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신겨주는 장애인들의 '발 천사'예술작품 만들 듯, 세상에 하나뿐인 구두 만들기

[신년기획 나눔] 장애인용 구두제작자 남궁정부
희망을 신겨주는 장애인들의 '발 천사'
예술작품 만들 듯, 세상에 하나뿐인 구두 만들기


“걷기가 불편하다고 집에만 있던 장애인이 특수 구두를 신고 성큼성큼 걷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뿌듯합니다.”

신체 장애나 각종 사고로 인해 뒤틀리고 뭉그러진 발에 꼭 맞는 특수 구두를 만드는 남궁정부(64)씨는 요즈음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란 새해 인사를 받으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앞다퉈 건네오는 고객들의 신년 인사에 흐뭇하기도 하지만 한살을 더 먹는 부담을 떨칠 수 없어서다. 남궁 씨는 “고객들을 생각해서라도 오래 살아서 장애인의 발에 편한 신발을 계속 만들어야 할 텐데…”라고 되뇌인다. 장애인용 특수 구두는 일반 구두처럼 아무 곳에나 가서 살 수 없는 게 현실. 마치 예술 작품을 만들 듯 정성을 다하는 그의 섬세한 손을 거쳐야 태어나기에 남궁 씨도 장애인도 모두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정성과 기술, 사랑의 결정체

설날 연휴를 앞둔 1월 중순 찾아간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세창장애구두연구소(www.isechang.com)엔 각양각색의 신발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양쪽 다리 길이가 다른 소아마비 환자, 발이 아예 없는 교통사고 환자, 발목만 남은 화상 환자, 당뇨병이나 류머티즘으로 뒤틀리고 뭉개진 조막발 등 일반 신발가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발들이 가득하다.

8평 남짓한 연구소 겸 공장의 주인인 남궁 씨는 생후 17개월 된 한 아기의 발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기의 한쪽 발은 다른 발보다 상당히 크고 발가락이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남궁 씨는 조심스럽게 아이 발의 석고를 뜨더니 컴퓨터에 앉아 장애 정도를 세밀하게 진단했다. “2만 명에 한 명 꼴로 나타나는 희귀 질환이라 원인과 치료 방법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푸념하는 아기 아버지에게 남궁 씨는 몇몇 고객의 연락처를 적어줬다.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전화번호다. “세상에 나 혼자만 어려움을 겪는 거 같아도 그게 아녜요. 서로 도우며 지내 보세요.” 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걸 남궁 씨는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 역시 오른팔이 없는 장애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 부위나 정도는 달라도 그 마음은 통하기에 고객들이 쉽게 마음을 연다”고 한다.

남궁씨가 장애인 구두 제작에 눈을 돌린 것은 95년 11월 지하철 전동차에 오른팔을 잃는 사고를 당하면서부터. 지하철에서 내리다 술 기운에 발을 헛디디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호구지책이라고는 신발 만드는 기술이 전부였던 그는 ‘장애를 가질 운명이라면 차라리 다리를 잃게 하든지’ 하며 통곡했다. 그러나 이내 의수를 사기 위해 들린 상점에서 많은 장애인들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한쪽 발이 짧은 장애인을 대하자 즉시 “저런 사람한테는 한쪽 신발 굽만 올려주면 편히 걸을 텐데”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가 1996년 초. 머릿 속에선 장애인들에게 적합한 구두 디자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장애인의 불편이 눈에 들어왔지요.” 그렇게 시작한 장애인용 구두제작은 그에게 ‘장애인의 발이 편한 구두’를 만드는 ‘발 천사’ 란 별칭을 안겨주었다.

이미 30년간 구두를 만들어왔지만 막상 장애용 구두를 만들려고 하니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전문가는커녕 참고할 만한 자료조차 없었다. “장애인이 아무 신발이나 대충 신으면 되지…” 하는 식의 가슴을 찌르는 사회적 냉대도 견뎌야 했다.

장애인용 신발은 시간과 노력이 일반 구두에 비해 몇 곱절 들지만, 많은 장애인들이 선뜻 20만원(제작 원가) 이상의 거금을 내놓을 수 없기에 ‘정가 판매’라는 게 드물 정도. 자식들에게서 용돈을 받으면서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겐 공짜로 구두를 내주는 ‘적자 운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벌써 9년 째 접어들었다. 위안이라면 2000년 노동부로부터 근로자 부문 ‘신지식인’ 타이틀을 받은 것이지만 그것도 결국은 남궁 씨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십자가’다.

장애인 구두학교 설립이 꿈

남궁 씨와 직원 8명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특수화는 고작 5~8 컬레에 불과하다. 사고 이전에 작은 구두 공장의 사장이었던 남궁 씨가 하루에 구두 200 컬레를 만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특수 구두 하나에 쏟는 정성이 얼마나 큰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족문을 찍어 석고를 뜨고 족형을 만들고, 또 특수 제작한 발틀에 고무를 자르고 밑창의 높이는 정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장애인용 신발은 0.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아요.”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다고 한다. “눈 감고도 신발을 만든다”던 ‘베테랑’ 남궁 씨가 다 만들어진 특수 신발을 찢어버린 경우도 부지기수다. 영어 원서를 구해 공군사관학교를 나온 아들 한균(33)씨의 도움으로 읽었고, 대학병원 재활의학과를 수소문해 다니면서 자문도 구했다.

“돈 벌려고 하는 장사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 구두도 의료 보험 지원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전혀 지원이 없죠. 안창이나 밑창 재료 등도 전부 외제를 들여와 써야 하는 등 낙후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특수 구두를 만들기 시작한지 9년이 된 지금은 남궁 씨를 찾는 단골 손님만 1,000명에 이른다.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고객이 그 중 700명이 넘는다. 남궁 씨는 “직업을 얻기 힘든 장애인들이 구두 기술을 배워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지금까지 쌓은 장애인용 구두 만드는 법을 전수하는 장애인 구두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1-27 17:07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