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LG와 4년간 최대 30억원 FA 계약구단- "기량부족으로 2군 잔류… 야구규약 적용 월급 0원"진필중- "2004년 만든 규정… 소급적용 안된다" 법적 대응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상식은 프로스포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투수 진필중(35)과 소속 구단 LG가 벌이고 있는 팽팽한 ‘돈 싸움’의 출발점 역시 ‘대가를 받을 만한 일을 했느냐’이다.

핵심은 다년 계약을 하는 자유계약선수(FA)의 특성상 미래의 값어치를 미리 산정해 ‘선불’로 거액을 받는다는 데 있다. 불행하게도 대박을 터뜨린 선수들은 ‘먹튀 F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경우가 많았다.

고용자인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고심 끝에 만든 조항은 ‘일을 하지 않으면 준 돈을 되돌려 받겠다’는 것이었다.

■ 다년 계약이냐 단년 계약이냐

진필중은 KIA 소속이던 지난 2003년 말 LG와 계약금 10억원, 연봉 4억원, 옵션 4억원 등 4년 간 최대 30억원의 FA 계약을 했다. 그러나 2005년 3승에 그쳤을 뿐 첫해인 2004년과 지난해에는 1승도 올리지 못했고, 부진이 계속되면서 올시즌에는 단 1경기에도 1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2004년 신설된 야구규약 20조는 “연봉 2억원 이상의 선수가 1군 등록이 말소됐을 경우 하루에 연봉의 1/300의 50%를 감액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상으로 인한 경우는 예외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진필중은 명백한 ‘기량 미달’이 그 이유다.

이에 따라 LG는 진필중이 올해 2군에 머물렀으니 연봉(4억원)의 50%를 삭감하고, 성적 부진으로 인한 마이너스 옵션 1억원을 올해와 지난해 2년 치를 함께 제외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확히 총 4억원이기에 올해 남은 진필중의 연봉을 지급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10개월로 나눠 월급 4,000만원을 받고 있는 진필중의 월급명세서에 지난 5월부터 ‘0원’이 찍혀 나오고 있는 근거다.

진필중의 생각은 다르다. 자신이 FA 계약을 한 건 2003년인 반면 규약은 2004년에 만들어졌기에 소급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진필중은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고 최근 LG 구단에 연봉 감액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증명을 요구하면서 이번 일은 법정 공방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항에 명시돼 있지 않은 소급 적용에 대해 KBO가 간과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나진균 사무총장은 “여러 경로로 확인한 결과 무조건 선수가 승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고, 실제로 일선 변호사들 대다수가 소급 적용은 위법이라는 사실을 귀띔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건 ‘이중계약’이 존재하는 탓이다. FA와 구단들은 진필중처럼 다년 계약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KBO는 원칙적으로 1년 짜리 단년 계약만 인정한다.

KBO의 계약서도 단년 계약 양식이다. KBO의 정금조 운영팀장은 “프로야구는 출범 때부터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게 원칙이다. 진필중은 2003년에 4년 동안 계약을 했다고 하지만 FA의 특성상 다년 계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지 KBO는 매년 계약서를 새로 작성해 1년 단위로 제출한다.

따라서 삭감 규정이 만들어진 2004년 이후부터는 진필중에게도 이 조항을 적용할 근거가 충분하다. 이 점에 대해 고문변호사로부터 자문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법정에 가더라도 승산이 있다는 자세다.

■ 애매모호한 기준 vs 비양심적 행위

KBO와 선수협은 진필중의 소송을 신호탄으로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직면했다. 8개 구단 역시 같은 조항을 적용받고 있는 나머지 선수들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진필중과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선수는 이종범과 심재학(이상 KIA), 마해영(LG) 등. 특히 이 가운데 심재학과 마해영은 규약이 신설된 2004년 12월 이전인 지난 2003년 말 각각 현 소속팀과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해 진필중의 불합리하다는 주장처럼 소급적용을 받고 있다.

소급 적용 여부가 정확히 언급되지 않았을 뿐더러 KIA 심재학의 경우처럼 2군으로 갔다가 부상 회복 이후 1군으로 복귀하지 못했을 경우, 이를 부상으로 봐야 할지 부진으로 봐야 할지 해석 문제가 매끄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나 총장은 “감액 조항 자체는 큰 불만이 없다. 그러나 구단들이 이 조항을 그동안 임의적으로 악용한 사례들이 많았다. 수십만 달러를 받는 외국인 선수들은 2군에 내려가도 단 한푼도 깎지 않는 형평성의 문제, 어떤 구단은 선수를 봐줘 돈을 깎지 않고, 어떤 구단은 시즌 후 돌려주기도 하는 등 일관성 없는 부분이 많았다. 이 참에 법정 소송을 통해서라도 이 조항을 아예 없애겠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KBO는 기준의 다소 불분명함을 인정하면서도 이 조항은 ‘필요악’이라는 입장이다. 수십억원을 받는 고액 연봉 선수들이 의무는 다하지 않은 채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은 그늘진 곳에 있는 저연봉 선수들에 대한 동료애를 저버리는 것일 뿐더러 소속 구단에 대한 ‘비양심적 행위’라는 것. 명문화된 규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고액연봉선수들에 대한 채찍과 견제라는 주장이다.

조항은 2004년 12월 생겼다. 연봉 5,000만원 이하의 선수가 1군에 있으면 역시 기간 만큼 50%를 더 얹어준다는 내용을 만들어놓은 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덧붙여진’ 조항이다.

누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저연봉 선수들의 사기 진작이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규정의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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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희 기자 hhs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