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미친 인동초, 무명서 명장으로 우뚝은행원 출신… 타고난 근면에 분석력 갖춰 위업 달성

‘인동초’ 김학범 성남 일화 감독이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김 감독이 이끄는 성남은 지난 11월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삼성 하우젠 K리그 2006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수원 삼성을 2-1로 꺾고 1, 2차전 통합 성적 2승으로 올 시즌 프로축구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커홀릭’ 김 감독의 오랜 노력이 마침내 찬란한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조세 무리뉴 첼시 감독,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곧잘 비교된다. 무명 출신의 핸디캡을 딛고 명장으로서 우뚝 섰기 때문이다. 특히 무리뉴 감독은 FC 포르투의 통역으로 일하다가 세계 최고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지도자가 됐다는 점에서 김 감독과 종종 비교되는데, 김 감독의 ‘성공 신화’는 무리뉴 감독 이상으로 극적인 것이다.

은행원 출신 축구 감독

김학범 감독은 철저한 무명 출신이다. 대부분의 한국 축구 지도자들이 각급 대표팀을 거쳐 프로 구단에서 화려한 선수생활을 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김 감독은 후암초등학교 때 축구화를 처음 신었고 강릉농공고와 명지대를 거쳐 국민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인생 대부분을 축구와 함께 지냈지만 두 차례 ‘외도’를 한 이력이 있다.

1991년 현역에서 물러난 후 은행원으로 6개월여 근무했다. 김 감독은 당시 은행원 업무 시험에서 매우 좋은 성적을 받아 대리 발령을 받았고 퇴계로 지점에서 근무했다. ‘선수 출신’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타고난 근면함으로 은행 업무에도 쉽게 적응했고 예금 실적이 좋아 포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축구는 그의 운명이었는지 은행원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축구인’으로 돌아갔다. 부진한 성적에 시달리던 팀에서 긴급 호출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98년 그의 축구 인생에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국민은행 축구팀이 해체된 것. 그래서 98년 은행 업무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본점 영업부에서 과장으로 7개월간 일했다. 그러던 도중 성남 일화에서 코치직을 제의했고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다. 은행원으로서의 안정된 생활보다는 앞날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축구를 택한 것이다.

수불석권의 지도자

김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국민은행 코치 시절인 96년 올림픽대표팀에서 비쇼베츠 감독을 보좌하던 시절 ‘선진 축구’ 도입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후 틈이 나면 해외로 나가 ‘선진 축구’를 몸으로 체득했다.

김 감독은 99년부터 매년 유럽과 브라질 등으로 해외 연수를 떠난다. 우승 보너스로 선수단이 부부 동반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도 김 감독은 홀로 축구 내공 쌓기에 나섰다. 코치 시절 차경복 감독을 보좌, 2001~2003년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던 김 감독은 2005년 차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 받아 홀로서기에 나섰다. 이때만 해도 홀로서기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성남에서 코치로 오랫동안 일하며 ‘영원한 2인자’의 이미지가 자리잡은 탓도 있지만 차 감독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갈고 닦은 김 감독의 내공은 사령탑을 맡으면서 진정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김 감독은 2005년 성남을 후기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했고 올 시즌 전기리그에서도 초반부터 선두를 독주하며 우승을 차지, ‘제3의 성남 전성기’를 예고했다.

절대 강자로 꼽힌 성남은 후기리그에 주춤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FC 서울, 챔피언결정전에서 수원 삼성을 차례로 꺾고 통산 일곱 번째 챔피언에 오르며 K리그 구단 중 최다 우승 기록을 경신했다. 무명 출신으로 평생을 축구에 몸바쳐 온 김 감독의 ‘축구 외길 인생’이 찬란하게 꽃피는 순간이었다.

축구계의 신산

바둑의 이창호는 ‘신산(神算)’으로 불린다. 다른 프로 기사보다 몇 수 앞을 내보는 치밀한 분석력과 계산력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김학범 감독을 ‘축구계의 신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이 끝난 후 인터뷰에 나선 김두현은 “경기 전 감독님의 분석을 듣고 경기에 임하면 상대가 예상했던 것과 똑같이 나와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놀라운 분석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두현은 “미팅할 때마다 감독님에 대해 놀라고 다른 감독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세밀한 것까지 챙겨주시니 선수로서 플레이하기가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통찰력은 챔피언결정전에서의 선수 기용에서 그 빛을 더 했다. 김 감독은 1차전에서 장신 스트라이커 우성용을 선발로 기용했고 부진한 그를 끝까지 교체하지 않았다. 우성용은 결국 후반 43분 천금의 결승골을 뽑아내며 1-0 승리의 주역이 됐다. 2차전에서는 우성용 대신 이따마르를 기용했다. 이따마르는 1-0으로 앞선 후반 역습 찬스에서 질풍 같은 드리블로 모따의 추가골 찬스를 만들어냈고 성남은 2-1로 승리했다.

김 감독은 2차전 후 인터뷰에서 “2차전에서 지키려고 하면 어려워질 것 같아 스피드가 좋은 이따마르를 내세워 공격적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선수 기용 배경을 밝혔다. ‘신산’이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통찰력이다.

김 감독의 통찰력은 끊임없는 연구에서 비롯됐다. 그의 노력하는 자세는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이번 시즌 중에는 ‘델파이 방법을 이용한 축구 훈련 방법에 대한 내용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명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김 감독의 논문 작성에 사용한 델파이 기법은 어떤 사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복해서 물어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미래 예측 기법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니, 내다보는 수가 남들보다 몇 수 앞일 수밖에 없다.

-김학범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1960.3.1

▲출신교=강릉농공고, 명지대 체육교육과 졸업, 단국대 행정대학원 수료, 명지대 체육학 석사, 명지대 운동생리학 박사

▲프로경력=13경기 출전(1984년 슈퍼리그)

▲지도자 경력=1992~1997년 국민은행 코치, 1996년 올림픽대표팀 코치, 1998~2004년 성남 일화 수석코치 2005~현재 성남 일화 감독




김정민기자 goav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