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 '수출 한국' 첨병"새 돌파구 마련" 총력작전기존 역량 바탕 물류·IT 등 신사업 찾기 골몰

[종합상사 다시 뛴다·上] 영욕의 30년
내리막길 '수출 한국' 첨병
"새 돌파구 마련" 총력작전
기존 역량 바탕 물류·IT 등 신사업 찾기 골몰


1970년대 어느 무렵 삼성물산 영업맨이 오일 달러를 벌기 위해 중동 바이어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75년 5월, ‘수출입국’ 대한민국의 꿈을 실현해 나갈 주역이 탄생했다. 당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처음 간판을 내건 ‘종합상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경제대국 일본의 ‘총합상사’를 본뜬 종합상사는 이후 한 세대 동안 수출 한국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비누에서 미사일까지’라는 말처럼 해외에 내다팔 수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조리 수출했고, 종합상사의 촉수인 상사맨들은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그러는 동안 한국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이제 세계 10위의 무역 규모를 자랑하는 경제 강국이 됐다. 한 세대가 지났지만, 수출은 여전히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임에는 틀림없다. 또 앞으로도 수출의 이 같은 위치는 지속될 것이다.

종합상사 30년, 그들이 남긴 공과는 무엇이고, 현재의 모습은 어떠하며,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수출 한국' 선봉장
베이루트에 근무할 때다. “군복을 사야겠는데 경험이 있습니까?” “아, 군복 말입니까? 우리는 섬유를 전문으로 다루는 회사입니다. 본사에는 군복 전담과까지 있으니 염려말고 이야기 해보세요.” 태연한 척 큰소리 쳤지만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우리 회사에서 섬유류를 취급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군복 전담과는 없었을 뿐더러 군복이 무역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다.

그 때 문득 코트라(KOTRAㆍ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군복 몇 벌이 굴러다니는 걸 본 기억이 났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군복 한 벌을 얻어서 다시 장사꾼을 만나 샘플로 제공했다. 군복을 살펴본 장사꾼은 사우디 군부에 식품을 조달하는 납품업자 한 사람을 소개해줬다. 알고 보니 그 업자는 사우디 군부에 군복을 납품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샘플로 내놓은 군복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남의 군복 한 벌이 1년 뒤에 1억 달러짜리 계약의 행운을 가져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우디 101 프로젝트’는 성공했고, 처음에 거짓말로 꾸며댔던 군복 전담과도 본사에 생겨났다. 군수 물자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특수사업본부가 설치된 것이다.

주식회사 벽산의 김재우 사장이 1975년 무렵 직접 겪은 ‘무용담’이다. 당시 삼성물산 과장이었던 그는 레바논의 수도로 서아시아 굴지의 교역 중심지인 베이루트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김 사장의 에피소드는 팔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판다는 상사맨들의 거침없는 기질과 집요한 근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82년 수출의 날에 '20억불 수출탑'을 수상하고 있는 당시 삼성물산 경주현 사장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종합상사에 다닌다고 하면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혔죠. 그만큼 종합상사에는 유능하고 젊은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상사맨들은 5대양 6대주에 걸쳐 시장을 고생스럽게 개척하고 다녔지만 수출 역군으로서 뿌듯한 자긍심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임재원 중소기업진흥공단 수출자문위원의 회고다. 그는 ㈜선경(SK네트웍스의 전신)에서 만 20년을 근무한 뒤 1993년 퇴직한 베테랑 상사맨이? 지금은 자신의 과거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무역 업무에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들을 도와주고 있다.

임 자문위원은 “1억 달러 수출에 목을 맬 정도로 나라가 어려울 때 종합상사가 수출 드라이브의 전위대로 나섰다”며 “종합상사가 한국 경제와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수출 전위대, 시장 개척자로서 종합상사의 역할은 그들의 발旻肉【?쉽게발견할 수 있다. 종합상사는 아프리카, 중남미의 오지뿐 아니라 적대국이나 심지어 전쟁터에도 돈을 벌러 달려갔다.

현대종합상사의 이라크 시장 공략 일화는 좋은 사례다. 1980년대 초 정정(政情) 불안이 이어지던 중동. 이라크는 친북 성향의 국가로, 한국인에게는 아주 배타적이었다. 더구나 1980년 9월에는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터져 현지 상황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종합상사는 미래를 내다보고 오히려 시장 진출을 서둘렀다. 마침내 1981년 2월 아직 포성이 멈추지 않은 바그다드에 지사를 설립했으나 초기에는 애를 많이 먹었다. ‘대한민국 회사들과의 일반 교역을 모두 금지한다’는 이라크 정부의 방침 때문에 3개월 동안 단 1달러 어치도 수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인 법이다. 전쟁 상황임을 감안해 군수물자 조달본부를 끊임없이 두드리던 현대종합상사에게 이라크 당국은 결국 문호를 개방했다. 이후 ‘바그다드 페어’에 대규모 전시관을 열었을 때는 후세인 당시 대통령이 방문할 정도로 인정 받았다. 지사 설립 1년 후의 매출 규모는 1억 달러 정도로, 가장 큰 계약은 군복ㆍ모자ㆍ양말 각 200만개 납품 건이었다. 하청 받은 국내 관련 업체들은 거의 1년 내내 공장을 돌려야 했다.

경제성장과 직결된 매출
종합상사의 성장은 한국 경제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종합상사의 매출 확대는 곧 경제 규모의 확장으로 직결됐다. 1970~90년대 5대 기업(납입자본 기준)에 종합상사가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종합상사가 출범하던 1975년에는 삼성물산과 대우실업(대우인터내셔녈의 전신)이 단박에 5대 기업에 포함됐고, 10년 뒤인 1985년에는 현대종합상사가 가세했다. 1999년(매출액 기준)에는 LG상사가 이름을 올려 국내 5대 기업은 종합상사들이 독차지했다.

지난 세월 수출을 선도한 것은 종합상사였다. 1980년~99년 우리나라의 연 평균 수출 증가율은 12.6%인데 비해 종합상사(현재 영업 중인 7개 회사 기준)는 16.2%였다. 무려 4%포인트 가량 높다. 종합상사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인 1998~2001년 우리나라 전체 무역 흑자 규모를 훨씬 웃도는 무역 흑자를 달성해 국난 극복에 상당한 기여를 하기도 했다.

1980년대 현대종합상사 임직원들이 동구 시장 바이어들과 자동차 수출 상담을 하고 있다.

출범 이후 가파른 신장세를 보이던 종합상사의 수출 비중이 정점을 찍은 것은 2000년이다. 우리나라 총 수출액 1,723억 달러 가운데 종합상사가 기여한 액수는 812억 달러로 전체의 47.2%에 달했다. 10년 전인 1990년의 37.7%에 비해서도 10%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 해 삼성물산과 현대종합상사는 나란히 수출 25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외형 성장은 그 때까지였다. 이후 종합상사들의 수출 액수는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수출 비중도 따라서 줄어들었다. 지난해 총 수출액에서 종합상사들이 차지한 비중은 7.6%에 그쳤다.

이런 격변에는 시대가 가져온 기업 환경 변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IMF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종합상사의 최대 강점인 해외 네트워크와 전문 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우(대우인터내셔널의 전신)의 경우 그룹의 패망으로 인해 막강한 영업력을 자랑하던 대우맨들은 대거 흩어지고 해외 영업망도 상당 부분 무너졌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의 고도 발전도 종합상사에게는 힘든 상대였다.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던 정보력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벌의 계열 분리가 가속화하고 계열사들의 해외 마케팅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수출 대행 물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일반 제조업체들의 독자적인 해외 판로 개척 추진도 종합상사의 수출 중개자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새로운 정체성 확립할 전환기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부)는 “과거 종합상사는 해외 시장에 대한 거의 유일한 접근 경로로서 일종의 제도적 특권을 누렸다”면서 “그러나 이제 연관성이 없는 사업을 백화점 식으로 묶어서 외형만을 키우는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한다. 또 “사업별로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노력하지 않는다면 종합상사는 장기적으로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본격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시기에 진입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종합상사가 아주 쓸모없게 된 것은 아니다. 난관론 쪽에 서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종합상사 유용론을 강조한다. 榴?“경영 자원 조직, 비즈니스 모델 발굴, 제조업 지원 및 견인, 신시장 개척 등에서 종합상사의 역량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시대의 요구에 대응해 조직과 기능을 변화시켜 나간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종합상사 상(像)을 이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수출입 대행 축소와 자체 사업 확대 ▲생산 기반과 현지 판매망 구축으로 기능 복합화 ▲물류ㆍ리스크 관리ㆍ금융ㆍ조직화 등 서비스 기능 강화 ▲에너지ㆍ자원ㆍ산업설비ㆍ원부자재 수입 및 삼국간 거래 기능 강화 ▲전자 상사(e-trader) 및 IT 전문 상사로의 특화 모색 등이다. 사실상 사업 분야에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종합상사들은 달라진 기업 환경을 뼈저리게 인식, 신 사업 발굴에 골몰하고 있다. 에너지ㆍ자원 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특유의 적응력과 개척 정신으로 한계 국면을 스스로 돌파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종합상사의 무한 변신은 이제 시작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5-05-04 15:02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