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장애인들을 세상으로 이끄는 통로그 자신도 장애인인 장애인 카운셀러 '데코'를 정식 장애인 단체로 출범시킬 계획

[함께사는 세상] 절단장애인의 희망 김진희
음지의 장애인들을 세상으로 이끄는 통로
그 자신도 장애인인 장애인 카운셀러 '데코'를 정식 장애인 단체로 출범시킬 계획



Q: 2002년 6월 남자친구가 가구회사에서 근무 중 화상을 입어 왼손의 손가락 5개를 모두 절단했습니다. 문제는 검지와 중지의 절단 상태가 나쁘고 다른 손가락에 비해 너무 짧아 인조손가락을 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본인의 발가락을 절단해 손가락에 연결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게 하지 않고도 다른 방법은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A: 발가락을 떼서 손에 접합한다고 해도 손가락의 기능은 없다고 합니다. 모양도 부자연스럽고, 잘린 발가락 부분의 발도 문제일 것이고요. 다른 방법은 수지를 할 때 장갑을 끼우는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장갑식으로 하면 다소 답답할 수는 있지만 지금으로선 차선의 대안일 수 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도 상담을 받아본 후 신중히 판단하십시오.

이 글은 인터넷 의수족 정보센터 ‘데코’(DECO)의 홈페이지(uk-ortho.co.kr) 게시판에 올라온 상담 내용이다. 이 모임의 회장인 김진희(36)씨는 날마다 절단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고민을 듣고 아픔을 함께 나눈다. 상담 건수도 개인 메일을 포함해 하루 20~30여 건에 이른다. 불의의 사고로 좌절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 사이트를 만든 것은 1999년. 장애 등록 정보에서 최신 장애계 뉴스까지 꼼꼼히 수집해 알려준다. 첫 해 불과 10여명에 불과하던 회원은 그새 1,000여 명으로 늘었다. “하루에도 25명 꼴로 절단 장애인이 생긴다고 해요. 1년이면 무려 9,000여 명에 달할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 됐으면 좋겠어요.”

△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일 뿐

큰 키, 스커트 밑으로 쭉 뻗은 그녀의 다리를 보고 사람들은 선뜻 김진희씨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오히려 긴 웨이브 머리에 선글라스를 즐겨 착용하는 멋쟁이로 보일 뿐이다. “어디를 다쳤다는 거죠?”

뒤늦게야 한 쪽 다리가 의족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 얼굴 왼쪽의 흉터가 선글라스에 가려 있다. 그렇다고 그녀의 당당한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서울 중학동의 한 까페에서 김씨를 처음 만났던 때도 그랬다. 발을 헛디뎌 의족이 빠지거나 옆으로 돌아가도 태연히 웃으며 길을 간다. “왜 부끄러워해야 하나요? 좀 불편할 뿐이에요.”

1997년 3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그녀는 퇴근길에 중앙선을 침범한 5톤 트럭과 정면 충돌,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가고 왼쪽 팔과 얼굴 등을 심하게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1년 8개월간의 험난한 치료 끝에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안도감보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절감해야 했던 시련의 계절이었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한 달 뒤면 어여쁜 ‘봄의 신부’가 되려던 꿈도 무참히 깨졌다. 벽에 머리를 찢거나 약을 먹는 등 수 차례 자살 기도를 했다. 그러나 “차라리 같이 죽자”며 울부짖는 어머니와 언니들의 눈물겨운 간병 속에 “이렇게라도 살아서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요즈음 김씨는 절단 장애인이지만 일반인보다 훨씬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장애인 카운셀러로 도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대화를 나누고, 휠체어나 의수족 등 보장구를 모아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해 준다. 2002년 5월부터는 KBS 제3라디오 ‘함께 하는 세상 만들기’(638KHz, 오전 9시)의 ‘김진희가 만난 사람과 泳鐸??진행하는 방송인으로 맹활약 중이며, 장애인신문 등에 장애 정보 관련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

△ 행복한 삶 보여주고 싶어

김씨가 맹렬 여성으로 ‘제 2의 삶’을 억척스럽게 열어나가게 된 것은 지난 98년 말 미국 장애인 육상선수 겸 패션 모델인 에이미 멀린스(28)가 의족을 하고서도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우연히 보면서 였다. “제가 ‘잘 나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에이미 멀린스처럼 장애인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김씨는 방송이나 신문 기고 등을 통해 외국 유명 인사와 체육선수 등 절단 장애인의 아름다운 삶을 소개하?일에 열심이다. 2001년 폴 매카트니와 결혼해 화제가 된 장애인 모델 헤더 밀스의 ‘내 운명의 창고에 들어있는 특별한 것들’(나남출판)을 번역,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오는 4월에는 영화 ‘배트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와 천수이볜 대만 총통 부인 우수전 여사 등의 감동적인 삶을 엮은 책(제목 미정, 보성출판)을 펴낼 예정이다.

이따금 “장애가 뭐 벼슬이라고 떠들고 다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한단다. 그녀가 체험한 의수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다 보니 ‘장사꾼’으로 몰아 붙이고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음지에 있는 장애인들이 용기를 얻고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해볼 작정입니다.” 김씨는 두 달 후쯤 단순히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의 모임이었던 ‘데코’를 정식 장애인단체인 한국절단장애인협회(가칭) 출범시킬 계획이다.

김씨는 요즘 의욕에 차 있다. 매일 매일의 바쁜 생활도 즐겁기만 하다. 사고 당시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약혼자를 떠나 보냈지만 지금은 새로운 사랑을 기다릴 만큼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의족을 착용한 채 헬스도 다니고 혼자서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장애 때문에 지레 움츠러들었던 건 바보 같은 행동이었어요.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을 때 삶은 다시 아름다워 보였어요.” 행복은 닫힌 마음이 열리는 순간에 비로소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배현정기자


입력시간 : 2004-02-11 14:29


배현정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