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론 취급 금융사의 부실한 대출심사도 한몫

제2금융권의 오토론이 대포차 유통에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주로 취급하는 ‘오토론’이 대포차 유통에 여전히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토론을 통해 구입한 차량을 업자들에 임의 처분을 하면서 해당 차량이 대포차로 둔갑되고, 오토론 약관 위반으로 대출 사고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매년 수사당국이 중고차 업체들을 중심으로 대포차 단속에 나서더라도, 오토론 차량으로 세탁된 대포차에 대한 적발과 해당 업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기 힘든 이유가 있었다.

오토론은 고객이 차량 구입자금에 조달할 목적으로 실행하는 대출상품으로, 대출이 실행되면 대출 고객은 해당 자금을 당연히 차량 구입에만 써야 한다.

특히 오토론 약관상 주요 조건이 있는데, 고객이 오토론 자금으로 차량을 구입해 소유권을 가지게 되면 대출을 실행해 준 금융사에 해당 차량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초 A씨 역시 고가의 외제차를 구입할 일부 자금에 쓰기 위해 B저축은행과 오토론 계약을 맺고 수천만원을 대출했다. 이어 A씨는 해당 외제차를 구입했고, 차량의 소유권을 취득하자마자 이 차량에 관해 B저축은행 측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다.

그런데 이로부터 약 9개월 뒤 A씨는 해당 외제차를 중고차 판매업체인 C사에 팔아넘겼다. 물론 그 과정에서 B저축은행의 동의는 전혀 없었다.

근저당이 설정된 담보물을 채권자의 동의도 없이 타인에게 임의로 처분한 당시 A씨의 행위는 배임죄에 해당하는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10월 대법원은 대출 채무자가 근저당권이 설정된 자동차를 임의로 처분하면서 대출 채권자의 저당권 실행을 불가능하게 했다면 해당 채무자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의 선고(2010도11665)를 내린 바 있다.

특히 A씨가 해당 차량을 C사에 팔아넘긴 행위는 불법·적법을 떠나, B저축은행과 맺은 오토론 약정에도 어긋났다.

B저축은행을 포함해 금융사들의 오토론 약정에는 고객의 기한이익 상실 조항을 두고 있는데, 만약 고객이 대출금을 차량 구입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거나 계약서류를 허위로 기재한다면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며 이때 금융사는 고객에게 채무의 즉시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또 A씨의 경우처럼 고객이 금융사의 승낙 없이 근저당이 설정된 차량을 임의로 처분했을 때 역시 기한이익 상실에 해당한다.

이후 B저축은행은 A씨가 근저당을 설정한 차량의 소유권을 임의로 C사에 넘긴 것을 뒤늦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B저축은행은 A씨에 대한 형사고소와 함께 민사소송을 통해 대출금 채무를 변제받고자 했지만, 당시 A씨는 개인회생 신청을 하면서 당연히 해당 채무를 상환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B저축은행은 C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C사가 A씨로부터 매수한 해당 차량의 소유권을 취득하면서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는 점을 모를 리 없었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C사 역시 해당 차량이 A씨와 대출 등의 관계로 얽힌 담보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거나, A씨로부터 대출금 채무를 승계하기로 합의한 채 해당 차량을 인수했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B저축은행은 C사를 상대로 A씨가 자사에 변제해야 할 대출금 상당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법원은 B저축은행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C사가 A씨로부터 해당 차량을 매수할 당시 대출금 채무를 승계하기로 합의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오토론 차량 소유권자가 직접 처분… 대포차 업자들에게 구실 만들어줘

사실 당시 법원의 판결은 이의의 여지가 없었다. B저축은행 측의 주장은 A씨와 C사가 공모해 C사가 A씨의 오토론 대출금 채무를 대신 변제해주기로 약정한 채 해당 차량을 매수한 것이라는 내용이었고, 이에 대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패소 판결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주목해 볼 점은 당시 A씨와 C사 간의 거래가 업계에서 전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오토론을 이용한 ‘대포차’ 유통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대포차는 업자들이 운행정지 상태거나 훔친 차량을 매입해 차 번호판 및 자동차등록증을 위조하는 형식으로 유통된다.

또 다른 수법 중 하나는 바로 A씨의 경우처럼 금융사로부터 오토론을 통해 구입한 차량 또는 리스차 소유자들에 대포차 업자들이 접근해 대출금 또는 리스 채무를 자신들이 승계하는 조건으로 차량의 소유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만약 A씨 등 오토론 채무자나 리스차 소유자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어 오토론 대출금이나 리스 대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었다면, 업자들의 해당 제안을 받아들여 차량의 소유권을 넘기기 쉽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근저당이 설정된 차량을 금융사의 동의도 없이 임의 처분하는 행위는 불법이자 약관 위반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어차피 대출금 채무가 타인에게 승계되는 것일 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업자들에게 차량을 순순히 넘기게 되고, 해당 차량은 이후 대포차로 둔갑하게 된다.

문제는 금융사들이 향후 근저당 설정된 차량이 임의 처분된 사실을 인지해 채무자에게 대출금의 즉시상환을 요구하자, 해당 채무자가 “차량을 매수한 업체에서 대출금 채무를 승계해 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업자들이 이를 발뺌하면서 관련 증거들이 없다고 반박하고 나선다면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이다.

A씨의 경우와 같은 대출 채무자들이 차량을 임의 처분 하면서 업자들이 대출금 채무를 승계하겠다고 했을지라도 이것이 정식 계약형식이 아닌 구두상으로 이뤄졌다면 사실상 해당 협의는 무효에 해당한다. 또 오토론 차량은 리스차와 다르게 차량의 소유권이 금융사나 리스차 업체가 아닌 채무자 개인 소유로 등록돼 있는 만큼, 업자들이 오토론 또는 근저당이 설정된 차량인지 몰랐다며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이들 업자들은 이미 해당 차량을 대포차로 세탁해 처분한 만큼, 차량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C사는 중고차 업체들이 밀집한 지역에 설립돼 사원이 5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법인으로 A씨로부터 근저당이 설정된 차량을 매수한 점 그리고 A씨의 주장에 따르면 대출금 채무를 승계하기로 협의했다는 점에 있어 대포차 판매업체로 의심받기 충분했다.

그러나 C사는 해당 의혹들을 부인하며 역시 A씨로부터 오토론 차량이라는 사실을 듣지 못한 채 차량을 매수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B저축은행은 A씨나 C사 어느 쪽으로부터도 오토론 대출금을 제대로 상환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수사당국에서 매년 대포차 근절을 위한 단속에 나서더라도, 이런 오토론을 통한 차량의 불법거래 그리고 이 수법으로 차량이 대포차로 둔갑해 유통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점에 있어 근본적 책임은 오토론을 취급하는 금융사에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토론을 통해 차량을 구입한 채무자 중 도중에 급전이 필요해 대포차 업차들에 차를 처분하는 경우, 대부분이 처음부터 대출 상환능력이 매우 부족했던 ‘카푸어(Car Poor)’들이라는 설명이다.

오토론 실행 전 고객이 대출금을 제대로 상환할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차량을 구입할 여지가 되는지를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채 금융사들이 무리하게 대출을 실행한 점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본지의 취재에 응해준 저축은행사 관계자는 “오토론 고객들이 급전이 필요해 대포차 업자들에 차량을 임의로 처분하면서 대출 사고나 대포차 양산 등의 문제는 과거에도 반복돼 왔고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라며 “대출 실행 전 오토론 상담 고객에게 차량의 임의 처분 행위가 불법이자 약관 위반이라는 점을 보다 명백히 전달한다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고, 수사당국에서도 의심되는 중고차 판매상에 대한 주기적 감시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민철 기자 kawskha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