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리그 사실상 우승 이끌어… 야구에 너무 빠져 늘 가족에게 미안… 1위지만 긴장의 고삐 바짝 죄겠다

■ 승부란 과연 무엇인가?

프로야구 SK 김성근(65) 감독이 최근 곱씹는 화두다. 이유를 묻자 “50년 이상 야구만 했지만 아직도 야구를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근에는 장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승부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일본책을 읽는다. 한국시리즈를 눈앞에 둔 노장은 일본 장기 고수의 시각을 통해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모면할지 궁리하고 있다.

■ 야구는 9회 2사까지 승패를 알 수 없다

“SK 김성근 감독은 아직도 1위를 뺏길까 걱정할까?”

최근 야구팬에게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SK가 사실상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다”고 엄살이다. 물론 SK가 1위를 뺏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건 잘 안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지 않겠다는 자기 암시에 가깝다. 김성근 감독은 “긴장이 풀리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역전드라마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당한 어이없는 1패는 연패를 부른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다.

“LG가 9회 2사에 수비 실책으로 무너진 걸 보지 않았느냐?” 김성근 감독은 지난 7일 잠실 LG전 3-2 역전승을 거론했다. 당시 LG는 2-1로 앞선 9회초 2사 3루서 2루수 김우석의 어이없는 수비실책으로 무너졌다.

그는 “야구장에 있던 사람 모두가 LG가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우리가 이겼다. 연패는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LG는 이튿날 삼성전에서도 9회 나온 수비실책으로 승리를 놓치더니 9일에는 연장 11회 수비실책으로 결승점을 헌납했다. 당시 5승2패의 상승세로 4위 탈환을 노리던 LG는 7일 이후 1승1무5패의 부진으로 사실상 가을잔치 진출이 무산됐다.

김성근 감독은 만약의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긴장해야 한다고 했다. “누가 2위가 되냐 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냐가 중요하다.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이라니까. 한시도 방심하면 안 돼.”

■ '4강 감독'의 멍에를 벗고 생애 첫 우승 도전

김성근 감독은 ‘4강 감독’이란 꼬리표가 있다. 4강 감독은 쌍방울 등 전력이 약한 팀을 맡아 가을잔치에 이끈 지도력을 칭찬하던 말. 허나 요즘은 ‘4강까지는 가능해도 우승은 못한다’는 냉소적인 의미로 쓰인다.

지난해 SK 사령탑 물망에 오를 때도 ‘우승하려면 김성근을 선택하면 안 된다’ ‘관리야구로는 절대 우승할 수 없다’ 등 부정적인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SK를 시종일관 1위로 이끌자 ‘역시 김성근이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내가 맡았던 OB, 태평양, 쌍방울 등은 약팀이었다. 없는 살림에 잘 살려다 보니 상대 장단점을 세밀히 분석해 ‘벌떼 마운드’를 가동해야만 했다.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지지 않으려니 어쩔 수 없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시즌 초에는 전통적인 야구를 했지만 5월에 위기를 맞자 세밀한 야구를 하나 이런저런 말이 나오더라.”

김성근 감독은 요즘은 선수를 믿고 맡기는 야구와 세밀한 부분까지 관리하는 야구를 병행하고 있다. 선수를 지도하고, 전력을 분석하고, 작전을 짜는 것까지. 예전에는 혼자서 모든 걸 해결했다.

하지만 선수가 스스로 창의적인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 위기를 헤쳐나갈 힘이 생긴다는 게 김성근 감독의 생각이다.

“선수 지도를 코치들에게 맡기면 답답할 때가 많다. 내가 나서면 빨리 해결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감독을 통한 직접 관리보다는 코치를 통한 간접 관리가 이뤄져야 감독이 승부에 집중할 수 있다.

직접 관리하다가 감독이 실수하면 고비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큰 틀에서 감독, 코치, 선수가 각자 제 몫을 해내야 우승할 수 있다.”

■ 야구 감독으론 80점, 남편과 아버지로는 0점

몇 점짜리 야구감독이냐고 물었더니 김성근 감독은 “80점”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남편과 아버지로는 몇점이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빵점”이라며 껄껄 웃었다. 야구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야구에 매달렸다.

후회는 없지만 가족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와 가정에 모두 충실하고 싶지만 난 두 가지를 한꺼번에 잘할 능력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김성근 감독은 지난 60년대 한국으로 넘어왔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쪽바리’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한국에서의 삶도 고달팠다.

그럴수록 더욱 야구에 매달렸다. 투수 출신이지만 타격에도 조예가 깊은 것도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야구에 미쳤다’는 표현에는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소위 미쳤다는 말은 목적의식이 강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목적이 뚜렷하면 근성과 승부욕이 강할 수밖에. 남들이 쉴 때 훈련하고, 이기려고 준비하는 걸 굳이 부정적인 단어 ‘미쳤다’를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반문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승부욕이 강할 뿐이다.

80점짜리 야구감독은 몇 년 뒤에는 0점짜리 남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물론 좋은 남편이 되려면 한국시리즈 우승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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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