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성폭력 징계만 16건…대한체육회 책임론도 비등

국내 체육계의 감춰진 폭력ㆍ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를 맡았던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력 행위가 드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도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행 혐의도 폭로됐다. 과거에도 이런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사회적 공분이 거세게 일어난 적은 없었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내부 고발이 가져온 영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회, 대한체육회 등에서 대책을 내놓으며 범 국가적 차원의 후속 조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강력한 ‘책임론’도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조재범 전 코치의 폭력행위가 처음 폭로됐다. 지난 8일엔 그의 성폭행 혐의까지 추가 폭로됐다. 피해자인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증언에 따르면 조 코치는 피해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스하키 채로 때린 것은 물론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더욱 심한 폭력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뒤이어 조 전 코치는 고등학교에 올라간 피해자를 수년간 성폭행한 혐의까지 받았다. 심석희 선수는 관련 사실을 자세하게 폭로하고 조 전 코치를 추가 고소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대상범죄특별수사팀은 18일부터 조 전 코치를 성폭력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김영주의원실 (대한체육회 제공)

체육계의 폭력 및 성폭력 문제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한체육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체육계의 폭력ㆍ성폭력 등으로 인한 징계 건은 124건이다. 성폭력 징계는 16건으로 집계됐는데, 빙상연맹이 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중에는 미성년자 피해 사건도 2건이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빙상연맹 지도자가 최근 5년간 폭력으로 8건의 징계를 받았다.

체육계의 폭력 행위는 지도자와 선수 사이, 선수와 선수 사이, 심판을 상대로 벌어지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최근 5년간 대한체육회와 각 종목별 단체, 시ㆍ도체육회 등이 폭력ㆍ성폭력ㆍ폭언 등으로 징계한 사건 중 가장 많은 징계를 받은 종목 단체는 축구협회로 총 53건이다. 뒤이어 대한빙상연맹이 8건, 대한복싱협회가 7건으로 뒤를 잇는다. 이번 통계는 초등학교부터 국가대표까지 모두 아우르는 연령대에서 발생한 사건을 집계한 것이다. 3면에 제시된 <도표>를 보면 대부분의 체육 종목에서 폭력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체육계 내부의 폐쇄적인 구조와 위계적인 질서로 인해 원활한 신고가 되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폭력ㆍ성폭력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15일 오전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가 열리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앞에서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빙상연맹이 가장 많은 성폭력 징계 건수

특히 성폭력으로 인한 징계 사건만 16건으로 확인됐다. 빙상연맹 5건 중 4명은 영구제명, 1명은 자격정지 3년 처분을 받았다. 대한볼링협회 소속의 한 고등학교 코치는 훈련 및 대회기간 중 제자를 성폭행해 영구제명됐다. 대한테니스협회 소속의 한 초등학교 코치도 과거 제자를 성폭행했던 사실이 드러나 작년에 제명됐다. 스키협회 징계 건은 선수 간에 벌어진 일이다. 국가대표 스키선수 2명은 국제대회 중에 음주 후 선수를 폭행 및 추행해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다.

가해자들이 징계를 받았음에도 복귀하는 일도 있었다.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2015년 대한수영연맹의 전 국가대표 코치는 폭행과 성추행으로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지만 지난해 대한수영연맹 지도자 위원으로 임명됐다. 또한 충남대학교 소속의 배구선수 3명도 3년 자격정지 처분이 끝나기도 전에 학교로 복귀한 경우도 있다.

김영주 의원은 대한체육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간 비리행위 및 성폭력, 폭력 등으로 대한체육회와 종목 단체의 징계 860건을 분석했다. 김 의원은 “징계 중 복직ㆍ재취업한 경우가 24건, 징계 후 복직ㆍ재취업한 사례가 299건으로 집계됐다”며 “스포츠계 비리 행위자 및 폭행ㆍ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폐쇄적인 구조 탓에 알려진 사건보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더 많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회 차원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지난 10일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일명 ‘운동선수 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지도자의 폭력 행위의 경우 지도자 자격을 정지 및 영구제명, 지도자에 대한 폭행, 성폭행 예방교육 법적 의무화, 체육인 인권보호와 공정성 확보를 위한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이 주요 내용이다.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체육계의 폭행, 성폭행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지난 국정감사에서 체육계의 적폐와 체육단체의 나태함이 심각히 지적되었음에도 혁신대책을 내놓지 않더니, 사건이 보도되자 면책성 졸속 대책을 내놓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자성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의 정밀한 혁신방안을 촉구하며 체육계의 폭행ㆍ성폭행을 근절하기 위한 입법 조치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국회, 체육계 폭력 근절 위한 입법 나서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9일과 16일 연달아 후속 대책을 내놨다. 문체부는 대 국민 사과문을 내고 “그동안 정부와 체육계가 마련한 모든 제도와 대책이 사실상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모든 제도와 대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올 3월까지 규정을 마련해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관련 단체에서 종사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성폭력 등 체육 분야의 비위 근절을 위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 외부 전문가와의 합동조사반을 구성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체육 분야 성폭력 지원 전담팀 구성, 체육 관계자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다.

지난 16일 문체부는 후속 조치로 국가대표 선수 관리와 운영 실태에 대해 감사원 주도의 공익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한체육회와의 자체적인 합동조사가 신뢰를 하락시킨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참여를 통해 객관성과 전문성, 실효성을 높이고 독립적인 ‘스포츠 윤리센터’ 설립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체육회도 지난 15일 ‘각종 가혹행위 및 (성)폭력 근절 실행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인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및 국내외 취업 원천 차단’,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적 개선 방안 확충’, ‘성폭력 조사 및 교육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 실시’, ‘선수 육성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 방안 마련’ 등 정부ㆍ시민단체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즉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체육계 시민단체들은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지난 17일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문화연대 등 체육계 시민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대한체육회와 이기흥 체육회 회장에 대한 징계를 촉구했다. 문체부가 대한체육회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책임론에 대해 난색을 표한 것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다. 이들은 “올림픽 헌장은 보편적 기본윤리 원칙에 입각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스포츠 활동 참여를 인권으로 본다”며 “선수의 인권과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넘는 그 어떤 권력, 편견, 판단을 부정한다”며 대한체육회의 책임을 주장했다. 당장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대한체육회와 대한체육회장을 징계하고 파면하라는 것이 그들의 외침이다.

오영우 문체부 체육국장이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이숙진 여가부 차관과 함께 체육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 대책과 향후 추진방향을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이기흥 회장 인맥 챙기기에 비판 목소리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은 수영연맹 회장 시절에도 측근들과 함께 수영장 개조비 및 국가대표 훈련비 횡령 혐의로 구설수에 오른 사람”이라며 “비리를 저지르고도 이들이 다시 주요 자리에 앉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소장은 이 회장의 보은 인사와 인맥 정치를 규탄했다. 그는 “대한체육회장 선거 과정에서 도와준 측근들과 특정 종교 인맥을 지나치게 중용했다”며 “갑자기 태릉선수촌 부촌장 자리를 만들어 대한불교조계종중앙신도회 출신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보은 인사, 인맥 챙기기라는 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체부는 2018년 5월 23일 빙상연맹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빙상연맹을 대한체육회의 관리단체로 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리단체란 단체의 관리가 부실하다고 판단되면 대한체육회 결정을 통해 직접 관리를 받는 형식이다. 기업으로 치자면 법정관리와 비슷하다. 최 소장은 이와 관련해 “처음에 대한체육회와 이 회장은 문체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당시 문체부 차관이 직접 대 국민 사과를 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며 발표한 내용인데도 반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2018년 9월 20일 빙상연맹은 관리단체로 지정됐으나 석 달 가까이 문체부가 요구한 징계를 수용하지 않았다. 빙상연맹이 관리단체가 되면 관련 예산도 문체부가 주게 돼 있다. 문체부의 직접적인 관리를 꺼려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대한체육회장은 선출직이다. 이 회장이 문체부와 각을 세우고 국회의 눈치를 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 소장은 “이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이유는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대한체육회 회장의 자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건이 터진 후에도 이 회장은 제대로 대응한 적이 없다. 납작 엎드려 복지부동해 소나기 지나가기만을 기다린 것 말고는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사건이 공개되자마자 문체부는 바로 다음날 사과와 개선책을 내놨지만, 대한체육회는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지난 15일에야 사과문과 개선책을 발표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