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맛에 건강을 더 했어요"쑥개떡·콩 즉석구이에 환호, 비타민 풍부한 '슬로푸드'별미 미각여행

[웰빙열풍] 경기도 양평 <보릭고개 마을> 웰빙체험
"추억의 맛에 건강을 더 했어요"
쑥개떡·콩 즉석구이에 환호, 비타민 풍부한 '슬로푸드'별미 미각여행


10월 10일 경기도 양평 연수1리 보릿고개 마을. 용문산 굽이 아래 자리한 청정 마을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가을 소풍에 나선 어린이 체험 관광객들과 학부모들이 몰려 들었다. 이날 방문객은 인터넷 자녀 교육 정보 ‘커뮤니티 맘스쿨’(www.momschool.co.kr)을 통해 참가한 40명. 청명 가을 하늘 아래, 자연 속에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어려웠던 시절의 가난과 추억을 향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3월 경기도 ‘슬로푸드 마을’로 선정된 이 곳은 지금은 사라진 ‘보릿고개’ 시절의 맛과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보릿고개는 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 지난해 가을에 거둔 양식이 바닥나 굶주리는 춘궁기(春窮期)를 말한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 8.15 광복 후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산과 들로 나물과 나무 껍질 등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보리밥과 호박밥, 쑥개떡, 보리개떡, 감자범벅, 산나물….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허기진 배를 달래주던 이 음식들은 예전에는 손님들에게 내놓기 민망한 음식들이었지만 요즘은 사정이 확 바뀌었다. 웰빙 열풍을 타고 비타민이 풍부한 건강식으로 각광 받고 있는 것이다.


- "옛날엔 자연식이 많아 건강했어요" 이날 아이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던 것은 쑥개떡 만들기. 마을회관에선 곱게 갈아놓은 쑥 가루와 보릿가루, 쌀가루를 준비해 물과 함께 고루 나누어 주었다. 마을 주민 한정지(63)씨는 “ 먹을 것이 없던 어려운 시절에 만들어 나누어 먹던 음식이지만, 향긋한 쑥 냄새가 일품인 별미”라며 “ 옛날에는 쑥개떡을 많이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건강했다”고 자랑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참가자들은 잘 섞여있는 쑥과 보릿가루 등을 물과 함께 넣어 반죽했다. 아무래도 처음 만져보는 반죽이라 서툴긴 했지만 “ 직접 만든 것만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아이들은 경쟁을 치르듯 고사리 손에 반죽을 한 가득 움켜쥐었다. 잘 구워진 빵만 사먹고 자란 아이들의 눈에 직접 반죽을 해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흥미진진하기만 했다.

별 모양 떡도 만들고, 꽃 모양으로 빚기고 하고 평소 좋아하던 사물의 모습을 따서 정성스럽게 빚어나갔다. 어른들도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일곱 살, 네 살 바기 두 딸과 함께 참가한 이혜정(33)씨는 “ 개떡을 만드는 건 처음”이라며 “ 반죽을 찌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고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반죽을 커다란 가마솥에 넣은 뒤 참가자들은 마을 식당으로 발길을 옮겨 마을 사람들이 직접 채취한 산나물로 만든 점심을 먹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무공해 쌀에 호박을 넣어 만든 호박밥이 나오고, 고사리, 고춧잎, 무 등 산나물과 야채가 밑반찬으로 나왔다. 산채 비빔밥을 만들어 참가자들은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다음 체험 행사가 진행될 동안 아이들은 냇가로 줄지어 달려 나갔다. 마을회관 앞 도로 아래를 굽이 돌아 내려가는 냇가에는 수정 같은 맑은 물이 흐른다. 아이들은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금방이라도 냇가로 뛰어들 기세다. 하지만 혹여 감기 들까 걱정하는 부모들의 만류에, 아이들은 조약돌을 집어 멀리 던지기 놀이로 마음을 달랬다.

점심 후 다음 순서로는 배 따기 체험. 마을 주변에는 5,000여 그루의 배나무와 복숭아 나무가 심어져 있다. 수확을 기다리는 잘 익은 누런 배들이 신문 봉투를 뒤집어 쓴 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이들을 배밭 한가운데 모아 놓고, 김지용(54) 이장은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배를 먼저 살짝 만져 봐서 크다고 생각되면, 위로 살짝 밀어 올리라”며 배 따기 시범도 보였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나무 막대를 이용하라고 했다.

배에 신문지를 씌운 것은 햇빛이나 병충해로부터 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내 나무 막대를 받아 든 아이들은 가지에서 배를 직접 ‘톡톡’ 따보는 즐거움에 탄성을 질러댔다. 누가 딴 배가 큰 지,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서로 돌려가며 비교하기도 했다.


- 엄마·아빠와 함께 만드는 농촌의 추억 배 따기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아이들은 다시 추수를 끝낸 벼 밭으로 이동했다. 푹신푹신한 짚 위에서 아이들은 멀리 뛰기도 하고, 눈 가리고 상대를 찾는 술래잡기 형식의 박쥐와 나방놀이도 했다. 이윽고 놀이를 끝낸 아이들의 앞에는 수북한 콩대가 놓여졌다. 행사를 진행한 ‘바라기닷컴’의 임양혁 실장의 설명도 이어졌다.

농촌에서는 콩 타작이 끝나면 한 해 농삿일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보릿고개 마을 체험도 그런 의미에서 콩 구워먹기로 마무리를 짓는다. 사람들은 나뭇가지와 짚을 모아 불을 붙였다. 패스트푸드에만 익숙해진 아이들도 얼굴에 온통 시커먼 칠을 해 가며 콩을 구워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 일곱 살 바기 아들을 데리고 참가한 이미란(36ㆍ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씨는 아이들이 논밭을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시골에서만 접할 수 있는 자연 체험과 놀이를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덩달아 즐거워 했다.

“복잡한 도심에서는 접할 수 없는 풍경들이 많아 좋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렇게 벼 베고 난 논 자리를 밟을 일이 없잖아요?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나와 아이와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아홉 살 경룡이의 어머니도 신이 났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10-13 16:31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