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8개교 3,300여 명의 미래 과학도, 노벨상 꿈 '무럭무럭'

“몇 년 전 이공계 홀대 문제가 대두되면서 과학고 졸업생들이 공대가 아닌 의대로 자꾸 진학할까 봐 걱정이 컸죠. 지금은 한시름을 놓고 있습니다.”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고 우수한 과학인력을 조기에 발견,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과학고. ‘국가 과학경쟁력의 초석 역할을 수행한다’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로 활용될 뿐이다’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과학고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하다.

특히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국가 경쟁력 하락마저 우려되면서 과학고는 더더욱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과학고는 1983년에 경기과학고가 최초로 설립된 이후 현재 전국에 18개교에 이르고 있다. 3~4년 마다 한두 개씩 늘어나는 추세가 계속되고 있는데, 단기간에 급증하거나 지금까지 한 번도 줄어 본 적은 없다.

설립 당시 학생수도 60명이었으나 이후 해마다 증가, 지금은 3,300여 명에 달할 만큼 규모도 커졌다.

97년 3,844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약간씩 증감을 반복, 지난해 3,340명에 달한 학생 수는 97년 이후 2002년까지 5년간 감소세를 보였지만 2003년 이후 다시 조금씩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원 1인당 학생수 5.7명, 교육 여건 양호

같은 특목고로 사립이 많은 외국어고와 비교해 과학고는 사립이 한 곳도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모두 국공립. 교원 1인당 학생수도 지난해 기준 5.7명으로 외국어고의 16.7명에 비해 교육 여건은 좋은 편이다.

과학고와 관련해 최근 가장 이슈가 됐던 것은 졸업생들의 의대 진학 선호 현상. 이에 대해 과학고 교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지난해 과학고의 실체를 조명하는 책 ‘이것이 과학고다’(미다스북스)를 펴낸 배희병 전 한성과학고 교장은 “그 같은 흐름이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우려되는 기세는 아니다”며 “과학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은 과학계에서 이제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과학고 졸업생 중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비율이 15~18%까지 늘어났던 것이 문제였을 뿐이지요. 지금도 의대 진학률이 10% 내외는 됩니다.”

배 전 교장은 “하지만 요즘은 입학 때부터 과학 공부를 계속하려고 맘먹은 학생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과학고 졸업생들의 의대 선호도가 떨어진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크게는 삼성 등 대기업에서 연구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공계를 우선 채용하는 등 국가정책적으로 과학자를 우대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또 의대 입시 전형 때도 과학경시대회 입상 성적을 우대해 오던 것이 2004년부터 폐지되는 등 입시 제도가 개선된 것도 한몫 한다. 의사 배출 과잉으로 의대의 매력이 예전 같지 않은 점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과학고의 역할에 대해 한국교육개발원 이광현 박사(부연구위원)는 “한국은 인적 자원이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할 국가이기 때문에 과학인재 육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런 점에서 과학고는 특목고 중 설립 취지에 가장 맞게 운영되고 있는 편”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인터넷 중등교육 온라인사이트인 엠베스트의 김유경 부장은 “과학고가 재능 있는 학생들을 길러내는 순기능도 있지만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로 주로 인식되고 있는 경향도 강하다”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김 부장은 “학부형들 사이에 과학고를 가면 서울대나 외국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더라는 얘기나 학교에서도 명문대 합격률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이 그런 세태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과학고 졸업생들의 사회 성적은 어떨까? 세계적인 과학자로는 누가 활동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가는 대목이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인물은 SK텔레콤의 최연소 상무로 주목을 받고 있는 윤송이 상무.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아직 없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이유는 과학고의 역사가 아직도 짧아서다. 처음 생긴 지 23년이나 지났다지만 고교를 졸업한 이들의 지금 평균 나이는 아직도 40대 초반. 과학적으로 큰 업적을 떨치기엔 여전히 젊은 나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과학고 출신 학생과 교수들이 몇 명 안될 줄 알았는데 20여 명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라구요. 깜짝 놀랐습니다.”

배희병 전 교장은 “해마다 수 천 명씩 배출되고 있는 과학고 출신 인재들이 외국 명문대 교수로 자리 잡는 등 이미 과학고 출신들이 학계와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인재 탄생은 이제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의 과학고 입학 경쟁률은 평균 2~2.5대1 정도. 2005학년도엔 4대1이었지만 지원자가 줄고 경쟁률도 떨어진 셈이다. 지난해 서울 6개 외국어고의 평균 입학 경쟁률이 7대1 내외였다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뒤떨어진다.

외국어고에 비해 인기가 없기 때문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중등 이러닝 시장의 강자인 엠베스트의 김유경 부장은 “과학고의 입학은 수학이나 과학 올림피아드, 각종 경시대회 입상자를 우대하는 등 다른 외국어고에 비해 시험 난이도가 더 높은 편”이라며 “때문에 입학 정보에 빠른 유명학원과 연계해 교육 컨텐츠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고의 경쟁률이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고 큰 변동이 없는 것은 시험 준비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

외고에 비해 시험 난이도 높고 경쟁력은 낮아

그래서 과학고 지원은 상대적으로 교육혜택이 많은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에게 유리한 것도 현실이다.

이광현 한국교육개발원 박사는 “영재교육원에 자녀를 보내 트레이닝을 많이 시키고 정보를 재빨리 입수하는 것이 과학고 진학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학교공부만 열심히 해서 과학고에 입학하겠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얘기다.

“한 학년이 150명이었는데 전부 다 과학 영재는 아닌 것 같아요. 학생 선발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배희병 전 교장은 “현재 학교 추천이나 경시 수상 성적, 간단한 면접고사 등에 의존하며 집필 고사 없이 학생을 뽑는 방식도 우수한 자질의 학생을 추려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도 애써 막아야만 할 사항은 아닙니다. 정도의 문제죠.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기초의학이나 의과학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거든요.”

배 전 교장은 이어 “과학고 출신 인재들을 우리나라에서 전부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하게 될 이들이 국가에 대해 책임감과 애국심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됐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재작년에서야 과학고와 비슷한 슈퍼사이언스 하이스쿨을 만들었어요. 당시 우리나라 과학고를 둘러보던 일본 사람들이 20여 년 전에 설립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탄식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들이 그동안 너무 무신경했다는 거죠.”

배 전 교장은 “앞으로 우리 나라 과학고 출신 인재들이 맹활약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