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파격 카드, 열도도 놀랐다'거인 4번 타자' 전통 지키려 치밀하게 구애"승짱 마케팅 감안하면 손해볼 것 없다"계산

일본의 재벌 그룹 요미우리의 계산된 전략이었일까?

이승엽(30)과 일본 프로야구계의 ‘큰손’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파격적인 4년 장기 계약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일본 매스컴은 요미우리의 예상을 깬 초고액 베팅에 대해 사뭇 놀라는 눈치다.

물론 요미우리의 4년 장기 계약 안은 협상 막판에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치밀한 계산 끝에 준비한 카드였다.

요미우리와 이승엽측이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한 9월 말 처음으로 4년 안이 흘러나왔다. 의외의 장기 계약 요구에 놀란 이승엽측이 3년이냐, 4년이냐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당시 요미우리는 4년을 전제로 총 30억엔 정도의 보따리를 풀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을 수도 있다. 요미우리는 실패 위험성을 감안해 외국인 투수에 대한 다년 계약을 할 때 지켜왔던 최대 2년 원칙을 과감하게 버린 것이다.

이승엽으로서는 3년과 4년은 불과 1년 차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다시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팬들의 입장, 그리고 현실적으로 1년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달라지는 몸값 등을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요미우리는 원래 구단 안인 4년을 관철시켰다.

연봉 규모는 일본의 요미우리 담당 기자들조차 전혀 예상할 수 없었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이승엽의 내년 순수 연봉은 6억5,000만엔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액수는 최근 이승엽의 측근을 통해 확인됐다.

연봉 이외에 1억엔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재계약금과 개인 타이틀, 홈런 수, 경기 출전 수, 타율 등에 따라 세분화된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보너스를 합하면 내년 이승엽이 챙길 수 있는 돈은 8억엔까지 뛸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1억6,000만엔에서 4억9,000만엔이 올라 연봉 인상 폭으로만 따지면 70년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 기록이다.

그렇다

면 일본 프로야구에서 불과 한 시즌만 제 실력을 보여준 이승엽이 왜 요미우리에서 10년간 최고의 토종 거포로 이름을 떨쳤던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된 것일까. 마쓰이는 일본에서의 마지막 해였던 2002년 6억1,000만엔의 연봉을 받았다.

여기에는 그룹 차원에서의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승엽은 재계약 협상을 하면서 금액과 관련해 어떤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진출과 관련된 옵션, 계약 기간 등은 어느 정도 협의를 거쳤지만 돈에 대해서만큼은 별로 토를 달 수 없었다.

이승엽이 상상을 초월하는 특급 연봉으로 4년 계약을 하자 일본에서는 이승엽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비관시하는 분위기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요미우리가 내부 원칙까지 깨가며 4년-30억엔 이상을 보장하는 대형 계약에 도장을 받아낸 것으로 봐 이승엽이 계약 기간 내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요미우리 담당 기자들과 일본의 프로야구 전문가들은 이승엽이 정말 메이저리그의 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 요미우리와 3년 이상의 장기 계약은 무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4년 계약 속에 ‘일본시리즈 우승 뒤 구단과의 협의’라는 애매한 메이저리그 진출 옵션이 일본 기자들에게도 무척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경제력에서 일본의 타 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 어느 팀에도 부러울 것이 없다는 요미우리는 최근 몇 년간 팀 안팎으로 냉랭한 기운에 휩싸이고 있다.

요미우리 경기의 평균 시청률이 한자리수로 곤두박질친지 오래이고, 전국 열도에 퍼져 있는 골수팬들의 이탈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극히 일부 선수들을 제외한 주력 선수들 대부분의 연봉이 삭감될 위기에 놓였다. 요미우리 프리미엄을 최대한 줄이고, 실력과 결과에 맞는 정확한 대우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감축 운영 분위기 속에서 요미우리가 이승엽에게만큼은 거액 당근을 싸 들고 와 필사적으로 달려든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2002년 말 마쓰이 히데키가 뉴욕 양키스로 떠난 이후 ‘4번다운 4번 타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던 것이다. 4번 타자의 이미지나 역할은 한국보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더 부각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특히 요미우리에서는 아주 특별한 구석이 있다. 그야말로 4번 타자는 늘 팀의 상징이 됐다. 그러므로 요미우리가 이승엽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가시마 시게오-제 25대, 오 사다하루(왕정치)-제 28대, 하리모토 이사오(장훈)-제 39대, 하라 다쓰노리-제 48대, 마쓰이 히데키-제 62대, 이승엽-제 70대 등 4번 타자에 순번을 매겨 기록으로 남기는 유일한 팀이 바로 요미우리다.

요미우리가 타선 개혁에 늘 애를 먹고 있는 것도 4번 타자 중심이라는 ‘전통’에 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타순의 타자들과는 달리 쉽게 길러낼 수 없는 슬러거의 특성, 그리고 요미우리의 오랜 고민을 감안한다면 올 시즌 이승엽의 영입은 결과적으로 더없이 큰 행운이 됐다.

요미우리는 이승엽을 붙드는 데 성공, 결국 향후 4년간 타선 정비의 키 포인트가 되는 4번 타자에 대한 고민 없이 개혁의 깃발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요미우리는 재정적인 출혈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다. 과거 요미우리에 5억엔 이상의 거액 연봉을 받은 외국인 타자는 로베르토 페타지니(2003, 2004년 7억2,000만엔), 터피 로즈(2004, 2005년 5억4,000만엔)가 있었지만 마케팅 차원에서 이들과 이승엽은 천양지차다. 다국적 마케팅의 가능성, 스타성 등에서 이승엽을 따라 올 수 없는 것이다.

거액의 중계권료는 물론 내년 본격적으로 막을 올릴 한국과 일본의 야구팬들을 겨냥한 ‘승짱 마케팅’을 감안한다면 이승엽과 구단 모두 ‘윈-윈’이라는 게 ‘4년 파격 계약’에 대한 요미우리의 기본적인 마인드다.


도쿄= 양정석 일본 프로야구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