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물갈이 도미노여야 공천혁명으로 생존 몸부림, 정치판 지각변동 조짐

[4·15 총선 카운트 다운] 바꿔야 사는 게임 "판갈이다"
정치권 물갈이 도미노
여야 공천혁명으로 생존 몸부림, 정치판 지각변동 조짐


“제17대 총선은 정치권의 물갈이 차원을 넘어 정치판 자체의 ‘판 갈이’가 이뤄질 지도 모른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4ㆍ15 총선 예상평이다. 우리 정치의 반세기를 옭아 매었던 제왕적 ‘3김’ 시대가 사실상 종식된 뒤 처음 실시되는 이번 총선은 역대 여느 총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혼전과 대이변을 연출할 개연성이 무척 높다는 얘기다.

각 정당의 명운과 정치판 변화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17대 총선은 서막부터 심상찮게 전개되고 있다. 우선 각 당의 총선 후보 공천작업을 앞두고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물갈이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한나라당에서는 벌써 20여명이 불출마 도미노를 만들었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물갈이 태풍권에 근접해 있다. 해방 이후 국회의원이 무더기로 자진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방적인 물갈이 바람에 기성 정치판이 크게 흔들리면서 정치 지망생들의 총선 출마도 줄을 잇고 있다. 서울 여의도 정가에서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정치 지망생을 ‘팔불출’로 부를 정도다. 이에 따라 17대 총선은 소선거구제로 치러지기 시작한 13대 총선 이후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출마 의사를 밝혔거나 출마가 예상되는 후보는 모두 2,000여명. 이는 현행 227개 선거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평균 경쟁률 10대 1에 육박한다. 각 당의 공천 과정을 통해 일부를 걸러내더라도 건국 이후 가장 높은 평균 6~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한결 같은 분석이다. 80여일 앞으로 다가온 4ㆍ15 총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 본다.

한나라당 불출마 도미노는 계속 될까

불법 대선자금 사건 등으로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4ㆍ15 총선의 자구책으로 내놓은 카드는 바로 과감한 인적쇄신, 즉 물갈이이다. 역대 총선 때도 ‘젊은 피(신진 인사) 수혈론’ 등으로 인적쇄신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물갈이 바람은 양적, 질적으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서울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번 총선은 (사람을) 바꾸면 살고 안 바꾸면 죽는다는, 바꿔?와 죽어? 의 게임”이라는 우스개까지 나돌 정도다.

보수적인 한나라당이 5ㆍ6공 인사 및 영남권 중진 용퇴론 등으로 물갈이 논쟁을 벌이며 내홍을 자초한 것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당 공천심사위원인 홍준표 의원은 “물갈이는 의석 한 두 개를 더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당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이 일찌감치 비례대표를 모두 외부 인사로 채우기로 한 것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

한나라당은 20여명의 중진 의원과 개혁파 초선인 오세훈 의원의 전격적인 불출마 선언으로 물갈이에 더욱 탄력을 붙인 형국이다. 자연히 당 안팎의 관심은 얼마나 많은 중진들이 스스로 물러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영남권 K, K, Y, J, P 의원 등 10여명 이상이 나이나 과거 경력 문제, 지역구 관리 및 의정활동 소홀 등으로 당지도부와 소장파로부터 강한 용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는 본격적인 공천심사에 돌입하는 1월 말을 전후해 용퇴 대상 중진들 중 일부가 불출마 肉??가세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의 공천배제 기준도 물갈이를 가속화하는 장치다. 이미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재판중인 자 ▦파렴치한 범죄 전력자 ▦부정ㆍ비리 등에 연루된 자 등에 대해 공천을 배제키로 방침을 정해 당규에 반영했다. 또 이를 검증하기 위해 후보자 공모시 벌금형 이상의 범죄조회 확인서를 제출토록 했다. 이에 따라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된 김영일 전 사무총장과 박주천 박명환 최돈웅 박재욱 의원 등은 본인들의 용퇴 여부와 무관하게 사실상 총선 출마가 물 건너 갔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민주당 ‘호남중진 물갈이’ 소용돌이

한나라당발(發) 불출마 도미노는 급기야 민주당으로 번져 나가 요동칠 조짐이다. 비례대표이기는 하지만 민주당에서 처음으로 장태완 의원이 총선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함막館? 당을 온통 물갈이와 공천혁명을 위한 내전 상황으로 몰아넣은 형국이다.

최근 총선 경쟁률

민주당내 대표적인 물갈이 강경파는 ‘호남 물갈이론’과 ‘중진 용퇴론’을 정면으로 제기하고 있는 추미애 의원과 장성민 청년위원장. 특히 장 위원장은 지난 7일 당 중앙위윈회 회의에서 “17대 총선에서 공천혁명을 이루지 못하면 수도권 뿐 아니라 호남에서도 어려울 것”이라며 “호남에서 현역 의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용퇴해 달라”고 물갈이론의 최선봉에 서 있다. 물갈이 강경파에는 김영환 대변인과 전갑길 함승희 박인상 의원 등이 적극 가세하는 분위기다.

호남지역 정치신인모임인 ‘새물결 연대’ 회원으로 17대 총선 예비 후보인 구해우 김현종 정은섭 신현구씨 등도 “호남이 변해야 민주당이 산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물갈이 강경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물갈이 강경파는 한나라당이 공천혁명 기치를 내걸고 몸부림치고 있으며, 노 대통령이 총선에서 ‘올인’ 하는 상황에서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동교동 구파는 이에 대해 “호남 물갈이파도 지역구를 포기하라”(조재환 의원), “호남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에게 수도권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열린우리당을 도와주는 것”(박상천 전 대표) 이라고 역공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아직까지 집단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등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반면 조순형 대표 등 물갈이 온건파는 비례대표 선출의 제도적 투명화 방안을 마련하고 지구당위원장을 전원 사퇴하도록 결정키로 하는 등 물갈이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전대 이후 반짝 반등했던 당 지지도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계속 떨어지는 형국이어서, 강경파와 구파 간의 물갈이 갈등이 폭발음을 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가운데 중도파인 김경재 의원은 “한나라당에서는 파천황적인 환골탈태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민주당에 육자배기 가락 하나 나오지 않아서야 되겠느냐”며 “시작은 장태완 의원 하나로 미미했지만 그 결과는 창대할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있을 대폭적인 물갈이 조짐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9일 비리 혐의로 구속된 박주선 이훈평 의원이 옥중출마를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상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몇몇 의원의 대우건설 비자금 사건 연루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물갈이 봇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름
나이
지역구
박관용 (무소속) 66 부산 동래
김용환 (한나라당) 72 보령·서천
양정규 (한나라당) 71 북제주
김찬우 (한나라당) 71 청송·영양·영덕
윤영탁 (한나라당) 71 대구 수성 을
김종하 (한나라당) 70 창원 갑
박헌기 (한나라당) 68 영천
한승수 (한나라당) 68 춘천
유흥수 (한나라당) 67 부산 수영
김동욱 (한나라당) 66 통영·고성
정창화 (한나라당) 64 군위·의성
정문화 (한나라당) 64 부산 서
현승일 (한나라당) 62 대구 남
설송웅 (열린우리당) 62 서울 용산
송영진 (열린우리당) 57 충남 당진
주진우 (한나라당) 55 고령·성주
강삼재 (한나라당) 52 마산 회원
오세훈 (한나라당) 43 서울 강남 을
신영균 (한나라당) 76 비례대표
강창성 (한나라당) 74 비례대표
김운용 (민주당) 73 비례대표
장태완 (민주당) 73 비례대표
서정화 (한나라당) 71 비례대표
이연숙 (한나라당) 69 비례대표
윤여준 (한나라당) 65 비례대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이미지를 가진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창당 과정에서 현역 의원 프리미엄을 배제한 만큼, 나이나 선수보다는 비리와 관련한 물갈이에 모아지고 있다. 당내에서는 금품수수 비리 혐의로 구속된 정대철 의원과 군납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천용택 의원 등에 대한 징계문제를 공론화하고 있어 공천 배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군 카지노에서의 상습도박으로 물의를 빚은 송영진 의원은 자진해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아울러 각종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노 대통령 핵심 측근들의 옥중 출마설에 대해서도 당내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정치 지망생들, “물 만났네!”

17대 총선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총선 후보자 풍년이다. 이는 당내 실세가 좌지우지하는 제왕적 공천제도가 사실상 사라지고 경쟁력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는 상향식 공천 방식이 대폭 늘어난 때문이다. 현역 의원의 60~70%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유권자의 인적쇄신 열망도 ‘너도 나도’식 출마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폼만 잡고 지역관리에 소홀한 현역 의원들은 신인들의 거센 도전에 곤욕을 치러야 할 판이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분당으로 정치 예비군의 공급 요인이 생겨난 것도 예비후보 급증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46명의 의원이 분가해 만든 만큼, 나머지 지역구는 모두 신인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이는 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 지망생들이 주인 없는 기회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든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정당투표에 따른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에 대비, 여야 4당은 물론 민주노동당까지 가능하면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낼 방침이어서 참신한 신인에 목말라 할 수밖에 없다. 또 각 당이 공정한 경선의 틀을 만들어 후보를 공천한다고 하더라도 탈락한 후보들이 경선 결과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翩援?크다.

이와 관련, 김영삼 정권 때부터 현재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에 새 피를 공급해 온 저수지 역할을 했던 운동권 출신 정치 지망생들이 이번 총선에 대거 뛰어들고 있어 주목된다. 이들은 나이도 그렇거니와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톡톡히 득을 본 ‘운동권 프리미엄’이 사실상 이번 선거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내심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 뛰어든 정치 지망생들은 중앙당의 ‘실탄’ 지원 규모가 과거에 비해 턱없이 적거나 아예 기대하기도 힘들고, 현역 의원에 대한 프리미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이번 총선에서 백병전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른다.

검찰ㆍ시민단체도 정치권 물갈이 지원?

여야 정치권 내부의 자발적인 공천혁명 움직임이 물갈이의 시작이라면, 시민단체의 동시다발적인 각종 ‘유권자 운동’은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최종적인 ‘여과장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총선 예비 후보들은 천신만고 끝에 각 당의 공천터널을 통과하더라도, 시민단체의 ‘유권자 운동’이라는 험준한 2차 관문이 기다리고 있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 전국 460개 시민ㆍ사회단체가 참여한 ‘총선시민연대’가 낙선운동을 벌여, 대상자 86명 중 59명(68.6%)를 낙선시킨 만큼 시민단체의 당선ㆍ낙선 운동은 이번 총선에서도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게 분명하다.

진보 진영에서는 이미 ‘2004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 ‘맑은 정치 여성네트워크’ 등이 지지 후보를 골라 당선시키는 포지티브 운동을 선언한 상태다. 반면 참여연대는 16대 총선 당시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제2의 낙선운동을 전개할 방침이어서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국회의원 자격판별 운동, 부패 정치인 퇴출 운동, 돈 선거 감시운동 등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주도적으로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비리 의원 전원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계기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및 각종 비리 정치인에 대한 거침없는 수사도 검찰의 의도 여부와는 별개로 정치권 물갈이를 측면 지원하는 형국이어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불법 대선자금과 SKㆍ대우건설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통해 비리에 연루된 의원들이 추가로 드러날 수 있고, 이는 결국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총선에 출마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어디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 없나? 17대 총선을 앞두고 대다수 유권자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특히 검찰이 한나라당이 불법 모금한 대선자금에 대한 ‘출구조사’를 본격화 할 경우 문제의 돈을 횡령했거나 불법 사용한 의원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날 가능성이 크며, 이럴 경우 해당 의원은 파렴치범으로 몰려 출마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열린우리당도 안심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한때 ‘대선자금 200억원 모금설’을 언급한 적이 있는 정대철 의원이 그동안 주장해온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노무현 캠프의 대선 자금 폭로로 저항할 경우 노 대통령은 물론 열린우리당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도 타파될까?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가 이번 총선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일 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현재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은 사실상 ‘3김’을 주축으로 한 지역 맹주의 퇴장과 ‘영남출신 호남당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해, 지역당 체제가 다소 흔들리고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전국정당이 출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영ㆍ호남 지역에서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등식은 크게 흔들릴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호남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약진할 가능성은 이번 총선에서도 여전히 희박할 것으로 보여, 전반적인 전국정당 체제를 기대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많다. 오히려 대구ㆍ경북(TK)과 광주ㆍ전남 지역에서는 지역주의가 더 한층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지역주의 정치를 타파하는 것도 결국 정치인 물갈이와 마찬가지로 유권자와 각 정당의 의식 전환이 선행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치와 정치인이 총체적으로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가운데 치러지는 17대 4ㆍ15 총선은 분명 정치개혁의 향한 신호탄을 쏘아올릴 절호의 기회이다. 과연 이번 총선이 무능하고 부패한 구태정치를 청산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공천혁명과 선거혁명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4월의 승자’는 과연 어느 당에게 돌아갈까. 이제 80여일 남았다.

김성호기자

박종진기자


입력시간 : 2004-01-14 17:01


김성호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