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중시 온건 개혁파정동영 사단 핵심 경제통, 전국 최다 득표로 당내 역할에 관심

[이사람을 주목한다] 열린우리당 채수찬 당선자 <전주 덕진>
시장경제 중시 온건 개혁파
정동영 사단 핵심 경제통, 전국 최다 득표로 당내 역할에 관심


“전북의 ‘천재 소년’이 경제 개혁의 향도(嚮導)로 돌아왔다.”

17대 총선에서 원내 과반을 넘기며 명실상부한 여당으로 발돋움 한 열린우리당에는 재계, 학계 등에서 수혈된 내로라 하는 경제통들이 많다. 이들 경제 전문가 그룹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한 인사가 있다. 주인공은 전주 덕진에서 전국 최다 득표(8만6,270표)로 처음 금배지를 달게 된 채수찬(49) 당선자. 총선 이후 몸집을 크게 늘린 ‘정동영 사단’의 핵심인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향후 그의 당내 입지 및 역할이 관심이다.

우선 그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전주고ㆍ서울대 후배로, 2001년 말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정 의장 캠프의 경제부문 참모로 참여하는 등 오랜 친분을 유지해 왔다. 2003년에는 정 의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사로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을 때 특별보좌역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 정 의장이 삼고초려 끝에 영입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 때문일까. 미국 라이스대 종신교수로 재직 중이던 채 당선자는 정 의장으로부터 “훈수만 두지 말고 나라를 위해 직접 일을 하면서 도와달라”면서 삼고초려에 가까운 영입 제의를 받고 총선 1개월여 전에 급거 귀국했다. 채 당선자는 “원래 정치를 멀리하고 사는 집안 전통 때문에 고민했지만 나라의 장래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자신이 15ㆍ16대 총선에서 잇따라 전국 최다 득표를 기록했던 지역구를 그에게 선뜻 물려주었다. 이에 채 당선자도 전국 최다 득표로 화답했다. 같은 지역에서 국회의원 선거의 전국 최다득표 3연패를 달성한 진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채 당선자는 “1998년 IMF체제 때부터 수시로 국내에 드나들면서 김대중 정부의 경제자문 역할을 했고, 고향인 전북에도 1년에 2~3차례 들렀기 때문에 우려했던 것보다는 (선거에)어려움이 덜 했다”고 말했다.

채 당선자는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국제 경제통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년’으로 통했다. 하지만 학창시절에는 적지 않은 곡절이 있었다. 1972년 전주고 3학년 재학시절 교내에서 유신 반대 데모를 주도하다 퇴학처분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그의 반골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의 학원가를 전전하던 그는 다행히 다음해 모교로 복학한 뒤 서울대 자연계열 수석으로 합격한 뒤 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에도 그의 천재성은 계속됐다. 1980년 펜실베니아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전액 장학생으로 뽑혔는가 하면, 이 대학의 박사학위 자격시험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통과하기도 했다. 그는 채수일 전 전북도 정무부지사의 동생이기도 하다.

- 이론가에서 현실정치인으로의 변신

20여년간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국내 경제관련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해 온 채 당선자는 IMF 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 역할을 맡으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그는 북핵 문제 해결에도 발벗고 나서는 등 대북관계에도 관심이 많다. ‘북한을 위한 중간적 개발 지원’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가 하면, 2002년에는 북한을 직접 방문해 라이스대와 김일성대간의 학술교류를 추진하기도 했다.

채 당선자는 누구보다도 시장경제원리를 중시하는 온건 개혁파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여권내 진보적 개혁세력의 경제정책과 ‘코드’가 맞지 않아 적잖은 파열음을 낼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론가에서 현실정치로 뛰어든 그의 변신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김성호 기자


입력시간 : 2004-04-27 21:29


김성호 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