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골프의 대표 브랜드라 할 수 있는 박세리(31)가 CJ와 5년간의 스폰서십 관계를 끝내고 결별했다. 박세리와 CJ는 구랍 26일 양측의 계약 연장 협상이 결렬됐음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연봉 20억원+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이라는 조건으로 5년간 유지해 왔던 계약관계를 정리했다. 따라서 박세리는 새해부터 ‘무적(無籍)’인 상태로 미LPGA투어 11년차를 맞게 됐다.

박세리는 지난 2002년 CJ가 주최사로 참여했던 국내 유일의 미LPGA투어인 CJ나인브릿지클래식 초대 챔피언에 오르며 ‘특별한 인연’을 맺은 뒤 막바로 CJ와 후원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제일제당에서 CJ로 그룹 이름을 바꿨던 CJ는 세계적인 골프 대회 주최 및 골프 슈퍼 스타의 스폰서십을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겠다는 전략을 선택했고 2002년 중반 삼성전자와 후원 계약을 청산했던 박세리로서는 반 년 만에 든든한 스폰서를 새로 얻게 됨으로써 양측 모두 이득을 본 경우였다.

그로부터 5년. 박세리와 CJ 모두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난 5년간 대회 주최와 선수 후원에 200억원이 훨씬 넘는 막대한 돈을 투자했던 CJ는 이제 그 매력을 많이 잃은 듯하다. 이미 2005년 부터는 4차례나 치렀던 미LPGA투어 대회를 접었고 박세리의 계약 만료 시한이 가까워 오자 적당히 연장 여부를 타진하며 합의가 어려운 조건을 주고 받다가 계약을 끝냈다.

사실 CJ가 박세리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는 업계에 파다했다. 박세리는 지난 6월 미LPGA투어 맥도널드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침으로써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한 모든 조건을 충족했고 투어 현장에서 이를 축하하는 여러 세리모니를 있었는데 이 때 CJ 직원들은 단 1명도 참여하지 않았었다.

아시아권 최초로, 그리고 역대 최연소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는 엄청난 업적을 세우자 전세계 매스컴과 관계자들이 주저없이 박세리를 높이 평가했으나 정작 소속사인 CJ는 이를 외면했었기 때문이다.

서른을 넘어선 박세리를 골프 기량적인 측면에서만 평가해 가치를 매기면 예전과 같을 수 없다.

그는 투어 데뷔 첫해 메이저 대회 2승 등 모두 4승을 올리며 단숨에 세계 최고 선수의 대열에 올랐고 그 때부터 삼성전자와 계약관계에 있었던 5년간 박세리는 18승을 올렸다. 한시즌에 5승을 올린 적도 두차례(2001, 2002년) 있었고 98, 99년에는 4승씩을 기록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제까지 10년간 올린 24승 중 앞선 5년 동안 기록한 승수가 75%에 달한 것이다.

하지만 2003년 3승을 올린 이후에는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고 2004년 이후 최근 4년간은 한시즌에 1승 정도씩 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부진에 대해 매스컴 등에선 다양한 분석을 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꿈에나 그리던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자 목표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 등.

그러나 워낙 출중한 기량을 보였던 그녀였기에 그렇지 사실 2003년 이후 5년간 6승을 올린 것도 대단한 성적이다. 박세리와 라이벌 관계에 있고 그녀와 가장 근접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김미현(31 KTF)이 투어 9년간 올린 승수가 8승인 것을 감안하면 박세리의 능력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어쨌든 박세리가 골퍼 인생의 ‘내리막 라이’에 서있는 것만은 맞는 것 같다. 이제 그녀는 우리 나이로 서른 둘이다. 평범한 여자로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둘 정도는 낳았을 나이다. 체력이 전과 같을 수는 없다.

미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며 연간 30여개의 대회를 치러 내기에 힘이 부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제 골퍼로서 예전과 같은 기량을 되찾을 가능성이 아주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박세리 스스로도 알찬 겨울 훈련을 통해 올시즌을 제2의 도약기, 제2의 전성기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시즌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박세리를 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1,000만 달러에 가까운 상금으로 역대 순위 4위에 올라 있고 골프 선수 최고의 영예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 까지 한 박세리이기 때문에 이제는 단순한 성적 이상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박세리가 향후 미LPGA투어 생활을 하는 동안, ‘박세리의 성공’을 좇아 미국 땅에 진출한 40여 미LPGA 멤버들의 든든한 맏언니로서,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스타로서 단순한 성적 이상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은퇴 이후에는 한국 여자골프계의 정신적 지주이자 유망한 후배를 양성하는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할 일이 남아 있기도 하다.

모자에 새겨진 로고 노출에만 가치를 두지 않고 그녀가 이러한 ‘숙명적 임무’를 무난히 잘 해내는데 진정으로 마음을 함께 하는 새로운 동반자의 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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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윤 (주)한국프로골프투어 마케팅 부장 phy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