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할인점, 전략상권 둘러싼 혈투

[유통시장 무한경쟁시대] 유통전선에 2등은 없다
백화점·할인점, 전략상권 둘러싼 혈투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그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유통업계간 생존 경쟁이 치열해도 수백 개에 달하는 점포 하나 하나에 전력을 쏟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상징성을 지닌 ‘전략 상권’에 너도 나도 뛰어들어 사활을 걸고 전투를 벌이거나, 다른 지역은 몰라도 이 지역에서 만큼은 반드시 1위를 차지하겠다는 ‘거점 지역’이 업체마다 2~3곳쯤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전쟁에서는 지는 한이 있더라도 개별 전투에서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다.


명동 부활 우리가 주도한다 - 롯데 vs 신세계

“백화점 간다”라는 말이 곧 서울 명동에 간다는 것을 얘기하던 때가 있었다. 서울 남대문 시장을 뒤로 신세계와 롯데, 미도파, 코스모스, 그리고 종로의 화신백화점까지 전국의 몇 안 되는 백화점은 모두 이 일대에 몰려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상권의 중심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던 명동 백화점 상권이 유통 공룡들의 전쟁터가 되며 최근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역 상권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곳은 현재 이 지역을 양분하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

롯데가 소공동 백화점 본점 옆에 있는 미도파 메트로점과 옛 한일은행 사옥을 사들여 이 일대를 ‘롯데 타운’ 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자, 신세계도 백화점 본점을 국내 최대 규모의 백화점으로 탈바꿈시키겠다며 재개발에 착수했다. 한국은행 본점을 중심으로 을지로 방면으로는 롯데가, 충무로 방면으로는 신세계가 장악하며 일대 격전을 예고한 셈이다.

롯데는 11월 중순 구 미도파 메트로점에 대한 새 단장을 마치고 ‘롯데 영플라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소공동 본점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이 건물의 매장 면적은 3,000평 가량. 점포명이 말해주듯 10~20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매장들만 들어선 특화 백화점을 지향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에는 ‘롯데 타운’의 마지막 플랜인 옛 한일은행 건물의 명품관 리모델링 작업이 완료된다. 오피스 공간을 제외한 지하1층~지상5층의 4,000평 규모 명품관에는 샤넬 구찌 프라다 페라가모 등 세계 톱클래스 명품 브랜드들이 각각 단독 매장을 낼 계획. 특히 현재 소공동 본점에 없는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을 신규 유치하는 것도 적극 추진중이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 본점과 호텔, 영플라자, 명품관이 모두 들어서면 명동 일대는 국내 최고, 최대의 쇼핑 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의 명동 상권에 대한 애착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0월 재개발에 들어간 충무로 본점은 2005년 10월 지하7층, 지상20층 매장 면적 1만8,000평의 국내 최대 규모 백화점으로 거듭날 전망. 현재 영업을 진행하고 있는 본관의 경우 영구 보존하면서 재개발 공사 기간 동안 외관을 건축 초기 모습으로 복원해 명품관으로 활용하는 등 국내 최고(最古) 백화점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살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하철 4호선 회현역과 지하 연결 통로를 만들 경우 서울시에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회현지하상가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남 현대 독주 시대 끝나나 - 현대 vs 신세계

강남구, 서초구로 대표되는 강남 상권은 일찌감치 고급 백화점으로서의 이미지를 쌓아온 현대백화점의 독무대였다. 압구정동에 현대백화점 본점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고 여기에 삼성동 무역센터점이 가세를 하며 강남 상권의 1, 2위 자리를 독식해 왔다.

하지만 2000년 6월 롯데가 그랜드백화점을 인수해 대치동에 강남점을 개설하고, 그 해 10월 신세계가 반포에 9,800평 규모의 초대형 백화점을 세우면서 ‘빅3’간 혈투가 시작됐다.

이 중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인 곳은 신세계 강남점. ‘업계 만년 3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강남 상권에서만큼은 1위로 올라서겠다는 야심으로 급기야 이 지역 터줏대감인 현대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떠올랐다. 올 상반기 실적을 보면 현대 무역센터점, 현대 압구정 본점, 신세계 강남점 등 3개점이 치열한 1위 경쟁을 벌인 상황.

현대측은 무역센터점이 2,907억원으로 신세계 강남점(2,823억원)을 앞질렀다고 주장하는 반면, 신세계측은 강남점 매출액이 2,937억원으로 이 상권 1위에 올라섰다고 밝힌다.

특히 신세계는 10월말 현재 강남 상권 시장 점유율은 24.7%로 현대 무역센터점 24.0%, 현대 본점 22.7% 등을 점점 큰 격차로 앞서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강남점에 들어선 대형 슈퍼마켓의 매출까지 포함하는 등 수치 조작이 있었다”는 현대의 공세에, 신세계는 “슈퍼마켓 역시 강남점 입점 업체 중 하나일 뿐이다”고 맞서고 있는 탓이다.

신세계의 공세에 바짝 긴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 규모면에서 아직까지 현대는 강남 상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압구정 본점 역시 상반기에 2,762억원의 매출을 올려 두 점포를 합칠 경우 강남 상권 매출액의 5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탓이다.

반면 백화점 업계 1위 롯데는 강남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부유층이 집결해 있다는 강남 대치동에 백화점을 세웠지만 올 상반기 매출액은 1,292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한화유통이 명품 백화점 형태로 운영하는 갤러리아백화점에도 못 미치는 실적.

하지만 롯데 역시 강남 상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공격적 영업을 준비하고 있어 향후 경쟁 구도는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원 경쟁률은 14대 1 - 홈플러스 vs 이마트

8개의 할인점과 5개의 백화점 그리고 대형농산물 할인매장. 경기도청이 자리잡은 수원은 최근 유통 천국으로 각광을 받는 도시다. 경쟁 업체 중 오직 1위 업체만이 살아 남는다고 가정하면 경쟁률은 무려 14대 1이다. 인구 100만명을 간신히 넘은 도시니 분명 과열 경쟁이다.

일산, 분당 등 유통 업계가 군침을 흘리는 다른 지역들은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에서 수원이 상대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현재 수원 상권을 평정하고 있는 곳은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2000년 9월 북수원점을 시작으로 그 해 10월 영통점, 2002년3월 동수원점까지 무려 3개점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 북수원점은 안산점에 이어 홈플러스 전 점포 중에서 매출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효자 점포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5월부터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것을 비롯해 할인점으로서는 최초로 문화센서를 운영하는 등 파격적 행보가 밑거름이 됐다.

홈플러스 북수원점에 도전장을 내민 곳은 이마트 수원점. 1년 늦은 2001년 9월에 문을 연 이마트 수원점은 지난해 1,61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선발 주자인 홈플러스 북수원점(1,860억원)을 바짝 추격했다. 여성 전용 주차장을 갖추는 등 3,600평의 넓은 공간에 주부들을 위한 편의 공간을 대폭 마련한 것이 급성장의 비결.

특히 이마트는 내년 하반기 수원2호점 출점도 계획하고 있어 수원 상권 1위 자리를 놓고 홈플러스와 한 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수원 상권에 또 다른 도전자는 올 2월말 수원 민자역사에 문을 연 애경백화점 수원점이다. 영업 면적 1만300평에 멀티플렉스 영화관, 서점, 패밀리 레스토랑 등을 갖추고 기세 등등하게 선점업체들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2만7,000평 부지에 국내 최대 규모인 2,000평의 식자재 할인매장을 갖춘 농협 농수산물종합 유통센터가 10월 문을 연 데 이어, 롯데마트도 12월초 수원 천천점으로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어서 수원 상권은 춘추전국 시대를 맞이할 전망이다.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3-12-05 14:45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