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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노벨상 꿈꾸는 과학영재의 산실…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
한국과학 미래 밝힐 '샛별들' 박사교사도 수업시간엔 진땀



평균 지능지수(IQ)가 140 이상.

학술대회에서 석ㆍ박사들의 논문을 제치고 ‘우수연구자상’ 수상.

올 1회 졸업생 137명 전원이 국내ㆍ외 명문대학 이공계 합격. 한국과학기술원(KAISTㆍ88명), 서울공대(20명), 포스텍(POSTEC 포항공대ㆍ16명), 미국 유학(7명) 등 진학.

15세에 조기 졸업한 한 학생은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 명문 7개 대학 동시 합격.

‘한국과학영재학교(www.ksa.hs.kr)’의 놀라운 이력이다. 부산과학고에서 2003년 전환한 이 학교는 과학기술부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예비 과학자 육성을 위한 영재고등학교이다.

이 학교의 명성은 2006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도 입증됐다. 144명을 모집에 전국에서 2,477명이 지원해 무려 17.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빛낼 예비 과학자의 산실로 명성을 쌓은 결과다.

국가가 인정하고 지원하는 이 영재학교는 신입생 선발부터 특별하다.

선발 기준은 학교 성적이 아니라, 영재성 여부다. 일반 과학고와 달리 중학교 성적이 중위권인 학생들도 드물지 않게 합격하기도 한다.

또 중학교 1, 2학년 중에 입학한 영재도 꽤 있다. 2006년 입학자 144명 중에는 중학교 1학년생이 4명, 2학년생이 31명이나 됐다.

학생 선발은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전문가로 구성된 학생선발심사위원회가 담당한다. 학교는 학생 선발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3단계로 진행되는 영재 선발을 위한 1차 시험은 과학적 재능을 평가하기 위한 서류전형이다. 2차는 인터뷰 등을 통한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테스트이고, 3차는 학생들을 4박5일 동안 과학캠프에 참여시킨 후 최종적으로 영재성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묻는 테스트는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태양계의 행성들 모두가 어느 순간 일직선으로 설 경우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식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는가 등을 보고 영재성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또 시험에 나온 구체적인 문제나 테스트 방식은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영재교육 바람에 편승한 학원들이 악용할 것에 대한 우려 탓이다.

국내 유일의 영재학교이다 보니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 1기부터 3기까지 출신지역을 따지면 경기도가 가장 많다. 전교생 432명 중 3분의 1을 웃도는 148명에 달한다. 다음은 부산 76명, 서울 63명 순이다.

다만 과학영재학교는 지나친 남초(男超) 현상이 골칫거리다. 전교생 432명 중 여학생 수는 66명으로 남학생 366명에 비해 18%에 불과하다.

이 학교 개교 때부터 KAIST에서 파견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안정훈 교수는 “남학생 수가 월등히 많다보니 학교 문화가 남학생 중심으로 형성된다”며 여학생 입학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한 학생, 특별한 선생님

학생만큼이나 선생님들도 특별하다. 학생들의 우수성 못지않게 교원들도 질과 양에서 일반 고등학교와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총 학생 432명(학년당 144명)에 교사가 83명이다.

교사 1명이 학생 5명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20여 명의 외부 강사 등 포함하면 교사 1명당 학생 수가 4명까지 내려간다. 강의는 평균 5~7명 정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과목 신청자가 18명이 넘을 경우 반을 나눈다.

또 전문과목 교사 50여 명 중 70% 이상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이 중 KAIST에서 파견된 교수도 12명이고 모스크바대 전임강사 출신의 물리학자 등 러시아 학자도 2명 있다.

교사들 대부분은 지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연령대인 30~40대로 나이가 젊다.

이런 선생님들도 학생들 다루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라고 고백한다.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들도 철저한 준비없이 수업에 들어갔다가는 당황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학생들 중에는 ‘컴신(컴퓨터 귀신)’ ‘생물신’ 등 자칭 타칭 천재들이 많은 데다 곳곳에서 생각도 못한 기상천외한 질문과 대답이 튀어나와 수업 중 손에 땀을 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

당연히 박사학위를 가진 선생님들도 스스로 압박감을 느껴 밤을 새워 교과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교사들이 노력하는 만큼의 대우가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학교 조갑룡 교감은 “선생님들이 영재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반 학교보다 훨씬 더 많은 교과연구를 해야 함에도 경제적인 면에서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는 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지난해부터 약간의 연구비가 나오지만 일반학교의 보충수업비에도 못 미친다. 또 박사학위를 가진 계약직 전임교수의 경우는 연봉이 4,000만원~4,500만원에다 정년도 보장 안 되는 ‘비정규직’ 수준이라며 신분을 불안해 한다.

시교육청 소속의 일반 교사들의 순환보직제도도 학교 운영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파견 교수와 계약제 전임 교수와는 달리 일반 교사들은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7년까지 밖에 근무할 수 없다.

일반 학교 순환보직 연수인 5년에 비해 2년이 더 길지만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재고돼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나

우선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수업은 입시와는 무관하다. 내신도 없고 수학능력시험도 준비하지 않는다. 3년 과정을 무학년 졸업학점제로 운영한다.

교육과정은 크게 대학 수강신청처럼 학생들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해 배우는 PT(Placement Test)와 대학 학점을 미리 따는 AP(Advanced Placement), KAISTㆍ 포스텍 등 협약 대학의 교수 지도로 연구활동을 하는 R&E(Research and Education) 프로그램으로 구분된다.

1ㆍ2학년 때 진행하는 R&E는 주로 주말이나 방학 때 협력 대학에 가서 대학 연구원들과 함께 한다.

1학년은 일반 고교의 3년 과정을 압축한 필수교과를 이수하고, 2ㆍ3학년은 대학교 2년 수준의 심화과정인 선택교과를 배운다.

일반 교과는 국어ㆍ사회ㆍ외국어와 예ㆍ체능, 전문교과는 수학ㆍ물리ㆍ화학ㆍ생물ㆍ지구과학ㆍ정보과학ㆍ첨단과학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특히 교과 내용을 세분화해 개설 강좌가 무려 120개나 이른다. 그만큼 학생들은 자신만의 취향에 맞게 공부할 수 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기숙사 전경. 부산 =이성적 기자

국어와 사회를 제외하고는 전 교과의 교재는 영어 원서로, 리포트도 영어로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수업은 원리 이해를 중심을 한 탐구와 토론, 발표, 실험 중심이다.

암기 위주로 공부를 하는 일반 학교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특히 졸업반인 3학년 때에는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졸업논문 작성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번에 3학년이 된 김종욱(16)군은 “1학년 때 이미 고교 전 과정을 끝내고, 입시와 상관없이 관심분야를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또 “내신 성적 등의 경쟁이 없으니깐 자연히 친구들과 팀워크를 발휘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일반 학교와 다른 점”이라며 과학영재학교로 입학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해 했다.

R&E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박사과정 수준을 다루다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내용도 종종 있지만, 박사 형들의 생활도 미리 경험할 수 있고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실험실에서 하루 종일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과학에 미친 이들에게서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고3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전인적 과학자 양성

과학영재학교는 ‘공부벌레’가 아닌 전인적 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특별활동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과학과목이 50%를 넘는 프로그램 탓에 자칫 시민 교육적 측면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일반 학교보다 특별활동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

학생들에게 한 개 이상의 클럽에 가입하게 하고, 졸업 때까지 봉사활동 등 각종 특별활동을 3년간 120시간 이상 이수토록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특별활동 중에는 로봇축구를 하는 ENOT나 계산기하학 연구회인 Voronoi 등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클럽들이 많다. 활동 중인 클럽만도 60여 개나 된다.

이 학교 문정오 전 교장(3월 1일 정년퇴임)은 “학생들 대부분 최고라는 의식으로 살아와 개성이 아주 강하다”면서 “이런 각자의 개성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을 몸소 익히는 것이 특별활동”이라고 말했다.

‘book-smart(공부벌레)’가 아닌 ‘street-smart(거리의 천재)’로.

전인적 과학자를 추구하는 한국과학영재학교의 모토다.

[인터뷰] 문정오 전 교장

"입시 교육 全無…내신·수능서 해방"

3월1일 정년 퇴임한 한국과학영재학교 문정오(62) 전 교장. 요즘 교육계에 화제의 중심이 된 영재학교를 탄생시킨 선구자다.



문 전 교장이 2000년 부산시교육청 과학정보기술과장으로 있을 때부터 영재학교 개교를 위해 교육계 인생 후반기를 ‘올인’ 했다.

당시 설동근 부산시교육청 교육감(청와대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의 지원도 있었지만, 해외 벤치마킹 등 영재학교의 밑그림에서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 부산시교육청의 3자 협력까지 모두 문 전 교장의 확신에 찬 발품이 위력을 발휘했다.

그는 2003년 초대 교장으로 한국과학영재학교를 문 열고, 올해 1회 졸업생 전원을 명문대학에 진학시키고 명예롭게 퇴임했다.

KAIST 등 대학에 특별전형으로 입학

“이 학교는 아직 실험 중입니다. 대학ㆍ대학원 졸업생이 나와봐야 전체적인 평가가 가능하죠. 그런데 이번에 졸업생 전원이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하니까 서울, 경기 등 여기저기서 영재학교 만든다고 나서는 데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영재학교는 애초부터 명문대학에 많이 보내려고 시작한 학교가 아닌데도 모두 입시 성적으로만 평가하려 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난달 28일 부산 부산진구 백양관문로 언덕에 위치한 학교를 찾은 기자에게 문 전 교장은 걱정부터 털어 놓았다.

과학영재학교는 입시 명문도 아니고, 진학 결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학교는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없기 때문에 개교 때부터 KAIST, 포스텍 등과 협약을 통해 해당 대학 등에 특별 전형으로 입학하게끔 돼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각 지자체에서 영재학교를 만들기 시작하면 결국 불필요한 입시 경쟁을 유발하게 되고, 영재교육 취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이다.

문 전 교장은 “IQ가 150이 넘는 학생 중에는 특정 과목에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지만 나머지 과목에는 영 취미를 못 느껴 평균 이하의 학업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학생은 일반 학교에서야 문제학생이겠지만 여기서는 다르게 받아들인다”며 영재학교의 차별화된 교육방식을 설명했다. 소위 선택과 집중에 의한 교육으로 입시교육과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문 전 교장은 나아가 입시에 매달려 학생들의 개성을 못 살리고 있는 일반고도 장기적으로 영재학교 방식의 교육의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재학교를 운영해 보니 영재들 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 학생에게도 기대 이상의 교육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 풍부한 교사 인력과 시설 투자 등 재원 마련이 문제라는 것. 그는 “여기 학생 1인당 연간 투자되는 교육비가 어림잡아 1,500만원 정도 되는데, 지금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재원마련도 발상의 전환만 한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또 “대입을 위해 수능같은 시험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기억력 테스트에 그쳐서야 되겠냐”며 “앞으로 노트북을 갖고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맘껏 자신의 재능에 맞게 공부하고 있는 과학영재학교의 학생들에 반해 ‘입시지옥’에 갇힌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 풍토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이다.

문 전 교장은 퇴임과 동시에 사단법인 ‘영재교육 진흥원’ 원장으로 선임돼 앞으로도 영재교육 현장을 떠나지 않게 됐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  


입력시간 : 2006-03-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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