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독재로 싹 튼 고도성장위기 딛고 도약 위한 날갯짓

[특별기획] 한국경제 40년의 발자취와 미래의 한국기업
개발독재로 싹 튼 고도성장
위기 딛고 도약 위한 날갯짓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자동차.

주간한국이 창간한 1964년께는 한국 경제가 막 산업화의 초기에 접어들던 무렵이었다. 대부분 기업들은 전근대적 사업 영역에 머물러 있었고, 경제 발전을 독자적으로 견인해 나갈 만한 역량은 민간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1965년도 납입자본 기준 국내 5대 기업은 동명목재, 금성방직, 판본방직, 경성방직, 대성목재 등으로,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는 아주 기초적인 경공업 기업들이 그나마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당시 군사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아직도 귓전에 선한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명분으로 내세워 국민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1962년 첫 걸음을 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이때 착착 진행되던 중이었다.

정부는 자립 경제의 기반 구축을 최대 목표로 세워 차관 도입 등을 통해 투자 재원을 확보함과 동시에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나갔다. 아울러 기업들은 교육 수준이 높으면서도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생산 활동에 박차를 가했으며, 특히 수출업체들은 외화 획득 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받으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 1·2차 경제개발로 비약적 발전 토대 마련

제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이어진 1962년부터 1971년까지는 우리나라가 ‘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토대를 마련했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 기간 한국 경제는 연평균 8.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수출은 6,000만 달러에서 10억7,000만 달러로 오르는 비약적인 상승률을 나타냈던 것.

60년대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제3,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81년)은 산업구조 고도화를 통한 성장에 목표가 맞춰졌다. 오늘날 세계 시장서 일류 평가를 받고 있는 철강ㆍ조선ㆍ석유화학ㆍ기계 등 중화학공업의 씨앗은 이때부터 발아했다.

그 기간 동안 한국 경제는 60년대와 마찬가지로 연평균 7.1%의 고도 성장을 이어간 데다 수출액도 16억2,000만 달러에서 212억5,000만 달러로 13배가 넘는 폭등세를 달성했다. 또 수출주력 기업들은 조세감면특별법 등 세제지원과 정책금융 등의 집중 지원을 받아 빠르게 커나갔고, 한국 경제를 주무르는 재벌(대기업 집단)들도 이 무렵 태동하기 시작했다. 1975년도 납입자본 기준 5대 기업은 대한항공, 재보(재보험)공사, 제일제당, 삼성물산, 대우실업 등이 차지했다.

이처럼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끈 기업들의 성장 동력은 무엇일까. 구조적으로는 저임금과 정부의 보호, 그리고 압축성장의 필요악이 됐던 정경유착 등의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계의 다른 저개발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희수 백상경제연구원 원장은 이와 관련해 “한국 기업들의 성장에는 성실과 근면이라는 한국적 정서, 오너와 임직원이 함께 잘 살자는 비전으로 일체감을 형성해 헌신적으로 일한 점 등이 내재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우리 고유의 정신적 가치를 발전의 또 다른 배경으로 들었다.

제5, 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2~1991년)이 진행된 1980년대에도 한국 경제는 순항했다. 이 기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라는 경이적인 수준을 이어갔고, 수출 규모도 209억3,000만 달러에서 705억5,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전두환 정권은 물가 안정에 치중하면서 명분 없는 쿠데타로 인한 국민의 반감을 조금씩 씻어 나가는 한편, 공정거래법 제정 등으로 민간 부문의 자율과 경쟁을 촉진시켰다.

1980년대 한국 경제의 특징은 전반기 ‘안정 속의 성장’과 후반기 ‘3저 현상’(저유가ㆍ저금리ㆍ저달러화)으로 압축된다. 특히 80년대 후반기에는 외화가 서울 증시로 밀려들면서 주식 시장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88년 올림픽 개최 효과 덕에 서비스 산업 등 내수가 급격히 확대됐다. 1985년도 납입자본 기준 5대 기업은 삼성물산, 대우, 현대상사, 유공, 호남정유 등이었다.


- 경제 양극화 등 현 국면은 위기상황

부산항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들.

1990년대는 한국 경제가 세계화의 물살에 휩쓸리면서 도전과 시련, 파란을 겪었던 격동기였다. 높은 임금상승률, 고지가, 고금리 등 고비용에 비해 생산성과 기술력은 떨어지는 이른바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대외 경쟁력이 추락했던 게 전반기의 특징이다. OECD 가입 등 대외 환경 변화에 따라 자본 시장이 개방되고 금리 자유화도 실시됐다.

하지만 과거 호황기에 단맛을 들여온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미루면서 외형 확대의 구태를 반복하다가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의 붕괴를 스스로 재촉했다. 1997년 한보, 기아그룹 등이 잇달아 부도를 내면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급증했고 대외 신인도는 급락, 결국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에 손을 벌리는 치욕적인 경제위기가 들이닥쳤다.

이렇게 불쑥 찾아 온 경제위기로 인해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구조조정과 아울러 핵심 역량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정부도 벤처 기업 육성, 내수 경기 부양 등의 정책적 수단을 통해 IMF 체제 탈출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 같은 민ㆍ관 합동의 노력 덕에 IMF 조기 졸업에는 성공했지만, 정부 정책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벤처 버블의 붕괴, 아파트 가격 폭등, 신용 불량자 양산 등 부작용이 그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아직까지도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이다.

1990년대 한국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6.1%. 수출 규모는 1990년 636억6,000만 달러에서 1999년 1,453억8,000만 달러로 늘었다. 20세기 후반 고속 성장의 역사를 마감하던 해인 1999년의 매출액 기준 5대 기업은 현대종합상사, 삼성물산, 삼성전자, 대우, LG상사 등이었다.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 경제의 대내외 환경은 한치 앞을 더욱 내다보기 힘든 안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과다한 가계 부채, 고용의 질 악화, 소득 양극화 현상 등은 내수 부진의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익집단 간의 갈등 및 정치 불안은 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면서 국가 경쟁력의 약화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제 양극화, 산업 공동화,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 등의 골이 깊어진다는 점도 암운을 드리우는 요소다.

나라 밖으로는 브릭스(BRIC’sㆍ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인구와 자원을 많이 가진 신흥공업대국) 국가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가격 경쟁력 사이에 끼여 설 자리를 잃는 이른바 ‘넛 크래커’(Nut Cracker)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구름이 잔뜩 낀 현 경제 상황에 돌파구는 과연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단 정부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여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회복시키는 한편, 각종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기업들이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스피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 놓으면 금고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40조원에 달하는 현금도 자연스레 흘러나와 투자로 이어지고, 경기도 함께 살아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업들에게도 녹록치 않은 과제가 있다. 21세기 들어 급진전되고 있는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와 지식정보화의 가속화라는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구태의연한 경영 방식으로는 앞으로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희수 백상경제연구원 원장은 “급변하는 세계 경제환경에서 기업이 살아 남으려면 ‘소프트 랜딩’ 능력은 필수”라며 “동태적이고 다이내믹한 공격경영을 하되, 조직을 끊임없이 외부 환경에 적응시켜 가는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갖춰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백상경제연구원 - 중립적 정책대안 제시로 특성화
해외파 박사 등 실력파 연구인력 포진한 한국의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의 브루킹스 연구소를 향하여.’

한국일보ㆍ서울경제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원장ㆍ정희수)은 2002년 10월 언론사 산하 경제연구소로는 국내에서 최초로 설립된 기관이다. 미국 민주당의 싱크탱크로서 세계적 명성을 가진 ‘브루킹스 연구소’를 벤치마킹의 모델로 삼은 백상경제연구원은 경제ㆍ정책 분야 전반에 대한 종합적이고 공정한 연구 활동을 표방하고 있다.

백상경제연구원은 특히 정부출연 혹은 민간설립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과감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대부분 경제연구소와는 달리, 언론사 부설 기관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는 특성화 방침을 갖고 있다.

경제정책센터, 지역정책센터, 경영컨설팅센터, 글로벌리서치센터, 인재개발센터, 사회교육센터 및 지식경영실 등 6센터 1실의 조직체계를 가진 백상경제연구원은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각 부문별로 뚜렷한 업적을 내고 있는 중이다.

또한 콘텐츠의 질적 경쟁력이 관건인 언론사와 지식정보를 교류함으로써, 한국 언론 발달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부대 효과도 적지 않다.

그 핵심은 역시 만만찮은 능력과 경력을 보유한 연구 인력들이다. 먼저 연구원을 조기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정희수 원장은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대우경제연구소와 포스코경영연구소 등에서 요직을 역임한 실력파 연구인이다.

정 원장은 특히 지방자치제가 열렸던 1990년대 중반부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연구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이 분야에서는 손에 꼽히는 전문가로 통한다. 정계ㆍ재계ㆍ관계 등에 걸친 폭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백상경제연구원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파 박사들이 다수 포함된 연구진 또한 백상경제연구원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주춧돌이다. 정희수 원장은 “백상경제연구원은 언론사의 싱크탱크 역할과 함께 중립적이고 제대로 된 경제연구기관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며 “사회교육, 인재교육 등을 통한 잠재 독자에 대한 이미지 제고 등 무형의 가치 창출도 적지 않다”고 현황을 밝혔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10-14 11:31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