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이 낳은 위기감의 발로…지방분권 주장까지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영남권과 호남권을 중심으로 한 ‘메가시티’ 조성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수도권과의 격차 해소와 지역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해법 모색이 활발해지는 모양새다. 영·호남 지역의 이 같은 움직임은 국토의 균형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 대부분의 정부가 공약과 실패를 반복해온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절박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해법을 찾기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메가시티 조성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수도권 밀집 현상을 타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 교육, 금융, 일자리 등의 인프라를 필연적으로 끌어와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중앙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메가시티 성공의 열쇠라고 입을 모은다.

동남권 ‘부·울·경’ 묶어

전북은 ‘새만금’ 메가시티 꿈틀

전북 새만금 방조제.
영남과 호남은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 일제히 ‘자생’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서 벗어나 실천을 위한직접 행보에 나섰다.

지난 17일 부산시와 대구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북도·경상남도 등 영남권 5개 시·도는 ‘영남권 발전방안 공동연구’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각 5000만 원씩 분담해 부산연구원·대구경북연구원·울산연구원·경남연구원에 ‘영남권 광역 행정권 구축방안’ 마련을 위탁했다는 것이다. 오는 8월 연구가 마무리 되면 영남권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거점으로 도약할 채비를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연구의 주된 내용은 광역교통, 역사문화관광, 환경, 한국판 뉴딜 등 분야별 당면현안을 검토한 후 앞으로 영남권의 공동대응이 필요한 분야별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담겼다. 이를 통해 영남권의 초광역 협력 프로젝트 사업을 마련해 실행계획을 수립키로 했다. 국내외 사례분석을 통한 영남권 광역 행정권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해법을 찾는다는 방침이다.

해당 지자체들은 ‘국가 균형발전 및 지역상생’을 위해 이렇게 나섰다고 전했다. 이들 가운데 경남도는 지난 20일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5개 기관과 ‘하이퍼튜브 등 친환경 미래 철도 구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미래의 철도기술인 하이퍼 튜브를 앞세워 동남권 메가시티를 비롯한 균형발전 전략에 활용하겠다는 포석이다.

전라북도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전북형 메가시티’가 지역 정가의 화두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발단은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 등이 10년 간 벌여온 새만금 방조제 관할권 분쟁이 지난 14일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되면서다.

전북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새만금권을 중심에 둔 광역화 추진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전북도 산하에 ‘통합 새만금시’를 조성해 각종 인프라 구축 및 기업 유치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지난 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새만금권 광역화 및 전주·완주를 통합한 전북형 메가시티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위기감

영남권 5개 시도 단체장이 수도권에 상응하는 ‘그랜드 메가시티’ 육성에 뜻을 같이 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영·호남 지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절박한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피폐화되는 지역경제, 청년층의 인구 이탈 등이 계속 심화되면서 지방 도시들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탓이다. 그러다보니 지자체들은 예산 부족의 악순환 때문에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지역균형을 넘어 지방분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영남권 한 지자체의 고위 관료는 “수도권이 국내총생산(GDP) 약 52%를 차지하는 지금의 실상이 이어지면, 미래에는 도무지 답을 찾기 어렵겠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메가시티 논의의 바탕에는 균형론보다는 분권론을 말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키웠다”며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서라도 자본과 일자리 등을 끌어올 요인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최근 부쩍 대두됐다”고 부연했다.

이 관료는 이어 “전북에서도 메가시티가 언급 중이지만 경상도 지역의 경우에는 당초에 동남권에 한하려던 구상이 영남권까지 확대된 것인데, 이는 인구를 약 1300만 명 정도는 묶어야 지역내총생산(GRDP) 등으로 수도권에 비견할만하지 않겠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영남권 일부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에 연봉 6000만 원 이상을 제시해도 채용할만한 지역인재가 없다는 불만마저 상당히 고조된 현실”이라며 “무엇보다 지금처럼 지방단체장과 정권이 같은 정당 소속일 경우 중앙정부에 대한 지역사회의 문제제기 및 요구가 어려웠던 전례를 장기간 학습해 온 탓에 ‘더는 중앙정부에 기대하지 말자’는 자성과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지역균형, ‘톱다운’ 방식으로는 실패

청년이 살만한 도시 만들기가 관건

전북대학교 캠퍼스 정문 앞.
영·호남 지역의 메가시티 조성이 지역불균형 완화에 실질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생활권 통합을 넘어 청년층의 거주 여건을 상향하는 작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방 소도시의 소멸위험과 대도시의 축소 문제를 야기한 현상적인 원인은 결국 청년인구 유출에 있기 때문이다. 비단 일자리 문제가 아니더라도 청년들이 지낼만한 공간 조성은 메가시티 개발의 전제이자 중심축으로 꼽힌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메가시티 조성을 논의 중인 지역들은 청년층 이탈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일자리를 찾거나 취업을 주로 하는 20대 후반 연령대의 유출 규모가 특히 크다. 지난해 1~11월 해당 연령대의 유출 현황을 보면 ▲부산시 4321명 ▲울산시 1666명 ▲전라북도 3439명을 각각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서울은 1만6413명, 경기도는 1만8094명씩 늘어난 점과 대조적이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영·호남에서 메가시티 조성의 물꼬가 트인 사실 자체만으로도 긍정적 요소가 다분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구현될 메가시티의 모습은 청년들의 활동 영역을 충분히 담보할 ‘융복합 공간’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 교수는 “그간의 전례에 비춰 지방정책은 톱다운 형식으로는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최근 메가시티 논의는 지방의 자체적인 의지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방이 지닌 각종 문화적 특성 등을 고려해서 미래비전은 각각의 지역이 세우고, 중앙정부는 전개 과정에서 불거진 현실적 문제 등에 관한 지원책을 더해주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마 교수는 특히 “모든 지역에는 이른바 ‘성장거점’이라는 것이 있고,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는 일자리와 문화 여건 및 물적 자원들이 집적돼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이 선호하는 공간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반면 지방은 혁신도시라고 한들 외곽에 택지개발 등에 주력했을 뿐, 청년이 살만한 4박자 즉 ‘일하기(work), 놀기(play), 살기(live), 배우기(learn)’가 각각이다”며 “각각의 요소들이 집약된 융복합 거점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