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마운드의 보물… 다승·탈삼진·평균 자책점 1위,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신인 MVP도 노려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는 물론 선동열 못지않은 대투수로 성장할 수 있다.”

프로야구 한화 김인식 감독이 7월 11일 고졸 신인 류현진(19)을 평가한 말이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을 뛰어넘을 재목이라니. 왼손투수 류현진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런 말이 나왔을까.

류현진은 이날까지 11승(3패) 123탈삼진 평균자책점 2.26으로 각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최우수선수(MVP)는 물론 ‘투수 3관왕(다승ㆍ평균자책점ㆍ탈삼진)’도 가능하다.

‘트리플 크라운’은 프로야구 25년 역사에서 선동열(86년, 89년, 90년, 91년) 외에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한 대기록.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34회, 60년 역사의 일본프로야구에서는 11회밖에 작성되지 않은 진기록이다.

1991년 선동열 이후 이상훈(은퇴), 정민태(현대), 손민한(롯데) 등 쟁쟁한 투수들이 투수 3관왕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류현진이 선동열 이후 무려 15년 만에 투수 3관왕에 도전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류현진은 “트리플 크라운보다는 평생 한 번밖에 도전할 수 없는 신인왕이 더 욕심난다”며 웃었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류현진이 승리투수가 되면 “그냥 잘하는 거지, 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직구는 좋지만 커브가 나빠서…. 제구도 들쭉날쭉하고···. 허리를 사용해서 던져야 하는데 아직···.”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흘렀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5월 16일 인천 SK전에서는 직구와 변화구를 던지는 투구 자세가 달라 난타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김인식 감독의 평가는 달라졌다. 성장통을 앓으려니 했지만 오히려 단점을 하나씩 극복해 가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지금의 성장 속도에 자기 관리만 뒷받침되면 최고가 될 수 있다. 공의 위력은 원래 좋았지만 위기관리 능력과 힘을 안배하는 요령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신중한 성격의 김인식 감독이 내뱉은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프로야구 최고 투수로 발돋움하고 있는 류현진은 고교 시절에는 최고가 아니었다.

인천 동산고 3학년이던 지난해 류현진은 좌완 유망주였지만 광주 동성고 한기주(KIA), 천안 북일고 유원상(한화)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 받았다. 계약금도 2억 5,000만원으로 역대 신인 최고 계약금(10억원)의 주인공 한기주의 4분의 1에 그쳤다.

연고 구단 SK는 류현진 대신 인천고 포수 이재원을 1차 지명했다. 올해 1차 지명한 안산공고 좌투수 김광현을 뽑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SK 허정욱 스카우트는 “류현진은 잘하면 선발진에 합류할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이런 이유로 롯데도 2차 지명 1순위 1번으로 류현진 대신 광주일고 나승현을 뽑았다.

롯데 조성우 스카우트는 “류현진이 롯데에 왔다면 선발투수로 뛰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장원준(21)이라는 걸출한 왼손투수를 이미 보유한 롯데는 류현진보다 사이드암 투수 나승현을 뽑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밖에.

그렇다면 스카우트의 평가가 잘못 됐을까. 아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류현진의 성장속도가 빨랐을 뿐이다. 프로에 와서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실력이 쑥쑥 늘었다.

류현진은 지난해 시속 145㎞짜리 직구와 커브를 던졌다. 덩치(188㎝ 100㎏)에 비해 손가락이 짧은 탓에 슬라이더는 밋밋했다. 하지만 프로에 와서 직구는 시속 151㎞까지 빨라졌고, 커브와 슬라이더의 각은 날카로워졌다.

선배 구대성(37)에게 지난 4월에 배운 서클체인지업과 슬라이더는 타자를 압도하는 새로운 무기가 됐다. 실전에서 서클체인지업을 던진 건 6월 2일 수원 현대전이 처음. 이날 류현진은 승리투수가 됐고, 구대성은 그의 승리를 지켰다. 한화의 3-0 완봉승.

김인식 감독은 “투수가 새로운 구종을 던지려면 최소 1년은 걸리기 마련이다”면서 “그런데 현진이는 한 달 만에 2개의 구종을 배워 실전에서 던지니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류현진의 가장 큰 장점은 대범한 성격이다. 홈런을 얻어맞아도 아무일 없다는 듯 씩씩하게 공을 던진다. 점수를 내줘도, 패전투수가 돼도 무덤덤하다.

한화 4번타자 김태균에게 류현진의 장점을 물었더니 “현진이는 ‘꼴통’이다”고 대답했다. 실수를 저질러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꼴통’이란다. 류현진의 겁 없는 심장은 시속 150㎞를 뛰어넘는 강속구보다 더 강한 무기다.

‘겁 없는 10대’ 류현진이 무려 15년 만에 투수 3관왕을 달성할 수 있을까. 만약 투수 3관왕을 차지한다면 류현진이 프로야구 25년 역사상 최초로 신인 MVP가 되는 것도 떼논 당상일 것이다.

'싸움닭'으로 키워낸 아버지 류재천 씨

"아들 덕분에 부모가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류현진의 아버지 류재천(50)씨는 요즘 얼굴에 웃음꽃이 가시질 않는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마다 "아들이 잘 나가니 아버지가 술을 사라"는 협박(?)에 즐거운 비명이 쏟아진다. 어머니 박승순(47)씨도 마찬가지. 아들 턱을 내라는 주위의 성화에 돈을 채우기가 무섭게 지갑이 빈다.

아버지는 아들의 야구 선생님이었다. 류현진은 야구를 시작한 인천 창영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홈런을 맞을지언정 볼넷은 절대 주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좋은 투수가 되려면 타자와의 승부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은 아들에게 전달됐고, 류현진은 '싸움닭'처럼 타자와 정면승부를 즐기는 투수가 됐다.

'야구 꿈나무' 류현진은 볼넷을 내주면 아버지에게 혼났지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면 칭찬 받았다. 몸에 맞는 공은 몸쪽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점에서다. "현진아, 포볼보다는 데드볼을 주는 게 낫다. 몸쪽 승부를 즐겨야 좋은 투수가 될 수 있어, 알았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몸쪽 승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욕심이 없기는 매한가지. 아들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아버지는 야구장에서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누구보다 야구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한국 최고의 투수로 성장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