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렬 서울대 교수(자연과학대학 해양연구소장)

[특별기고] 단 하나뿐인 지구
김경렬 서울대 교수(자연과학대학 해양연구소장)

탐사 로봇 ‘스피리트’와 ‘오퍼튜니티’가 화성에 안착하여 화성 탐사에 나선 지 2005년 1월 4일로 1년이 되었다. 이들이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2004년의 중요한 세계 뉴스였다. 혹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물이 흘렀다 마르기를 반복한 흔적들을 찾아내 지구로 전송해 준 사진들은 언젠가 화성에 생명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생명이 있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중한 물이긴 하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때론 위력을 발휘하면서 막대한 파괴력 또한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전지구인들은 지난 크리스마스, 인도네시아 부근 남아시아에서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7개월이나 되는 긴 장정을 통해 멀리 화성에까지 정확하게 로봇을 보내 그 곳을 탐사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류이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인류의 현주소를 분명히 실감시켜 준 사건이었다.

지금부터 40년도 채 안 되는 1968년, 사람이 달 표면에 첫 발을 막 디디려던 때에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과학자들이 마치 종교적 개종을 하는 것처럼“판구조론”이라는 지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지구는 오늘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온 불변의 작품이라는 것이 당시까지의 주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제 지구의 표면 약 100km정도는 판이라고 불리는 10여개의 조각으로 쪼개져서 서로 움직이면서 지구의 모습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온 것이다. 이런 두꺼운 판들이 서로 만나고 비벼대는 경계들이 조용할 리가 없다. 바로 이런 곳에서 지진이며 화산폭발과 같은 엄청난 자연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판구조론으로 새롭게 무장한 지구과학자들은 지구를 다시 보면서 “유레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재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지진이 인도네시아 지방이나 우리 이웃에 있는 일본에 왜 많을 수밖에 없는지? 아시아 대륙의 중앙에는 왜 지구의 지붕인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지? 이런 질문들은 그 이전까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조물주의 영역이었다.

지구를 과학의 눈으로 보다
태양 주위를 도는 여러 행성은 지금부터 약 46억 년 전 태양과 함께 태어났다. 그런데 이들 행성 중 유독 지구만이 생명의 행성으로 진화하였다. 지구는 왜 이런 특권을 가진 것일까?

처음에는 물론 종교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프톨레미의 천동설로 대표되는 우주관이 당연한 해답이었다. 사람들은 신의 특별한 은총 아래 태어났으며, 당연히 사람들이 사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1610년 갈릴레오의 망원경이 처음으로 하늘로 향하기 시작한 뒤, 코페르니쿠스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던 지동설이 천동설의 자리를 밀어내면서 지구는 태양에게 그 중심의 자리를 내어 주었다. 지구를 보는 눈이 종교에서 벗어나 과학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첫 걸음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1924년 안드로메다 성운이 당시 우주의 끝이라고 여겨졌던 우리 은하수 훨씬 너머에 있으며 우리 은하수는 그저 우주 속의 하나의 작은 은하라는 것을 허블이 밝혀내면서 지구의 위치는 더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1929년 같은 허블이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의 모습을 관측하면서 지구는 빛의 속도로 150억년이나 가야 끝이 보일 엄청난 우주 속에 있는 더욱더 초라한 하나의 작은 행성으로 자리매김 됐다.

과학의 혁명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의 저서는 1835년에야 금서에서 해제됐고, 그 자신도 1992년에 와서야 바티칸의 고백을 통해 1633년 열렸던 종교재판 판결에서 공식 사면됐다. 지구가 조물주의 특별한 은총임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사람들 속에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지구가 신의 은총이냐 아니냐는 개개인 스스로 선택할 일이지만, 그래도 지구는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축복 받은 행성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지진·화산 활동은 지구 생명의 증거
지구를 생명의 행성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지구가 적절한 크기를 가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적절한 거리에 있는 것이다. 적절한 크기를 가지고 있기에 지구를 따뜻이 감싸주는 대기를 붙잡아둘 수 있었다. 바로 온실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적절한 거리에 있었기에 금성같이 너무 뜨겁지 않고 화성과 같이 너무 춥지 않은 적당한 온도의 ‘물의 행성’이 될 수 있었다.

적절한 크기를 가졌기에 지구는 지금도 판 구조 운동을 하고 있다. 우라늄처럼 방사성 동위 원소의 붕괴에서 나오는 열이 에너지원으로 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크기가 작아 땔감이 부족했던 화성은 내부가 이미 식어 버려 지구조 운동을 그만둔 행성이다.

그리고 녹아있는 철이 지구 안에 자리를 잡으면서 하나의 거대한 자석이 되어 탄탄한 자장의 방패막을 지구 주위에 만들었다. 지구자석은 판의 운동으로 인한 지진과 같은 불행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에너지의 입자들이 지구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 지구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은총이기도 하다. 지진이나 화산 활동은 지구를 생명의 행성으로 보장해주는 요긴한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염려는 복 받은 생명의 행성인 지구를 사람들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1988년 TIME지는 올해의 인물 대신 ‘올해의 행성, 지구’를 커버로 장식했다. ‘위험에 빠진 지구’라는 부제가 설명하듯 갈수록 우려되는 급격한 지구 환경 변화를 경고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 현상이 대표적인 염려 중의 하나이다.

온실 효과는 지구를 생명의 행성으로 만드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화석 연료를 사용하면서 대기로 방출한 탄산 가스가 지구를 더욱 덥게 만들면서 지구를 재앙 속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이번 지진 해일로 피해를 입었던 평균 고도 1.2m의 몰디브는 지구가 더워지면 해수면이 상승하여 나라 전체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이미 경고되어 왔던 나라중의 하나이다.

재앙 부르는 지구온난화
천재(天災)는 어쩔 수 없는 인류의 지병으로 알고 훌륭한 지구과학자들을 키워 지구의 이해를 높이며 적절한 경고 체계 등을 구축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인재(人災)라면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노력을 기울여 막아야 한다. 내달 발효를 앞둔 교토의정서는 바로 그 방안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의정서 제정 당시 다행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당장은 감축 의무를 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 9위 탄산가스 배출국으로서 앞으로 사정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탄산가스의 감축이 어려운 이유는 탄산가스가 바로 에너지이며, 탄산가스 감축은 바로 에너지의 감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깨끗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더욱 지속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이와 함께 우리 생활에서 지구를 생각하면서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로 하는 생활을 습관화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의 몫이다.

섬나라 몰디브는 이번 사건으로 큰 피해를 봤지만 그 동안 보호에 힘썼던 섬 주위의 산호초 덕에 일차적으로 밀려 오는 해일을 막아 그 피해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자연을 아끼고 가꾸는 마음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기쁜 소식이다. 화성에 옛 생명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 곳은 역시 지구뿐이다. 단 하나뿐인 소중한 지구를 후손들에게 곱게 물려주는 것 역시 우리들의 몫이라는 소박한 생각이 더욱 절실히 느껴지는 때인 것 같다.

입력시간 : 2005-01-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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