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월드컵을 통해 본 분데스리가 등 성공비결은 국내리그 활성화

K-리그 13개 구단과 프로축구연맹 마케팅 담당자들이 지난 6월 12일 2006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로 떠났다. 25일까지 13박 14일의 다소 긴 일정이었다.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중의 독일 방문이라 부러운 시선을 한눈에 받았지만 올해 특히 저조한 관중 동원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담당자들에게 마냥 신나는 출장일 수는 없었다.

한국 경기 관전도 주요 일정 중의 하나이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분데스리가 사무국과 분데스리가 1부 바이에른 뮌헨, 함부르크 SV, 헤르타 베를린 클럽을 방문, 프리젠테이션과 세미나를 통한 선진축구의 벤치마킹이 더 큰 목적이었다.

월드컵 경기 참관과 분데스리가 방문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한 여정이라 우리 참관단은 프랑크푸르트-뮌헨-라이프찌히-베를린-함부르크-하노버 등 독일 전역을 버스로 한 바퀴 돌아야 했다.

6월 12일 월드컵 첫 경기가 열리는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 유럽답지 않은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이미 도착했거나, 막 도착한 붉은악마들은 세계적인 구호가 된 ‘대한민국’을 외치며 시내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12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한 우리 일행이었지만 도착부터 상기될 수밖에 없었다. 또 바로 다음날이 한국의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인 토고전이 열리는 날 아니었던가.

13일 발트슈타디온에서 거둔 토고전 2-1 역전승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온통 붉은색으로 바꾸었고, 사물놀이를 앞세운 붉은악마 2만여 명은 밤늦게까지 중앙역과 뢰머광장을 점령해 버렸다. 붉은 옷을 차려 입은 우리 일행도 월드컵본선 원정 첫승과 16강 진출을 향한 축제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7년 이상을 축구계에서 종사한 팀 관계자들은 경기 후 맥주를 돌려 마시며 2002년과 달리 한국의 플레이에 의문을 표시하는 의견이 많았다. 이역만리까지 날아온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과 토고의 다소 비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한국의 승리로 연결됐다는 분석이 공감을 얻었다. 그래도 이겼으니 우리 일행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14일과 16일 발트슈타디온 인근의 분데스리가 사무국과 바이에른 뮌헨 구단을 잇따라 방문한 K-리그 마케팅단은 18일 ‘레즈 고 투게더’ ‘오 필승 코리아’ 등 월드컵 송으로 투지를 불태우며 버스를 달려 한국-프랑스전이 열리는 라이프치히 첸트랄 슈타디온으로 이동했다.

이날 프랑스전 1-1 무승부 못지않게 깜짝 놀란 것은 운동장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이었다. 맙소사 프랑스인보다 많은 한국인이라니!

맙소사 프랑스인보다 많은 한국인이라니!

라이프치히는 한국 여행사의 관광코스에도 없을 정도로 평소에 한국인이 거의 찾지 않는 구동독의 수도다. 그러나 지난 13일 프랑크푸르트에 집결했던 한국인과 독일거주 동포들이 이날은 모두 라이프치히로 몰려들었다. 경기 내내 프랑스 팬들을 압도했던 한국의 응원은 1-1로 경기를 마친 직후 스타디움의 모든 좌석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기차놀이로 다시 한번 장관을 이뤘다.

19일 베를린으로 이동한 우리는 헤르타 BSC 베를린 클럽을을 방문해 세미나를 가진 뒤 21일에는 함부르크 SV 클럽 방문을 마지막으로 공식일정을 마쳤다.

23일 하노버의 한국-스위스전. 독일에 온 후 빼곡한 일정 때문에 음주를 삼갔던 우리에게 이날만은 예외였다.

16강을 위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도 쌓인 피로 때문에 좀처럼 분위기가 살지 않아 한국식당에서 소주 폭탄주를 한 잔씩 돌려야 했다. 시내의 ‘다이내믹 코리아’ 홍보부스에서 작은 태극기를 하나씩 받아든 우리는 경기시작 1시간 전에 니더작센 슈타디온으로 들어가 붉은악마의 대열에 동참했다.

한국팬들은 이미 많은 숫자가 한국으로 돌아간 탓인지 본부석 왼편 1, 2층 좌석의 절반 정도만 차지할 정도였다. 응원의 강도도 조별 리그 1, 2차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한국 선수들은 강호 스위스를 맞아 녹록치 않은 기량을 보였다. 하지만 “어! 주심이 이상하다. 블래터 FIFA 회장이 스위스출신이라 휘슬이 편파적인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은 전반 선제골을 허용하더니 후반 부심과 주심의 엇갈린 오프사이드 사인으로 수비진이 혼란에 빠지며 또 한 골을 헌납하고 말았다.

같은 시각 토고가 프랑스에 이기거나 비기기를 열망했지만 들려온 소식은 프랑스의 2-0 승리와 한국의 16강 진출 실패였다. 독일까지 날아온 많은 한국 팬들은 안타까움과 허탈함을 안고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번 독일행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K-리그 활성화를 위한 벤치마킹이 이번 독일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 독일 분데스리가 2004시즌에서 우승한 브레멘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환호하고 있다. / 로이터

독일의 분데스리가는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관중이 4만 명인 세계최고의 프로축구리그다. 이처럼 탄탄한 국내리그가 독일의 월드컵 성적으로 직결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독일은 월드컵에서 3차례나 우승했고, 지난 2002년 준우승 등 4차례 2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한국처럼 자국 리그가 취약한 상황에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기적’이란 평가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분데스리가는 이미 대부분을 갖춘 선진리그이기 때문에 형식과 내용 등 모든 부문에서 보완할 것이 적지않은 K-리그 관계자들에게는 많은 부분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세미나 과정에서도 ‘독일과 한국은 축구문화가 달라 K-리그가 활성화하기는 힘들겠다’라는 한탄이 있었다.

한국적 발전모델 만들어야

하지만 환경은 달라도 지역연고에 뿌리를 두고 클럽 규모를 확대해온 분데스리가 성공의 근본요소는 K-리그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 J리그가 독일 분데스리가를 모델로 해서 단기간에 성장한 것은 유명하다.

▲ 6월 26일 새벽(한국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잉글랜드-에콰도르전에서 잉글랜드의 램퍼드와 에콰도르 카를로스 테노리오가 공중 볼다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니혼리그 시절 관중 100~200명을 겨우 동원했던 일본축구는 ‘스포츠(축구)를 통한 지역민의 행복’이라는 이념을 근본으로 한 J리그로 변신해 최근 경기당 평균관중 2만 명, J1 18팀, J2 12팀이라는 거대리그로 발전했다.

분데스리가 클럽과의 세미나 내내 대단한 열정을 보였던 일행 중 한 명은 “미리 ‘안돼’라고 부정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상황에 꼭 맞는 마케팅 전략은 어디에도 없다. 선진리그를 참고해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내면 된다”라며 이번 일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K-리그가 하루 아침에 팬들의 눈높이를 따라잡지는 못하겠지만 변화는 이미 프로축구연맹, 각 팀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월드컵에서 AGAIN 4강 신화’를 갈망해도 유능한 외국인 감독 영입만으로는 꿈을 이루는데 한계가 있다.

독일이 월드컵 때마다 좋은 결실을 거두는 것은 분데스리가라는 토양이 비옥하기 때문이다. 태극전사들이 튼튼하게 자라날 토양도 K-리그다. 그 토양에 비료를 주어야 할 사람은 프로축구연맹과 구단, 그리고 팬들이다.

이제 독일월드컵 이후의 K-리그를 주목하자.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뜨거운 축구사랑 열기가 K-리그에서도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박용철 프로축구연맹 홍보마케팅 부장 ozulumd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