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장르의 설 극장가, 재미와 감동의 영화에 빠지기

[설날특집·영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액션 히어로
다양한 장르의 설 극장가, 재미와 감동의 영화에 빠지기

이번 설 연휴 즈음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는 당초보다 좀 줄어 <말죽거리 잔혹사>, <빙우>, <내사랑 싸가지> 등 세 편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해 말에 개봉된 영화들,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 홍콩 영화 등을 합하면 선택의 폭은 결코 좁지 않다. 설 연휴 동안 재미 있는 혹은 의미 있는 영화 선택을 위해 몇 가지 카테고리를 정해 정리해본다.

1.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것이 즐겁다
<피터팬>, <브라더 베어>, <더 캣>

<라이언 킹>과 같은 애니메이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브라더 베어>가 있다. 인디언 소년 키나이가 곰으로 변해 겪게 되는 여정을 담은 영화로 자연과 동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진정한 형제애를 깨달을 수 있는 디즈니표 만화영화다. 만약 애니메이션이 취향이 아닌 가족은 작년 말일에 개봉한 <더 캣>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 전혀 다른 성격의 남매가 뜻밖에 더 캣이라는 손님을 맞아 엄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신나게 파티를 한다는 얘기다. 어항 속 물고기가 말을 하는 등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판타지 모험극이다.

동물의 시각을 통해 재미와 교훈을 얻는 영화에 지친 사람이라면 <피터팬>을 고려해 볼만 하다. 이미 잘 아는 내용이지만 이 <피터팬>은 때론 섬세하고 때론 날카롭게 유년기의 즐거움과 두려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과 비애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이야기는 ‘사랑’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피터와 사랑에 빠진 웬디, 그들의 관계를 질투하는 팅커벨의 이야기가 네버랜드의 판타지보다 더 핵심적인 포커스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피터팬’보다 웬디의 역할과 시각이 강조되고 있고, 웬디 역의 레이첼 허드우드는 13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역할에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수효과로 처리된 판타지와 감상적인 장면들이 어우러져 아이들에게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고 어른들에게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2. 연인과 함께 사랑의 감동 혹은 웃음을
<빙우>, <내사랑 싸가지>

한동안 한국 영화 중에서 절절한 멜로물이 없었던 것에 대해 서운했던 사람이라면 ‘산악 멜로’ <빙우>가 제격이다. <빙우>는 생의 갈림길에 선 두 남자가 그들이 기억하는 한 여자에 대한 회상을 그린 영화로 이성재, 김하늘, 송승헌이 주연이다. 이 영화로 데뷔하는 김은숙 감독은 멜로드라마라는 골격에 설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포함시켰다. 거대한 설원의 풍경과 산악이라는 남성적 요소와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의 안타까운 이야기라는 여성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빙우>는 독특한 멜로드라마라는 점도 있겠지만 남녀 관객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라는 북한 장교와 병사의 남한 탈출기라는 코미디도 있지만, <빙우>와 같은 날 개봉하는 <내사랑 싸가지>는 생기발랄 로맨틱 코미디이다. 고급 수입차 렉서스를 파손하게 된 여고생 강하영(하지원)이 300만원의 수리비 대신 차 주인인 안형준(김재원)의 1당 3만원의 100일 노비가 된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 <내사랑 싸가지>는 2001년 8월부터 두 달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게시판에 연재됐던 소설이다.

3. 밋밋한 연휴를 스릴있게
<런어웨이>, <페이첵>

배심원들을 감시하고 협박해 판결을 조작하는 배심원 컨설턴트가 등장하는 법정 스릴러 <런어웨이>가 16일 개봉한다. 현대 미국 사회의 총기로 인한 살인 범죄를 다루면서 정의로워야 할 법정의 타락과 부도덕성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존 그리샴 원작이다. 아마 존 그리샴의 소설이나 영화화 됐던 작품들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20일 개봉하는 <페이첵>은 SF의 대가 필립 K. 딕의 1953년 원작을 존 우(오우삼)가 감독한 액션 스릴러물이다. 회사 내의 일급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천재 공학자 마이클 제닝스(벤 에플릭)는 한가지 프로젝트가 끝나면 기업 기밀유지를 위해 기억이 지워진다. 제닝스는 친구이자 동업자인 올컴사의 대표 지미 레트닉(애론 애커트)으로부터 3년에 걸친 초대형 프로젝트를 주문받는다. 3년 뒤 프로젝트를 마치고 기억을 지운 제닝스는 보수로 받기로 한 9,000여만 달러를 포기한다는 계약서에 직접 서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액 대신 그에게 남겨진 거라곤 담배, 클립, 돋보기, 지하철 표, 쇠구슬 19개의 잡동사니가 든 노란 종이봉투 뿐이다. 게다가 FBI는 3년간 그가 무슨 작업을 했는지 캐묻는다. 제닝스는 살아 남기 위해 동료이자 연인인 레이첼(우마 서먼)의 도움을 받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필립 K. 딕의 다른 소설들처럼 기억에 대한 아이러니와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제시가 된다.

4. 아저씨들, 과거를 추억한다
<말죽거리 잔혹사>, <실미도>

<말죽거리 잔혹사>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만들었던 유하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썼다. 1978년, 유신정권 말기 강남의 한 남자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싸움 한 번 해보지않은 모범생이었던 현수(권상우)가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 갖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70년대 말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현재 성인남성들이 가장 감동적으로 볼 수 있는 <말죽거리 잔혹사>는 순수한 시절에 대한 따뜻하고 무비판적인 향수라기보다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학교 폭력과 생존경쟁의 살벌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폭압적 군사독재사회의 학교는 폭력의 위계질서가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는 곳이기에 교장선생은 선생의 뺨을 때리고, 선생은 학생을 캐비닛에 가두고 군화발로 짓이기며, 힘센 학생은 힘없는 학생들에게 주먹을 날린다.

<실미도>도 <말죽거리 잔혹사>와 크게 떨어져있지 않다. 억압되고 은폐됐던 실제 사건에 대한 복원이기 때문에 사회적 무게감이 <말죽거리 잔혹사>에 비해 막강하지만 남성성, 동지애, 우정, 비극적 현실에 대한 부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연령대에 따라 선호도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두 편 모두 한국의 남성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들이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5. 이국적인 풍경과 낯익은 감정
<라스트 사무라이>, <스패니쉬 아파트먼트>

대형 액션이 취향이고 일본 문화를 숭배하는 할리우드 이데올로기에 별 문제가 없다면 톰 크루즈 주연,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라스트 사무라이>를 즐길 수 있다. 조국과 명예를 위해 남북전쟁을 치룬 네이든 알그렌 대위(톰 크루즈)는 전쟁 후 변화한 세상에 대한 허탈감과 인디언 토벌작전에서 어린이까지 살해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실용주의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 밀려 용기, 명예, 충성과 같은 군인정신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가 참여했던 전쟁의 명분조차 퇴색해버린다. 한편 일본에서는 황제와 국가에 목숨 바쳐 충성해온 사무라이의 마지막 지도자 카츠모토(켄 와타나베)가 비슷한 위치에 처해있다. 서양 문물과 문화의 도입은 전통 일본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새롭게 도입된 철도와 우편제도는 사무라이가 수세기 동안 목숨 걸고 지켜온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서구 열강에 매혹된 일본 제국의 젊은 황제가 신식 군대 조련을 위해 알그렌을 초빙하면서 둘은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서구화를 가속화 시키기 위해 황제의 측근들은 사무라이 집단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알그렌은 사무라이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말죽거리 잔혹사

1월 1일 개봉한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는 프랑스의 세드릭 클라피시 감독이 각국 배우들을 모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촬영한 영화다. 프랑스 청년 자비에(로맹 뒤리스)는 스페인어와 경제학 석사학위를 따러 애인 마틴(오드리 토투)를 남겨둔 채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거기서 영국인 웬디(켈리 라일리), 덴마크인 라스(크리스티앙 파흐), 스페인인 솔레다드(크리스티나 브론도), 독일인 토비아스(바너비 메추랫), 이탈리아인 알렉산드로(페데리코 다나) 등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 입주한다. 자비에는 학교에서 만난 벨기에인 이사벨(세실 드 프랑스)까지 끌어들인다.

남녀 여섯이 모여 사는 아파트 생활은 재미있지 만은 않다. 자비에는 갑작스런 생활의 변화에 십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시 성장의 고통을 겪게 되고, 자비에를 만나러 바르셀로나로 온 마틴은 자비에가 변했다며 결별을 선언한다. 다른 동거인들에게도 이런 저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채윤정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4-01-15 15:16


채윤정 영화평론가 blauth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