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즌 44세이브로 한국 프로야구 25년 구원 역사 새로 써, 무명 설움·부상 시련 딛고 '세이브 왕' 우뚝… 기록사냥 시작

두산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던 진필중(LG)은 아직도 역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회자된다.

진필중은 1999년 52세이브포인트를 거두며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세이브포인트 신기록을 세웠고, 2000년에는 한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42세이브)을 수립했다. 150㎞를 넘나드는 직구와 모자챙 아래의 강인한 눈빛은 마치 군 조교의 그것과도 같은 진필중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언터처블’ 임창용(삼성)도 있었지만 2년 연속 구원왕을 차지한 진필중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다. 적어도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두 눈을 훤히 드러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돌부처’는 마침내 진필중의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웠다. ‘국보 투수’ 선동열(삼성 감독)도, 프로야구 통산 최다 세이브(227세이브)에 빛나는 김용수(KBS SKY스포츠 해설위원)도 감히 넘보지 못했던 한국 프로야구 25년의 구원 역사를 새로 쓴 선수는 삼성의 대졸 2년차 오승환(24)이다.

위기를 즐기는 촌놈, 시련에 강해지는 돌부처

오승환은 서울 대영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야구를 몰랐다. 초등학교 5학년 체력장 던지기 시간에 자그마한 체구의 그가 중학교 형들보다 멀리 던지는 모습을 지켜 본 선생님은 야구 선수가 되라고 권유했다.

도신초등학교로 전학한 오승환은 키가 작아 투수를 하지 못했다. 이어 우신중학교에 진학했고 내야수, 외야수, 포수까지 전 포지션을 경험했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야구부는 해체됐다. 우여곡절 끝에 한서고에 진학했고, 다시 경기고로 전학했지만 오승환의 이름을 알릴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명문교도 거치지 않았고, 야구복도 없었다. 부상도 끊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고, 3학년 때는 심각한 허리 부상에 시달렸다. 거기서 야구가 끝인 줄 알았다.

단국대 재학 시절 2차례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2년 동안 공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재활에만 매달렸다. 불굴의 의지와 자존심은 대학교 4학년 때 활짝 꽃을 피웠다. 오승환은 2004년 대학 춘계리그전에서 우수 투수에 선정됐고, 추계리그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선 오뚝이 오승환은 프로 입단의 꿈을 이뤘다. 지난해 계약금 1억8,000만원을 받고 2차 1번으로 삼성에 입단한 오승환이 이처럼 크게 될 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은 오승환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그에게 닥쳤던 숱한 시련들은 그를 강인한 마무리 투수로 조련하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돌 직구와 포커페이스

데뷔 초 불펜에서 중간계투로 가능성을 보인 오승환은 지난해 4월 27일 대구 LG전에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해 페넌트레이스 전반기 막판부터 권오준의 마무리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그해 7월 6일 대구 KIA전에서 주전 마무리로 첫 등판해 1과3분의2이닝을 퍼펙트로 막고 본격적인 오승환 시대를 예고했다.

붙박이 마무리로 자리잡은 오승환의 승승장구는 거침없었다. 마무리로 보직을 바꾼 지난해 7월 6일부터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10월 19일까지 오승환은 29경기에 등판해 단 4점만 허용했다. 평균자책점이 0.76이었고, 그해 7월 14일 제주 현대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은 것이 유일한 블론세이브였다.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위력적인 피칭은 계속됐다. 오승환은 WBC 2라운드(8강) 일본전에서 2-1로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9회말 1사 1루에서 등판해 2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총 4경기(3이닝)에서 1세이브를 올리며 평균자책점 0의 완벽투에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오승환의 공을 받는 포수 진갑용은 “프로야구에서 10년째 포수하면서 이런 직구는 처음”이라고 단언한다. 오승환의 직구를 홈런으로 만들어낼 타자는 없을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를 상대하는 타자들은 ‘돌 직구’라는 표현을 한다. 방망이로 돌을 때리는 싸늘한 느낌 때문이다.

스피드건에 찍힌 오승환의 최고 구속은 152㎞. 구속으로만 따지자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그런 투수는 예전에도 많았다. 오승환이 특별한 것은 공의 위력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오승환은 9회 말 2사 만루든, 여유 있게 세이브를 딸 수 있는 기회든 언제나 똑같은 표정으로 공을 던진다. 박빙의 리드를 승리로 확정지어도, 설령 블론세이브를 하더라도 무표정하게 덕아웃으로 들어간다.

선동열 감독은 “오승환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것은 마무리투수에게 어쩌면 구위보다 중요한 한결 같은 표정과 두둑한 배짱”이라고 말한다.

세계 구원 지존을 향해

지난해 중간계투로 출발해 중반부터 마무리로 자리잡은 그는 첫해 10승, 11홀드에 16세이브를 올렸다. 그리고 지난 21일 대구 한화전에서 세이브를 따내며 44세이브를 일궈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공교롭게도 오승환이 세이브 부문에서 최고 자리에 우뚝 서면서 역대 시즌 최다 세이브 10걸에서 스승인 선동열 감독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됐다. 선 감독은 일본으로 무대를 옮기기 전 마지막 해인 95년 해태에서 33세이브를 올렸다. 프로야구 연감 역대 세이브 10걸의 맨 마지막에 이름을 올라 있었다. 이제 내년 시즌 연감에는 선 감독의 이름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승환은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달성한 뒤 “앞으로 200, 300세이브 이상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기록 보유자인 김용수의 227세이브를 넘겠다는 포부다. 실제 그는 불과 1년5개월 만에 60세이브로 역대 17위까지 뛰어올랐다. 오승환이 앞으로 매 시즌 30~40세이브를 올릴 경우 약 5년 뒤 김용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오승환이라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꿈의 기록인 300세이브, 400세이브도 가능해 보인다.

이제 웬만한 ‘마무리 스타’들은 진필중처럼 ‘종전 기록 보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승환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아시아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우뚝 섰다. 1년 반 만에 마무리 역사를 갈아치우기 시작한 오승환의 신기록 사냥은 지금부터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