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 든 예비 의과학자들의 빛난은 '4+4' 도전박사출신 교사·IT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학부 4년 대학원의 4년의 의학교육실험 선봉

국내 첫 메디컬스쿨…인천 가천의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메스 든 예비 의과학자들의 빛나는 '4+4' 도전
박사출신 교사·IT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
학부 4년 대학원의 4년의 의학교육실험 선봉


해부학 실습중인 가천의학대학원생. 임재범 기자

여느 대학이면 벌써 여름방학에 들어갔을 6월 28일 오후, 인천 길병원 내 가천의학전문대학원(총장 이성낙)의 해부학 실습실. 포르말린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네다섯 군데 실습대를 둘러싼 1학년 대학원생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부터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의 ‘큰형’까지 다양한 연령과 학문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이들 40명은 올해 첫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신입생들이다.

나이 43살로 올해 가천의학전문대학원 입학생 중 최고령자인 박봉섭 씨. 서울대 화학과 박사 출신으로 민족사관학교 교사였다. 해부 실습실에서 만난 그는 “처음엔 무모하다며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극구 말렸다”고 한다. 나이도 나이지만 1학기 등록금이 900만원에 육박하는 경제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학비 마련을 위해 요즘도 틈틈이 과외 교사 노릇도 하며 힘겨운 의학도 생활을 하고 있다.

관련기사
[인터뷰] 이성낙 가천의학전문대학원 총장
의학전문대학원 반대대학…왜?

43살 늦깎이 의학도… 도전에 만족
그가 이렇게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첫번째 이유는 소위 고령화 시대의 ‘더블 라이프’에 대한 준비로 꼽는다. ‘더블 라이프’란 평균 수명이 길어져 직장 정년 이후 20~30년간 2번째 삶을 살아야 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뜻한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는 그에게 정년이 따로 없는 의사라는 직업이 크게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박사학위까지 딸 정도로 공부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지만 “외울게 많은 해부학에 특히 애를 먹는 편”이라며 “하지만 나의 도전에 만족하고 있다”고 웃는다.

사실 만학도들이 의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은 한 둘이 아니다. 우선 전문의가 되기까지의 긴 교육 과정이다. 전문대학원 4년을 마치고도 인턴 1년과 레지던트 4년까지 끝내고 전문의가 되는 데는 9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박봉섭 씨의 경우 나이 52살이 된다.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학부 4년+대학원 4년’ 시스템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서울대 등 주요 의과대학들 역시 의학전문대학원의 문제로 이 점을 중점 거론한다.

이에 따라 교육부와 의학계에서는 대학원 졸업반 1년을 ‘서브(Sub)인턴’으로 간주하거나, 레지던트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등 교육기간 단축을 위한 묘안들을 짜내고 있으나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없는 형편이다.

해부학 교재를 들여다보는 학생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올해 32살인 또 한 명의 늦깎이 의학전문대학원생 유 모씨.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과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IT분야 벤처 사업을 하다 이번에 의학전문대학원생이 됐다. 그의 목적은 일반 의사가 아니라 생명공학 의학자다. 그는 IT분야에서 7~8년 일하다가 BT(생명공학) 사업 분야 쪽으로 진출할 목적을 가지고 의학을 공부하게 된 경우다. 이처럼 올해 첫 신입생을 뽑은 의학전문대학원에는 약사, 한약사, 연구원, 기업체 직원 등 다양한 態耽?경험을 가진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이공계 분야의 학부 전공자가 다수지만 통계학, 심지어 영문학 전공자들까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법학 등 일반 학부 전공자들에게 의학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다양한 공부를 한 의사의 양성뿐 아니라 생명공학, 의료정책, 의료행정, 의료경영, 법의학, 환경의학, 의료정보학 등 분야의 발전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의학전문대학원 당초의 취지와도 그림이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교육부와 의학전문대학원들은 미국에서 40년 전부터 시행해 온 의학박사(MD)와 철학박사(PhD)의 복합학위 MD PhD 과정을 만들어 의과학자(醫科學者) 배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의학전문대학원 전환으로 의과대 출신 학생들은 칼 같은 기강으로 유명한 선후배 개념에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 가천의대의 경우 전문대학원 준비로 2003년, 2004년에 의대 신입생을 뽑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상당수 ‘큰형님’ ‘큰누님’ 같은 나이 많은 1학년생들이 들어오자 한때 서로 어떻게 부를지 난감하기도 했었다고. 결국 30, 40대 1학년생들이 후학으로서 막내 동생 같은 의대 출신 고학년생들에게 깍듯이 ‘선배’라고 호칭하고, 선배들은 나이 많은 후배들을 ‘인생 선배’로 대하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한다.

난제 쌓인 의사양성 시스템
의학전문대학원은 미국의 메디컬스쿨과 같은 제도로 2002년에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교육 개혁의 한 축으로 로스쿨과 함께 전면 도입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일제 때부터 실시되어온 오래된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난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서울대 의대를 비롯한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명문 의과 대학의 반대다.

지난달 4일 서울대 등 주요 의과 대학들이 4년 학부과정을 마친 뒤 4년 대학원 과정을 거치는 의학전문대학원의 ‘4+4 제도’가 의사양성 기간이 너무 길다며 전문대학원 전환 신청을 거부했다. 교육부는 이들 대학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 정원의 일정비율을 고교 졸업자 가운데 ‘예비 의대생’으로 선발, 자연과학대 등에서 2년 간 학부과정을 이수 한 뒤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학부 2년+대학원 4년 제도’도 ‘4+4 제도’와 함께 부분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4+4 시스템’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현행 ‘2+4 시스템’을 병행하겠다는 것인데, 주요 의과 대학의 반발에 대한 교육부의 타협책인 셈이다.

이렇게 되자 의과 대학을 ‘4+4 시스템’의 의ㆍ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모두 전환하겠다는 교육부의 계획이 덜컹거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육부는 2008년까지 일단 기존의 의과 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을 병행하고, 2010년에 의학 교육 시스템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최근 미적지근한 행보를 미뤄 볼 때, 자칫 의학 교육 시스템을 일원화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2(예과)+4(본과)’의 현행 방식과 ‘4(학부)+4(대학원)’의 전문대학원이 양립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전국 41개 의과 대학 중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을 신청한 의과대학은 6월 현재 17개 대학이다. 그리고 11개 치과대학 중 7곳이다. 이 중 가천의대, 건국의대, 경희의대(현행 시스템과 병행), 충북의대 등 4개 의대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 올해 처음으로 신입생을 뽑았다. 그리고 내년에 경북의대, 부산의대, 경상의대, 전북의대, 포천중문의대, 2007년 이옳뇩?2008년 경희의대(완전전환), 강원의대, 제주의대, 2009년엔 중앙의대, 전남의대, 충남의대, 영남의대, 조선의대 등이 차례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한다.

의ㆍ치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먼저 의학교육입문검사(MEET)와 치의학교육입문검사(DEET)에 합격해야 한다. 시험 과목은 언어, 생물, 기초과학 등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 여부를 테스트한다. 올해의 경우 8월 28일 치러지는 시험은 학부성적, 심층면접, 영어성적, 선수과목(학부에서 미리 수강해야 하는 과목) 등과 함께 각 전문대학원은 입학생 전형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2006년도 신입생을 위한 MEET와 DEET의 원서를 접수한 결과, 30세 이상이 20% 가까이 대거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률은 MEET의 경우 2.31대1, DEET는 3.2대1로 지난해 경쟁률(MEET 5.2대1, DEET 4.9대1)보다 낮아졌다.

올해 첫 신입생을 뽑아 한 학기를 보낸 4곳의 의학전문대학원들은 시스템 전환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 첫째 이유로 학생들의 다양한 전공도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뚜렷한 목적의식을 꼽는다. 고교 졸업 후 부모의 영향에 크게 힘입어 의사의 길로 접어 든 학생들에 비해 학업 태도가 훨씬 진지하다는 점이다. 서울치과전문대학원 원장은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들을 보면 마치 사법연수원에 들어온 예비 법조인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4+4 메早첵봬靜?시행 첫해의 평가는 일단 성공적이다.


조신 차장
사진=임재범 기자


입력시간 : 2005-07-07 15:32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