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지휘봉 잡은지 2년 만에 우승 한 풀어

▲ 정덕화 용인 삼성생명 감독 / 김지곤 기자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 끝까지 투지를 잃지 않고 싸워준 선수들이 너무나도 고맙고 자랑스럽다.”

용인 삼성생명과 천안 국민은행의 최종 챔피언결정전 5차전이 열린 7월 27일 천안유관순체육관. 삼성생명의 우승으로 막이 내리자 연방 싱글벙글하던 정덕화(42) 용인 삼성생명 감독이었지만 우승 소감을 말하려고 말문을 떼는 순간,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대전고 코치 시절인 1993년에 협회장기 우승을 이끌 때만 해도 이렇게 우승하기가 힘든 줄 몰랐다. 그 뒤 13년 만인 올해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에게 이번 여름 리그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됐다.

잡초 같은 엘리트

그의 선수 시절은 화려했다. 송도고-연세대-기아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연세대 시절엔 동기생 유재학(현 모비스 감독)과 함께 막강 공수라인을 구축하며 맞수 고려대의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86년 기아자동차 창단 멤버로 실업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80년대 허재, 강동희, 김유택, 강정수 등 기라성 같은 멤버들과 함께 기아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특히 이충희(당시 현대), 고 김현준(당시 삼성) 등을 꽁꽁 묶는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을 떨쳤다. 91년 농구대잔치에선 팀의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그러나 화려한 현역생활을 뒤로 하고 92년 은퇴한 후에는 굴곡이 심했다. 그해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고 코치를 시작으로 여자 실업팀 국민은행, 남자 프로팀 LG, 성균관대, 여자 프로팀 현대, 남자 프로팀 SBS(KT&G) 등 아마추어와 남녀 성인무대를 넘나들며 전전했다.

그 때문인지 프로 지도자 생활 10년이 넘도록 그는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5년 겨울리그까지 5시즌 연속 준우승에 그친 삼성생명의 징크스도 그의 우승을 향한 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 96년 LG에서 처음으로 프로팀 코치직을 맡았지만 2000년 5월 성적부진으로 경질, 프로의 쓴맛을 이때 처음 맛봤다.

1년 가까이 실업자 신세였다. 하지만 동시에 얻은 것도 있었다. 정 감독은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유익했던 시기였다. 공부도 많이 하고 지도자로서 내공을 쌓았고,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오뚝이 인생, 준우승 징크스 깨다

2001년 3월 마침내 기회는 찾아왔다. 바로 여자 프로팀 현대의 감독 직함이었다. 특유의 수비농구로 자기의 색깔을 펼쳐보인 정 감독은 2001년 여름리그 준우승 등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덕분에 정 감독은 2002년 남자 프로팀 안양 SBS(현 KT&G) 사령탑으로 옮길 수 있었다.

큰 기대를 가졌던 남자농구. 하지만 SBS의 성적은 의욕과 달리 신통치 못했다. 2시즌 연속플레이오프 탈락. 수비농구는 위력을 떨쳤지만 주전들의 군입대 차출로 다른 팀에 비해 전력이 너무 처진 게 문제였다. 결국 정 감독은 2004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안고 낙마했다.

그러자 우승에 목마른 삼성생명이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2년 만에 여자농구에 컴백한 정 감독은 2005년 겨울리그서 삼성생명을 5시즌 연속 챔프전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준우승 징크스는 깨지 못했다. 용병 루스 라일리가 갑자기 “계약상 미국에 가서 1경기를 뛰고 와야 한다”고 가버리더니 돌아오지 않는 기막힌 사연 속에 우리은행에 우승컵을 내줬다.

그 뒤엔 포인트가드 이미선의 예기치 못한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삼성생명은 2005년 여름리그와 2006년 겨울리그 4강 플레이오프에서 연거푸 탈락했다. 하지만 “땀의 대가는 언젠가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때를 기다린 그는 삼성생명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우승의 한을 훌훌 털었다.

화끈하지만 속 싶은 남자

▦ 정덕화 프로필

생년월일 : 1963년 2월 27일
출생지 : 서울
신체조건 : 187㎝ 84㎏
혈액형 : A형
가족관계 : 아내와 슬하에 1남 1녀
취미 : 조깅, 골프
좌우명 : 땀의 대가는 언젠가 돌아온다
출신교 : 인천 송도고-연세대
경력 : 기아 선수(1986~92년) 국민은행 코치(94년) 성균관대 감독(95~96년) LG 코치(96~2000년) 현대 감독(01~02년) SBS 감독(02~04년) 삼성생명 감독(04년~)
수상 : 대학추계연맹전 최우수선수상(85년)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상(91년) 대한농구협회 최우수선수상(92년) 중고농구연맹 지도자상(93년) WKBL 여름리그 지도자상(2001년)

그는 화끈하다. 으레 감독들은 매스컴 앞에 서면 아무래도 말조심을 하게 되기 마련. 특히 감정 기복이 곧 경기 기량으로 연결되는 예민한 여자 농구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 감독은 심지어 간판스타에 대한 앙칼진 지적도 거침 없다. 2승 2패로 승부가 원점이 된 7월 26일 챔프전 4차전 후 그는 경기 종료를 앞두고 작전타임 지시를 따르지 않고 어설픈 패스를 하다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고참 박정은을 향해서도 강하게 질타했다. “4차전은 두 노장 선수인 박정은과 이종애가 망쳤다”며 “정은이가 왜 작전타임을 요구하지 않았는지는 당사자에게 물어보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

경기 중 선수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르고, 판정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판정 불만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애매한 판정 때문에 속이 쓰려도 참아야 하지 않겠나. 남은 경기가 없으면 모르겠는데”라는 솔직한 답변에 좌중에 폭소가 터진다.

물론 정 감독의 질타 뒤의 깊은 애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도 바로 선수들이다. 박정은은 “감독님이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감독님을 포함해 동료, 선후배들이 많은 격려를 해줬다”고 말했다.

운명이 걸린 챔프전 5차전을 앞두고서는 “지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후회없는 눈물을 흘리자”는 정 감독의 따뜻한 독려에 삼성생명 선수들은 힘을 합했고, 2001년 겨울리그 이후 10시즌 만에 챔피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힘겹게 우승하니까 기쁨이 더한 것 같다.” 13년 만에 인고의 꽃망울을 터트린 정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오미현 기자 mhoh25@sportshankook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