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개인통산 최다홈런 금자탑… 위대한 타자이지만 스테로이드 의혹… 야구전문가·언론인 신기록 평가절하… 부시 대통령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AT&T파크를 찾은 4만3,154명의 관중들은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메이저리그의 신화 창조 현장을 목격하는 행운을 누렸다.

배리 본즈(43ㆍ샌프란시스코)가 행크 에런의 755홈런을 넘어 개인 통산 756호 홈런의 신기원을 이룩하는 순간이었다.

5회말 공격에서 본즈는 워싱턴의 투수 마이크 배식의 7구째 84마일(약 135㎞) 직구를 통타,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를 터뜨렸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한 본즈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고, AT&T파크는 열광과 흥분에 휩싸였다.

■ 약물 홈런왕인가, 진정한 영웅인가

그러나 영광으로 기억될 AT&T파크에 버드 셀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31년 간 메이저리그 홈런왕 권좌를 지켜 왔던 종전 기록 보유자 에런도 전광판의 영상 메시지로만 얼굴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AP통신은 경기 전 ‘셀릭 커미셔너가 본즈의 기록을 따라다니는 대신 주말에 금지약물조사위원회의 조지 미첼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메이저리그의 최고 수장인 셀릭이 약물의혹을 받고 있는 본즈의 홈런 기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배리 본즈가 개인통산 최다홈런인 756호 홈런을 날리는 순간.

본즈에 대한 반정서는 특히 야구 전문가들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유수의 스포츠채널인 ESPN이 본즈가 756홈런을 친 직후 전문가 7명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이들은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스테로이드로 만들어진 본즈의 기록에는 위대함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미국 언론의 싸늘한 반응은 팬과 언론에 ‘반친화적’인 본즈의 성격에도 일침을 가하는 ‘냉소’로 풀이된다. 본즈는 2001년 팀 동료 제프 켄트와 심한 불화를 겪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덕아웃에서 멱살을 잡으며 주먹질까지 했는데 당시 관계자들은 본즈 대신 켄트의 편을 들었다. 그밖에도 본즈는 수없이 팀 동료나 언론을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아 사방에 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의혹과 사실을 떠나 본즈가 분명 평범함을 뛰어 넘는 위대한 타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 그의 기복 없는 플레이와 뛰어난 선구안, 메이저리그 타자 가운데 가장 간결한 스윙을 자랑하는 방망이 솜씨 때문이다. 본즈는 홈플레이트를 밟은 뒤 가족과 자신의 ‘대부’인 윌리 메이스와 뜨겁게 포옹했다.

배리 본즈가 최다홈런 신기록을 수립한 후 환호하는 관중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그것(에런의 축하)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며 홈런왕으로부터 최고의 자리를 인정받았다는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또 “755호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이제 좀 더 많이 때리고 싶다.

신기록을 세웠지만 변한 것은 없다”며 스테로이드 파문에 항변을 하듯 격앙된 소감을 쏟아냈다.

에런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통산 홈런왕은 기술과 연륜, 그리고 결단력이 없으면 이뤄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이다. 내가 31년 간 누려 온 영광스러운 특권을 본즈에게 물려준다”고 축하했다.

본즈는 빅리그 사상 최초로 13년(1992~2004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쏘아 올렸고 수많은 고의4구 견제 속에서도 2홈런 이상을 때려낸 경기가 71게임이나 된다.

베이브 루스(72경기)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또 13시즌이나 세 자릿수 볼넷을 얻어냈다. 800g대 초반의 ‘초경량 방망이’를 들고 호쾌한 홈런을 쏘아 올리는 데는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도 150km대의 빠른 배트 스피드를 자랑하는 천부적인 타격 능력에 있다.

본즈에게 직접 축하 전화를 건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9일 “본즈의 기록에 대한 판단은 역사에 맡기자”는 말로 ‘약물 홈런왕’이라는 비난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말처럼 역사는 훗날 심판대에 오르기 마련이다. 본즈 개인의 문제로 평가될지 메이저리그사무국이 자초한 사상 최악의 약물 시대로 평가될지는 후세의 판단에 맡겨야 할 일이다.

■ 포스트 본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 유력

본즈는 대기록을 수립한 이튿날에도 757호포를 가동하며 메이저리그 역사를 연일 새로 쓰고 있다.

사실 90년대만 하더라도 에런의 기록을 깰 유력한 후보는 본즈가 아니라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내티)였다.

1986년에 첫 홈런을 때린 본즈는 99년까지 14년 동안 445개의 홈런을 쳤지만 1989년에 데뷔한 그리피는 99년까지 11년 동안 398개의 홈런을 때렸다. 당시 본즈의 나이는 35세, 그리피의 나이는 불과 30세였다.

그러나 두 선수의 운명은 2000년대 들어 엇갈려 그리피가 2000년 이 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급락한 반면 본즈는 나이를 들수록 괴력이 더해지며 홈런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4년 연속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한 2001~04년까지 본즈는 무려 209개를 추가했지만 같은 기간 331경기에나 결장한 그리피는 고작 63홈런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현실적으로 본즈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선수는 역시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다.

로드리게스는 지난 5일 캔자스시티전에서 만 32세 8일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500홈런을 작성했다. 본즈는 32세가 되던 1997년까지 374개의 홈런에 그쳤던 점을 고려하면 로드리게스의 홈런 생산 속도는 대단하다.

앞으로 꾸준히 해마다 40개 정도의 홈런을 때린다면 7, 8년 후 본즈의 기록은 물론이고 800홈런을 거뜬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은 최소 20년 이상 꾸준히 리그 정상급 타자로 활약해야 세울 수 있는 꿈의 기록이다. 베이브 루스, 행크 에런, 배리 본즈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전설’은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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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희 기자 hhs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