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로 인해 세계 경기 회복 흐름이 탈선되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월가의 주류로 형성되고 있다. 다만, 테일 리스크(tail risk)인 새로운 ‘백신 탈출’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는 점은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테일 리스크는 가능성은 적으나 발생 시 자산가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이다.

글로벌 분석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CE)는 4일 델타 변이가 선진국보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신흥 경제권에 더 큰 위험 요인으로 평가했다. HSBC도 “아시아 등 신흥국이 수개월 내 경제 활동이 회복되더라도 성장 후유증이 더 지속할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또한, 수출 모멘텀이 약화하는 등 경기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해 아시아 역내 중앙은행들이 완화적 통화 기조를 지속할 것으로 관측했다.

이에 앞서, 구네 딩그라 모건스탠리 전략가도 “영국에서 신규 환자가 급증했으나 조금씩 환자 수가 줄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발(發) 경기 하강 불안감이 과장됐음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지난달 27~28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팬데믹에 가장 악영향을 받는 부문은 개선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는 6월 회의에서 “팬데믹에 가장 악영향을 받는 부문이 계속 약한 상태이다”란 표현보다 진전된 발언이다.

한편, 크리스토퍼 그랜빌 TS롬바르드 분석가는 “델타 변이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 흐름이 유지된다는 것이 기본 시나리오이다”고 밝혔다. 다만, 국가·지역별 격차 위험과 테일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테일 리스크는 아직 접종이 완료되지 않았으나 재봉쇄 조치가 느슨한 선진국에서 새로운 ‘백신 탈출(vaccine escape)’이 출현하는 것이다. 백신 탈출은 바이러스가 변화하면서 백신의 효능을 회피하고 계속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랜빌에 따르면, 접종 거부 등 백신 망설임의 비싼 대가는 러시아에서 입증됐다. 4일 존스 홉킨스대학 집계 기준, 러시아의 1차 접종률은 25.2%이며 2차까지 접종을 완료한 비율도 17.5%에 그치고 있다. 러시아는 스푸트니크 등 자체적으로 백신 3종을 개발했음에도 국민의 거부 현상이 높다. 이에 따라 환자 수는 625만 명이고, 사망자 비율은 2.5%까지 치솟았다.

델타 변이가 상륙하기 전 러시아의 사망자는 100만 명당 5명으로 매우 우수했다. 그러나, 낮은 접종률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염 속도가 빠른 델타 변이가 덮치면서 무너졌다. 또한, 러시아는 봉쇄에 대한 저항이 높아 전염성이 높은 델타에 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그랜빌은 “현재 델타 변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중국의 저(低) 위험/보상과 미국과 영국의 고(高) 위험/보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저위험/보상은 봉쇄 조치를 도입하지만, 환자 발생이 높은 특정 지역에 국한해 실시한다. 백신 접종을 독려하면서 이동 제한 조치도 동시에 도입한다. 따라서, 소비 위축 등 경제적 피해는 발생할 수 있다. 대신 앞으로 전 국가적인 봉쇄 가능성은 작아진다. 그만큼 경기 회복이 완전히 전복될 위험도 작다.

미국과 영국에서 채택한 고위험/보상 방식은 봉쇄 조치를 재도입하지 않고, 가능한 ‘백신 장벽(wall)’에 의지하는 것이다. 영국은 7월 19일을 ‘자유의 날’로 선포하고, 코로나19 관련 모든 봉쇄조치를 해제했다. 이동성을 제한하지 않음에 따라, 의료시스템은 포화 상태에 들어갈 위험이 상존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백신 접종을 다각도로 독려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 공무원에게 접종과 코로나19 수시 검사를 촉구하고 있다. 구글 등 대형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오는 16일부터 헬스장, 공연장 등 실내 시설에서 종업원은 물론 고객들에게도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백신 의무화 조치는 초·중·고교가 개학하고 주요 기업들이 사무실 출근을 재개하는 9월 13일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된다. 이때부터 시 당국은 규정 준수 여부를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봉쇄에 대한 저항을 고려해 제한하지 않는 대신에 속도전으로 두꺼운 백신 장벽을 쌓겠다는 것이다.

미·영 방식의 경우 백신 효능에 대한 새로운 증거들을 통해 보완해야 할 약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중증 악화를 예방할 확률은 90%를 웃돌고 경증으로부터 보호될 확률도 70%를 넘는다. 하지만 감염 자체를 막을 가능성은 50% 이하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까지는 백신만으로 ‘멸균 면역'(완벽한 바이러스 차단)을 달성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그랜빌은 “현재까지 드러난 코로나19에 대한 최선의 방책은 바이러스 억제가 아닌, 감당 가능한 풍토병(endemic)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올여름에도 코로나19 출구 전략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고 있다고 그랜빌은 지적했다. 금융시장 투자심리 측면에서, 코로나19의 종식을 알리는 깃발 효과보다 코로나19의 둔화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더 반영될 것으로 관측했다.

( 사진=연합뉴스 )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