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사고 순간

5월 30일 오후(현지시간) 한국인 관광객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사진=연합뉴스)
헝가리 부다페스트 29일(현지시간) 침몰한 유람선의 한국인 탑승객 33명은 대부분 ‘참좋은여행’의 패키지 상품 관광객들이었다. 지난 25일 출국해 발칸반도 및 동유럽 6개국을 7박8일간 도는 일정이었다. 29일 다섯 번째로 헝가리에 도착해 부다페스트 관광을 한 뒤 이튿날 오스트리아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사고 당일 부다페스트에는 종일 비가 내렸다. 관광은 일정대로 진행됐다. 이날의 마지막 코스가 다뉴브강 야간 유람선 탑승이었다. 유람선 투어는 부다페스트에서 왕궁과 국회의사당 등을 감상하는 인기 코스다. 30일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이날 유람선 ‘허블레아니’에는 헝가리인 승무원 2명과 한국인 33명이 탔다.

30일 연합뉴스 등 국내외 언론 인터뷰에서 부다페스트에서 관광 가이드로 15년 동안 활동한 석태상씨는 “당시 다뉴브강 선착장에서 서서 유람선 침몰 사고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50m 정도 눈앞에 해당 유람선이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커다란 크루즈와 거의 붙어 있는 게 먼저 보였다”며 “그 순간 크루즈가 유람선을 밀듯이 치고 지나갔다”며 “이 충격에 유람선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크루즈 밑으로 그냥 쑥 빨려 들어갔다”고 전했다.

석씨는 직후 소방당국에 사고 신고를 했고, 한 10여 분쯤 지나자 다뉴브강을 지나던 모든 배가 멈춰섰다고 했다. 석씨는 유람선 침몰 뒤 강물 밖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속이 워낙 빨라서 아마 침몰 즉시 하류 쪽으로 떠내려갔을 걸로 본다”며 “구조된 분들은 핸드폰 불빛 때문에 목숨을 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15년간 가이드로 일하면서 이런 큰 사고는 처음 본다”며 “유람선(허블레아니호)이 선착장으로 다가올 때만 해도 갑판 위에 20명 정도가 서 있었고, 아래 선실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도 보였다”며 “크루즈와 추돌 순간 유람선 갑판에 서 있던 사람들은 강물에 빠지고, 일부는 난간을 잡기도 했다”고 전했다. 석씨는 “배가 몇 초 사이에 가라앉았다”며 “크루즈가 워낙 크고, 유람선은 그에 비해 너무 작아 유람선이 마치 크루즈로 빨려 들어가는 듯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람선이 쓰러지는데 추돌 충격 탓인지 유람선이 두 동강이 나는 듯 보였다”며 “가라앉기 직전에는 배 선미 끄트머리가 양쪽에 떠 있다가 서서히 동시에 강물 아래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현지 매체들은 구조자 중 한 명이 사고 지점에서 약 3.2㎞ 떨어진 페퇴피(Petofi) 다리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유람선 ‘허블레아니’와 충돌한 길이 135m의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의 탑승객은 자신들이 탄 선박의 뱃머리에 긁힌 흔적이 뚜렷했지만, 추돌 당시 충격을 전혀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바이킹 시긴에 타고 있던 미국인 관광객 진저 브린튼(66)은 “우리는 발코니에 있었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물속의 사람을 보았고 정말 끔찍했다”고 말했다. 이 선박의 또 다른 탑승객인 미국인 관광객 클레이 핀들리(62)는 “사람들이 배 뒤쪽에 있는 상황에서 배가 뒤집히는 것을 봤다 ” 며 전체 사고가 매우 빨리 일어났다고 밝혔다. 당시 이 사고로 바이킹 시긴에 타고 있었던 사람 중 다친 사람은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30일 외교부 브리핑에서 “현지 공관에 따르면 사고가 순식간에 발생했고, 당시 유속이 워낙 빨라서 탑승객들이 순식간에 물속으로 빠졌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현지 교민이 오후 10시쯤 현장 주변을 지나가다 목격하고 헝가리 공관 영사에게 상황을 알렸다”면서 “공관은 이어 10시45분(한국시간 30일 새벽 5시45분)쯤 한국 본부 해외안전관리센터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생존자 7명 중 병원에서 퇴원해 부다페스트 한 호텔에서 머물고 있는 한국인 4명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어둠 속에서 물에 빠진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송된 호텔에 도착했을 당시까지 구조된 7명 중 4명은 호텔 로비 소파에서 흐느끼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정모씨(31)는 사고 당시 갑판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했다. 갑판에는 사진을 찍거나 하선을 준비하는 관광객 약 20명이 있었고, 나머지 10여명은 아래쪽 선실에 모여 있었다. 정씨는 “물살이 너무 빨라서 사람들이 떠내려가는 순간에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정씨는 “큰 크루즈선이 접근하는 걸 봤지만 설마 그 유람선이 그대로 우리 배를 들이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큰 유람선은 한국 관광객이 탄 유람선에 살짝 부딪친 뒤 다시 강하게 추돌했다는 게 생존자들의 증언이었다. 또 다른 생존자 안모(60)씨는 수영을 하며 간신히 버티다 주변의 다른 유람선에 탄 선원이 내민 손을 간신히 붙잡고 안도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안씨는 “손을 계속 붙잡고 버티려고 했지만 미끄러져서 결국 떠내려갔다”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떠내려온 물병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여행사가 강우 속에서 일정을 강행한 데 의문을 나타내면서, 사고 후 구조체계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유람선 투어 출발 전 사고 시 대처요령 등 안전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야간 유람선을 타는데 사고 대응체계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면서 “뒤늦게 나타난 구조대는 나처럼 구명튜브를 잡은 사람들이나 다른 유람선 선원이나 관광객이 붙잡고 있었던 분들을 건져내기만 했을 뿐”이라고 했다. 생존자들은 특히 사고 선박과 부딪친 대형 크루즈선이 사고 이후 구호조처도 없이 계속 같은 방향으로 운항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종혜 기자



이종혜 기자 hey33@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