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의 정규직화’ 민주노총 총파업 / 학부모들 “아이들 내팽개치는 모습에 화난다”

지난 3일 민주노총 소속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예고한대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총파업에 참가하는 단체는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교육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공공운수노조, 민주일반연맹, 서비스연맹 산하의 노조에 조직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찬반투표를 통해 쟁의권을 획득한 이들은 1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민노총은 이 노동자들이 모두 총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민노총의 파업에 염증을 느껴 등을 돌리는 국민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이번 총파업은 과거 파업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규모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근무하지만 계약직 근로자로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다. 보통 학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경비, 급식, 기간제 교사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이 총파업에 돌입하자 전국의 초·중·고교에서는 급식이 전면적으로 중단됐다.

2500여 곳의 학교에서 급식 중단

지난 4일 오전 11시 광화문광장. 민노총의 총파업이 아니라면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노동자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을 시간이다. 분홍색과 형광색 등의 색으로 가득찬 광화문 광장은 격렬한 구호로 가득차며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파업 투쟁으로 비정규직을 완전히 철폐하자!” 학교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맞나 싶을 정도의 단결력과 투쟁력은 주위의 사람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파업에 참여한 학교의 급식조리원 A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 차이가 심하다”며 “정부가 공공부문의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업에 참여한 한 돌봄교사는 “돌봄교사도 엄연히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인데도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이유로 갖은 차별을 당한다”라며 “단순히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이 아닌 선생님으로서의 자존감을 세워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파업에 참여한 명분은 갖가지의 이유가 있었지만 목적은 ‘비정규직 철폐’로 묶여있었다.

“이익 위해 교권 내팽개치는 게 맞으냐”

중학생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맞벌이 부부라 아이들의 도시락을 챙겨주기 힘들다”며 “울며겨자먹기로 도시락업체에 주문해 새벽같이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챙겨온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학부모는 “아직 아이가 저학년인데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된다”며 “자기들의 욕심 때문에 교권을 내팽개치는 모습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파업을 지켜보는 학부모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와 비슷했다.

총파업엔 급식조리원과 돌봄교사 등 학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2만 2000여 명으로 가장 많이 참여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비정규직 철폐’ 딱 하나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임금상승, 처우 개선 등이 포함된 복리후생이 개선된다.

지난 4일 오후 광주 서구 유스퀘어광장 건너편 도로에서 학교 비정규직연대회와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파업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

상대적 박탈감이 파업의 명분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를 지켜본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곧 자신들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정부가 공약을 실제로 이행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으며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공약 이행 의지가 워낙에 강력했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부문에 대폭 투자하고 있는 정부 방침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한줄기 희망으로 통했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정규직화라는 정책은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다. 예산 확보, 조직 개편 등의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국회의 예산 관련 동의 등의 절차도 필수적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며 공약 이행에 있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이낙연 총리는 지난 4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노조는 주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지만 예산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재정 여건과 기관의 경영 상태를 고려하면서 처우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여권은 민노총 눈치 보기에 급급

이 총리가 직접 나서 총파업 진화에 나서자 국회에서도 민노총과 대화를 시도하는 등 정치권 전반이 ‘민노총 달래기’에 나섰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4일 김명환 민노총위원장 등 민노총 집행부와 곧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번 사무금융노조 행사에 갔다가 (김 위원장에게) ‘언제 한번 보자’고 인사했는데 구속돼 만나지 못했다”며 “이제 나왔으니 다음 주쯤 시간을 조율해 우선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은 대체로 민노총에 우호적인 분위기다. 실제로 전날 국회 대표연설에서 이인영 원내대표는 “김명환 위원장의 구속 수사가 정말 능사였는지 저는 반문한다”며 “편견의 시각을 거두면 우리에게 새로운 포용과 공존의 길이 보인다”고 말했다. 민노총을 바라보는 업계와 관련 국민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국내 최대 조직 중 하나인 민노총의 표심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부별로 조직적인 총파업 지속

민주노총은 지부별로 상당히 조직적인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울산본부는 울산시청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와 차별해소 및 처우개선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3일부터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울산본부는 “민주노총은 이들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본부 외에도 대구본부, 광주본부 등 지역본부는 각 지역에서 조직적인 총파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총파업 향방은 이번 주에 예정된 정치권과의 대화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