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지 리모델링 사업 등 인근 농경지 배수 막아 침수…농어촌공사 등 책임

일상용품은 물론 바깥 공기를 통해서도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시대. ‘환경의 역습’이 시작됐다. 그에 따른 갈등도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는 환경 분쟁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알아두면 좋을 환경법은 무엇이 있을까. <주간한국>과 환경 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이 함께 살펴봤다. 구성은 각 소송의 판례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했다. [편집자주]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2014년 7월. 경북 칠곡군의 한 농민이 단단히 뿔났다. 자신의 농경지 인근서 국가가 시행하는 이른바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 이뤄졌는데, 그로 인한 피해가 상당했다. 예컨대 본인 농경지 지반의 높이보다 사업지에 설치된 배수로가 더 높아 배수가 안 되는 식이었다. 시간이 흘러서는 자연배수가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에 다다랐고, 이는 침수로 이어져 결국 이 농민이 식재한 조경수 등은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이 발주하고 한국농어천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시행한 사업들이었다. 농민은 이들 모두를 상대로 손해배상 등 소송에 나섰다.

2014~2017년 경북에서 다기능보 설치 등으로 인한 농경지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농민

“대한민국은 4대강 사업 일환으로 수자원공사를 발주기관 삼아 다기능보 건설공사를 시행 및 완료했습니다. 농어촌공사는 4대강 사업으로 발생하는 하천 준설토를 저지대 농경지에 뿌리는 이른바 ‘농경지 리모델리 사업’을 시행 중입니다. 그런데 둘 다 문제가 큽니다. 먼저 다기능보 건설 등 때문에 낙동강 주변 지하수위가 올랐습니다.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지에 쌓인 토지는 제 땅의 베수로보다도 높게 쌓였습니다. 그런 탓에 제 땅에서 자연배수가 안 돼 야생화 등이 전부 죽었다고요. 참고로 저의 부지는 리모델링 대상지가 아닙니다. 이 피해는 전부 보상해주세요.”

농어촌공사 등

“농민의 피해는 안타깝지만, 과연 그것이 저희들의 사업 때문인지를 입증할만한 증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과관계를 증명할 만한 단서가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1심 재판부(2016년 6월)

“피고 대한민국은 해당 사업을 시행하면서 이 같은 피해가 발생할 줄 예상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대책을 세웠어야 했단 뜻입니다. 실제 4대강 사업 지하수 유동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다기능보 건설로 인한 지하수위 상승, 그로 인한 일부 부지의 침수피해 예상 등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다는 말입니다. 특히 이 농민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정부 측에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더군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예상되는 피해를 사전에 막지 않은 데 대한 피해는 대한민국과 농어촌공사 모두 해당합니다.

다만 수자원공사의 경우 다기능보 건설사업의 시행자가 아닙니다. 관리만 할 뿐이에요. 따라서 해당 보 건설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담수 등으로 인해 농민 피해가 심화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요.

따라서 본 재판부는 대한민국과 농어촌공사 측에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합니다. 그러나 원고 측인 농민 역시 자신의 부지가 지리적 특성상 침수가능성이 높은 곳임을 4대강 사업 이전부터 알았을 겁니다. 따라서 피고들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의 80%로 제한하겠습니다.”

2심 재판부·대법원(2016년 12월~2017년 5월)

“앞선 재판에서는 다기능보 담수에 따른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네요. 하지만 본 재판부가 보기엔 다릅니다. 다기능보는 축조만 돼도 지하수위가 상승할 가능성이 적지 않죠? 그런데 축조된 후에는 담수까지 이뤄집니다. 이런 요인들이 지하수위를 상승시키는 데에 줄곧 영향을 줬음은 상식이 아닐까요. 따라서 수자원공사 역시 이 농민의 피해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본 재판부는 이 같이 판시하는 한편 그 외 사항들은 원심 내용을 그대로 확정하겠습니다. 대한민국과 농어촌공사 등은 모두 해당 농민에게 피해를 보상토록 하세요.”

이승태 변호사

“사건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농민은 다기능보 건설 및 운영으로 지하수위가 높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 배수에도 영향을 주면서, 자신의 땅이 침수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사업시행자 및 관리 업무를 맡은 대한민국과 한국농어촌공사, 수자원공사가 일제히 농민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다퉜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농민 손을 들어줬고요.

이 사건 판결은 ▲사업 보고서 및 사업 진행 절차를 근거로 ▲피해 발생 예상가능성을 따져 사업시행자의 과실을 판단하고 ▲사업시행자의 과실과 환경 피해 간의 인과관계를 밝혀 ▲행정부의 사업으로 인한 피해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현재 한국의 법을 보면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 등 공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는 고의·과실 및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이 완화돼 있습니다. 하지만 위 소송은 민법 제750조에 의한 ‘일반 불법행위책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한 것인데요, 여기서도 과실과 인과관계를 법원이 인정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실제 이 소송은 초반만 해도 농민이 불리해 보였습니다. 사업 시행 당시 재배하던 조경수와 야생화가 무엇인지, 굴취·반출 한 수량을 제외한 수량이 얼마인지 등을 증명하지 못했거든요. 그럼에도 감정인이 경험칙과 합리성에 기반한 감액 등을 통해 산출한 손해액을 법원이 인정 한 사안입니다.

위 판결로 지하수 수위 변화 피해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의 고의·과실 및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이 완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환경 분쟁 조정법에 따르면 ‘환경피해’ 범위에는 지하수 수위 또는 이동경로의 변화로 인한 건강상·재산상·정신상의 피해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승태 변호사=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의 대표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윤리이사, 국무총리실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및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의 고문변호사 등을 역임 또는 활동 중이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