극인들의 노동권 문제가 공론화될지 주목된다. 연극인을 포함한 예술인에 대한 임금 체불 문제는 과거부터 제기돼 왔다. 실제로 최근 5년간 27억 원이라는 액수가 미지급되거나 체불되면서 예술인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500만 원 미만의 금액이 전체의 73.2%를 차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임금체불의 42.9%가 연극인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연예계가 34.2%, 음악계가 7.7%로 뒤를 잇는다. 연극인들은 연예계보다 임금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계형 피해자가 더 많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5년간 예술인 신문고 신고접수 사건 656건 중 78.8%가 임금체불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97건은 정부 차원에서 권고하기도 전에 체불임금이 지급됐다. 즉 임금체불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연극인 임금체불 문제가 제기됐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연합)

임금지급 이행 불능으로 사건이 종결된 사례는 19건에 불과하다. 단지 경영여건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경영 사정이 어려워져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체불되는 경우보다는 관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연극인들은 전속배우가 아닌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능력과 시간에 따라 작품마다 개별 계약해 활동한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보호권을 누리지 못한다. 이에 대해 김영주 의원은 “프리랜서가 많은 연극인들을 위해 체당금 제도와 같이 소액 체불에 대해서 수입 보장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예술인 보증보험 등을 도입해 창작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이 국회 차원에서 추진될 예정이다.

관련 피해가 있는 연극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프리랜서 연극배우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상업 공연인 ‘보잉보잉’, ‘작업의 정석’과 같은 유명한 연극은 그래도 보수가 괜찮다”면서도 “그런 연극은 정말 극소수고 대부분 소규모 연극이기 때문에 연극인들의 보수는 상당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로에 있는 연극단체들은 다른 곳에 비해 봉급이 좋은 편이지만 자리에 비해 배우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아래부터 올라간다’는 개념으로 무보수로 연극을 시작하는 신인들이 상당히 많다. A씨는 “대학로만 해도 하루에 작품이 몇백 개나 무대에 올라간다”면서 “사람들이 알 만한 연극은 이미 유명한 배우들이 꿰차고 들어가서 소위 말하는 ‘돈이 되는’ 연극을 하기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대놓고 ‘무임금 노동’ 원하는 극단도

현재 연극계에서 배우 캐스팅의 추세는 인지도가 있는 연예인이나 방송인을 섭외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연극이 홍보되기 때문이다. 이런 ‘티켓파워’를 활용한 마케팅 때문에 기존의 연극배우들은 더욱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이렇게 유명 방송인이 연극에 진출하면 상대적으로 소규모 연극들은 주목을 더 받지 못하게 되고 수익은커녕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렇다 보니 연극 캐스팅 공고에서도 ‘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연을 만들고 연기실력을 올리고 쌓는 게 목적인 극단이라 넉넉하지 않습니다’, ‘페이 부분은 많이 힘듭니다. 따지실 분은 지원하지 말아주세요’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대놓고 무임금 노동을 원하는 극단이 늘어나고 있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럼에도 연극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무보수 연극에 지원한다. 경력을 쌓아야 상업연극에 지원할 수 있고 위로 올라갈 발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계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노동활동’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임금체불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A씨는 “과거에 나도 임금체불 문제로 속을 많이 태웠다”며 “회당 8만원을 받기로 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주지 않아 따지고 따져 간신히 받아냈다”고 말했다. 당시 A씨는 신입배우도 아닌 경력자였음에도 임금을 제때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현재 A씨는 지방자치단체의 후원을 받는 연극을 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연극 기획안을 올리고 선정돼야 한다.

지자체의 후원을 받으면 연극인들의 출연료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다. A씨는 현재 회당 25만원의 출연료를 받고 있다. A씨는 “지자체에서 후원하는 연극은 페이가 아주 좋다”면서도 “사람들은 지자체의 후원을 받는 연극은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작품성과 공익성을 인정받아 선정된 연극이지만 지자체의 후원을 받아 순회하는 공연은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출연료 측면에서는 확실한 보상을 받고 있다. 그래서 많은 극단이 1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지자체 후원 연극에 선정되기 위해 노력한다.

후원을 받는 연극은 ‘오픈런’이라 불리며 공연을 길게 한다. 하지만 보통 소규모의 연극은 3~5일 만에 끝나는 것도 많다. 이런 연극은 지인들을 초대하고, 자신들이 돈을 모아서 자체적으로 하는 공연이기에 높은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 대학로만 해도 하루에 열리는 연극의 횟수가 족히 500개는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이렇게 공연은 넘쳐나는데 관객은 적다 보니 연극인들의 수입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과거 임금 체불 피해를 입은 B씨는 “과거 꽤 규모가 큰 극단에 들어갔는데도 임금을 제때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극단의 규모가 컸지만 적자를 당장 피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돌려 막기 식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B씨는 “큰 극단의 사정이 이런데 작은 극단의 사정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연극인들은 좁은 업계 바닥 때문에 부당한 대우에도 적극적인 항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연합)

지자체 후원 공연 선정에 목 매기도

보통 연극인들은 ORT라는 사이트를 통해 오디션을 지원한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수많은 극단이 캐스팅할 배우를 모집하고 있다. 그런데 조회수를 보면 모집하는 인원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음지에서 구직하는 배우들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허나 좋은 배역을 따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실제로 게시글을 보면 ‘현재 공연 중인데 추가로 캐스팅하기 위해 배역을 모집합니다’라는 글도 많다. 여기에도 많은 사람이 지원하지만 이런 곳은 돈을 안 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 관객이 없으면 공연이 취소된다. 당연히 출연료도 없다.

위에서 언급한 ‘상업적 목적이 아닌 공연을 만들고 연기실력을 올리고 쌓는 게 목적인 극단이라 넉넉하지 않습니다’, ‘페이 부분은 많이 힘듭니다. 따지실 분은 지원하지 말아주세요’라는 글이 적힌 공고문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연극업계에서 무보수 활동이 횡행하고 있다는 단적인 예다.

상황이 매우 열악한 소규모 연극은 총 관객수가 10명도 안 되는 경우도 잦다. 그러면 당연히 적자가 나서 배우들 출연료도 나오지 않는다. 얼마 못 가 공연이 중단되기도 한다. 문제는 출연배우들의 보수 지급이다. 이들은 연극 시작 최소 2~3시간 전에 도착해서 메이크업도 하고 리허설도 진행한다. 여기에 투자한 노동력과 연극출연에 대한 합당한 보수는 당연한 요구이자 권리다. 문제는 극단의 태도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떻게 보수를 지급할 수 있겠느냐’, ‘앞으로 높이 올라가기 위한 스텝을 밟았다고 생각하라’ 등의 태도와 열정페이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리랜서 배우의 경우는 능력에 따라 출연료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극단 소속 배우들이 제공 받는 식사나 출연료는 보장받지 못해 상황이 더 열악하다. 그렇다고 극단 소속의 배우들의 처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A씨는 “아주 오래 전 일인데 내가 기억하기로 소속이 있는 극단원의 경우 월 50만~60만 원을 받는다”며 “저녁 공연 시간 기준으로 오후 3시 즈음 나와 밤 11시까지는 기본으로 붙어 있는다”고 말했다. 공연이 있든 없든 그들의 ‘사이클’은 동일하다.

임금체불만이 문제가 아니다. 배우들은 일을 잘 못하는 경우 쌍욕을 듣기도 하고 빈번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특히 신입배우들을 막 대한다는 제보도 있다. B씨는 “배우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자주했다”며 “업계 바닥이 좁아 참고 일하는 그들을 보며 매우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극단 입장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배우들을 붙잡지 않는다. 그 자리라도 들어오려고 하는 배우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극단 대표들은 단역 한 자리 한 자리가 소중한 배우들에게 접촉해서 ‘내가 써줄 테니 들어와라’라고 꼬드긴다. 보통 회당 1만원 정도를 쳐주지만 무보수도 많다. 당시 프리랜서 배우였던 A씨는 회당 많이 쳐서 3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공연시간, 대기시간, 준비 및 마감시간을 합쳐도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액수다. 프리랜서 배우들은 법적으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해 법에 호소해 항의할 수도 없다. 업계는 이런 법의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과거 임금체불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A씨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돈을 주지 않기에 노동부에 신고한다고 말하니 그제야 출연료를 지급하더라”며 “내가 받는 회당 출연료가 평균 10만 원 정도인데, 3만원을 받기도 참으로 어려웠다”고 말했다. 연극업계에서는 극단적인 경우 회당 출연료를 나이 곱하기 1000으로 계산하기도 한다. 30살이면 30×1000으로 3만원이다. 그래서 많이 받으면 5만원 수준이다. 이렇게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연극업계들은 지자체나 메세나의 후원을 받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메세나는 공익사업 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지원활동을 말한다. 그래서 연극 기획안에 공익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넣으면서 한국메세나협회의 선정 기준을 충족시키려 한다.

노동 강도 비해 쥐꼬리 수입 ‘서글픈 현실’

A씨는 “주말의 경우 하루에 3~4편을 공연한다. 상업극의 경우 보통 3캐릭터(주연을 맡은 사람이 3명)로 간다”며 “보통 팀으로 움직이지만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바뀌는 경우엔 더 많은 연습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자하는 시간과 노동에 비해 출연료가 상당히 적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제때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하는 문제까지 겹치니 연극인들은 임금체불 문제가 단순한 노동권 문제가 아닌 ‘생존권’이 달린 문제가 됐다.

B씨는 “과거에 공연이 실패하면서 적자가 난 경우가 있었는데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순차적으로 임금을 늦게 받았다”며 “아예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B씨는 스태프들과 단체로 가서 노동청에 신고한다고 항의한 뒤에야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연극인들이 출연료 문제로 힘들다 보니 지자체의 후원을 받는 공연에 몰리기도 한다.

연극업계는 3년 전에 비하면 임금체불 문제가 상당히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배우들을 만나 보니 여전한 임금체불 및 부당한 대우에 지쳐가고 있다. 배우를 구하는 공고문에도 무보수를 연상시키는 글귀가 버젓이 적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연극계에서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A씨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에는 배우들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열정페이와 무보수에도 경력을 위해 극단에 지원하는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자리는 비좁은데 배우들이 넘쳐나니까 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끊이지 않는 연극인들의 임금체불 문제가 법과 제도의 정비로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