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숙씨의 '세진이 엄마'로 살아가기

[신년기획 나눔] 천사같은 아이 키우는 천사표 '나쁜엄마'
양정숙씨의 '세진이 엄마'로 살아가기

“‘마더 테레사’와는 달라요. 전혀 자애롭지 않아요. 아들 세진이가 조금만 잘못해도 마구 때리고 ‘병신’이라고 욕 하는 걸요.” 양정숙(36ㆍ대전광역시) 씨는 5년 전 입양한 장애 아동 세진(7)이를 키우면서 ‘나쁜 엄마’가 됐다.

장애 1급 세진이는 선천성 사지절단증. 오른쪽 손가락 세 개와 무릎 아래 두 다리가 없다. 평생 중대한 장애를 안고 살아 가야 하는 세진이에게 혹독한 세상과 맞설 힘을 길러주기 위해 ‘악역’을 자처한 것이다. “장애 아동을 과잉 보호하는 것은 학대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요.”

눈빛 하나 만으로도 ‘개구쟁이’ 세진이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엄격한 엄마이지만, 세진이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새벽 건물 청소에서부터 심야 대리 운전까지 마다하지 않는 양씨의 깊은 사랑은 산술적 수치의 대상이 아니다. 어느 정도 알게 된 주변에서는 칭찬 일색이지만, 정작 본인은 “내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며 극구 손사래다.

아픔 감춘 미소에 속 울음

12월 27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한국절단장애인협회(DECOㆍ가칭) 송년의 밤’. 엄마와 누나 은하(13) 손을 잡고 서울 나들이에 나선 세진이는 신이 났다. 검정 연미복에 빨간 나비 넥타이까지 맨 모습은 모델 뺨치는 수준. ‘장애아=남루’라는 편견에 항의하듯 평소에 일부러 화려하게 입힌다는 양씨.

그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세진이는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살인 미소’로 좌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이를 바라 보는 양씨의 표정에는 대견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세진이가 너무 밝아보이는 것도 걱정”이란다. 어린 나이임에도 아픔을 미소 뒤에 감추는 법을 일찍이 터득한 것 같아서다.

이처럼 어른스러운 세진이가 며칠 전에는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유치원에서 장애를 두고 함부로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더란다. “쟤 엄마가 죄를 많이 지어서 저렇게 됐대”, “너도 말 안 들으면 병신이 돼”…. 언어 폭력은 집요하고 잔인했다.

모처럼 가족 외식을 하러 햄버거 전문점에 갔을 때였다. 조그마한 애견을 만지며 “예쁘다”를 연발하던 여고생 10 여명이 의족을 착용하지 않은 세진이의 다리를 보곤 즉각 “재수 없어”를 내뱉었다. 양씨는 순간 호통을 쳤다.

“개의 새끼는 예쁘고, (사람의) 아이는 재수 없냐!” 그러나 여고생들이 곧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뒤쫓아가 무릎을 꿇었다. “아이의 곁에서 먹어 달라. 우리 아이는 징그러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읍소 덕분에 학생들은 들어 와 음식을 먹었고, 양씨는 음식값 10만원을 지불했다.

새해를 맞아 세진이를 일반 초등학교에 보내려는 양씨의 마음은 옛날 같지 않다. 입학 통지서를 기다리는 양씨의 심정은 설레임보다 착잡함이 앞선다. 배정이 예상되는 집 근처 학교들에서 전해 오는 반응이 한결같이 싸늘하기 때문. ‘장애 편의 시설이 없다’, ‘1층 교실 배정은 무리’, ‘학부모가 하루 종일 와서 대기하라’ 등 약속이라도 했나 싶었다.

“우리 아이가 신체 장애를 갖고 있는데” 하고 운을 떼면 덮어 놓고 “특수학교에 가라”고 전화를 끊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장애인과 어울려 노는 것은 아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 주는 출발이라는 생각에, 모멸감에도 이를 악 다문다.

“이미 굳어 버린 어른들의 인식을 바꾸지는 건 아니예요. 적어도 아이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게 해야죠.”

양씨가 세진이를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초. 자원 봉사를 하던 대전시 동구 가양동의 한 영아원에서였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기아(棄兒). 슬금슬금 피아노 밑에 기어 들어가 손가락을 빠는 아이는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처음 본 순간 전생에 내 아들이었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고 양쓴?그날의 만남을 기억했다.

그러나 보통 고집이 아니었다. 한 번 떼쓰고 울면 그치질 않던 아이였지만 너무도 예뻐 보였다. “말리 홀트처럼 살라”며 일곱 살 때부터 자신을 보육원에 보내 봉사하도록 했던 한의사인 아버지 덕에 장애아를 돌보는 일은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그 후 10개월동안의 시간을 갖고 서서히 접근해 갔다. 세진이를 집에 데려와 열흘 재우고, 영아원에서 이십 일 재우는 식(위탁 가정)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8월, 입적을 위해 치러야 했던 일들은 전쟁이 따로 없었다. 시댁의 반대는 둘째 치고 까다로운 입양 절차 때문에 꼬박 3개월을 법원에서 울며 지냈다. 돈이 없고, 큰딸 아이(은하)가 있다?이유 때문이었다. ‘앵벌이’로 이용하려 한다는 의혹까지도 감내해야 했다. 전과 조회를 당했을 정도. 양육비도 큰 부담이었다. 6개월에 한 번 새것으로 바꿔줘야 하는 의족 구입비(1회 최저 500만원선)와 재활치료비 마련은 만만찮다.

"엄마만 있으면 돼"

사실 양씨의 살림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빠듯한 형편. 보증금 500에 월 30(만원)짜리 사글세를 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세진이 유치원 졸업 앨범 구입비를 줄 돈이 없어 참담한 심정에 잠깐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엄마 품에 안겨 자다가 허전함에 놀라 깬 일곱 살 세진이는 창문이 열려 있는 베란다로 뛰쳐 나와 울며 매달렸다. “엄마, 나 돈 없어도 돼. 엄마만 있으면 돼!”

세진이는 양씨에게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종교 같은 존재. 그래서 양씨는 “훗날 세진이 같이 버려진 아이들을 많이 돌볼 수 있는 ‘영아원’을 짓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은 위대한 힘이다. 사랑으로 든든한 울타리를 만든 양씨 가족의 희망이다.(http://nunsaram.net)

■ "세진이 다리가 되어주겠다"

"성인이 될 때까지 의족을 무료 지원하겠다."

최근 세계적인 의수족ㆍ보조기ㆍ휠체어 제조 회사인 오토복(Otto Bock)사는 세진이가 성인이 되는 20세까지 의족을 무료 지원해 주기로 했다. 한국 법인인 오토복 코리아(대표 윤충)는 "매년 세진이의 성장에 맞게 의족을 교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오토복 코리아 직원 26명은 대표 윤충 지사장을 중심으로 월급에서 십시일반으로 떼 내, 기술진은 제작에 무보수로 참여하는 등 세진이에게 '다리'가 되어줄 것을 약속했다. 일정 부분 본사의 지원도 받을 예정. 이 의족은 2,000만원 상당의 고가품.

이번 지원은 몇 해전 세진이 가족의 얘기를 TV에서 접하고 도울 길을 생각하던 윤 지사장이 지난 9월 장애인 모임 DECO에서 우연히 만난 양씨에게 적극적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이뤄졌다. 윤 지사장은 "이벤트성 선행 차원을 벗어나, 기업의 지속적인 후원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에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1-02 16:40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