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부르는 아름다운 손헌신적 이웃사랑으로 고단한 삶에 온기를 전해주는 '쪽방촌 대부'

[신년기획 나눔] '나사로의 집' 김흥용 원장
사랑을 부르는 아름다운 손
헌신적 이웃사랑으로 고단한 삶에 온기를 전해주는 '쪽방촌 대부'


서울 용산구 후암동 445-11 ‘나사로의 집’ 김흥용(65) 원장의 하루는 서울역 일대의 쪽방 지대를 두루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집저집을 둘러보며 앓아 누운 사람은 없는지, 양식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살펴본다. 고단한 삶에 지쳐 도움을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아버지’ 같은 존재. 그가 ‘쪽방촌 대부’로 통하는 이유다.

김 원장이 사회 밑바닥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97년 5월부터. 20년간 몸 담은 한국은행 퇴직금을 털어 쪽방 주민과 노숙자를 위한 작은 터전을 마련한 것은 ‘특별한 과거’ 때문이다. 김 원장 자신이 한때 서울역에서 1년 정도 노숙을 하며 구걸을 하는 걸인으로 천대 당했던 아픔이 계기가 됐다.

스물 다섯 살 되던 해였다. 고향인 강원 삼척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한 탄광일이 너무 힘들어 무작정 서울행 열차를 탔다. 그는 절실하게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막노동 일조차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하루 남의 집 담벼락이나 교회에서 밤을 보내고 동냥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어느새 걸인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렇게 그럭저럭 한 해가 지나고 추석 명절이 다가오던 어느날, 몸이라도 씻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 대중 목욕탕을 찾았다. 구걸로 어렵게 마련한 돈을 내밀었지만 행색이 초췌한 그에게 주인은 찬물 세례까지 끼얹으며 문전박대 했다. 김 원장은 그 순간 “걸인으로 사는 아픔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학교 (급사), 이발소와 작은 의류 공장 등을 거치다 한국은행에 일용직으로 들어가게 된 때가 서른 살 되던 해. 은행 안팎을 청소하는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걸인들에게 도움 줄 일을 찾았다. “잠바 벗어주기 운동과 지하철 내 서적 제공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 일로 대통령 표창과 서울시민대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은행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 불우한 이웃 위한

그러나 곧 이어 불행이 엄습했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콩팥의 기능이 극도로 나빠져 ‘사형 선고’를 받았다. 78년 1차 수술로 오른쪽 신장 제거, 85년 2차 수술로 왼쪽 신장의 3분의 2를 도려냈다. “생사의 기로에서 무작정 기도했습니다. 살려 주시면 남은 여생은 헐벗은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말이지요.”

95년 정년 퇴직을 3년 남겨두고 한국은행을 떠나, 97년 5월 주택가 지하방에 12평 짜리 ‘나사로의 집’을 세웠다. 돈이 있어도 식당과 목욕탕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노숙자와 쪽방 주민들을 위한 작은 터전이었다. 지하에 5~6명이 들어갈 수 있는 목욕탕을 짓고, 건물 옥상에 자그마한 이발소와 도서실도 마련했다. 주변에서 헌 옷을 모아 나눠주기도 했다. 삶의 의욕을 잃고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노숙자들에게는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 주면서까지 데려와 손수 더러운 몸을 닦아주고 엉킨 머리를 빗어 주었다. 실직 후 가슴에 극약을 품고 다니다가 그의 설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처음에 못마땅하게 여겼던 주민들도 요즘엔 노숙자들의 목욕을 거들어주고 라면도 보내올 정도로 달라졌다. 기업체에서 신입 사원연수 코스로 이곳을 찾아와 봉사를 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쪽방 주민들의 방을 도배해주고 목욕도 시켜준다. 김 원장은 “처음에 마지 못해 왔던 사람들이 봉사의 기쁨에 눈을 떠 틈틈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을 볼 때 흐뭇하다”고 했다.

김 원장은 거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심신이 지칠 때가 많지만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부른다’는 신념을 변함없이 지켜 나가고 있다. 지난해 쪽방에 거주하?한 50대 아주머니는 옆 방에서 20여 만원을 훔친 죄로 붙잡혔다. 김 원장은 경찰서에 찾아가 병든 몸에 방 값을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였던 아주머니의 상황을 눈물로 호소하고 검찰청에 탄원서를 냈다. 김 원장이 도움으로 어렵사리 감방 신세를 면한 아주머니는 마음을 고쳐먹고 이후 날마다 ‘나사로의 집’으로 출근해 봉사를 하고 있다. “매일 식당에서 밥을 짓고 반찬도 만들어요. 이를 보고 다른 이웃들도 감동해 자원 봉사에 나서고 있습니다.”

2000년 3월 서울시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급증한 노숙자와 쪽방 주민 보호 대책의 일환으로 종로구 돈의동과 남대문 지역 2곳에 상담센터를 설립했고, 정부보다 앞서 서울역 주변의 쪽방 주민들을 보살펴 온 김 원장이 남대문 상담센터 운영을 맡게 됐다. 현재 남대문 상담센터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깨끗한 옷을 입혀 주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는데 부심하고 있다. 300만원 적금 모으기 운동이다.

“300만원이 있으면 정부에서 영세민 지원으로 700만원을 융자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돈으로 전셋집을 구해 쪽방 생활을 면할 수 있다는 희망에 모두 열심입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말부터 서울 중구 남산동의 높은뜻 숭의교회는 건실한 쪽방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담보 창업자금 300만 원을 제공해 자립을 돕고 있다. 월 3만원 씩 ‘결연’ 회원으로 가입해 쪽방 주민을 후원하는 사람들도 40명 가량. “후원자들의 90%가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빠듯한 살림의 일부를 떼내 돕고자 하는 그 정성이 고마운 것이지요.”

▽ "나눔 실천은 내 생의 의미"

요즘 같이 경기 악화로 후원의 손길이 줄어들 때면 김 원장은 동네를 돌며 폐품을 줍고, 동갑내기 부인 문금자 씨는 파출부와 길거리 좌판으로 하루 1~2만원을 모아 주민들의 밀린 방세를 대신 지불하기도 한다. “친구들은 ‘바보’라고 손가락질도 해요. 하지만 실의에 빠진 이들이 작은 도움으로 일어설 용기를 되찾을 때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만성 신장결석증으로 인한 투병 생활이 올해로 27년 째. 거친 호흡을 몰아 쉬는 그의 숨 소리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우는 듯 하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2-04 14:29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