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행 연착륙 위한 '선동열 되짚어보기'언어부터 일상 생활까지 팀문화에 철저히 녹아 들어야동료선수와 감독에 신뢰 얻어야유인구든 스트라이크든 낮게 낮게 던져라

오승환/연합뉴스
'돌직구' 오승환의 일본행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잇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31)은 과연 일본 무대에서 얼마나 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연착륙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1997년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오른 선동열을 보고 찾아내면 된다. 시계 바늘을 16년 전으로 되돌려 보면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첫째, 문화에 녹아 들라.

'국보 투수'로 불리던 선동열은 1996년 해태에서 주니치로 이적한다. 당시 서른셋. 적지 않은 나이였다. 국내 무대에서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1시즌 동안 통산 367게임에 나가 146승40패 132세이브와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한 불세출의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주니치 시절의 선동열
1986년 24승으로 다승왕에 오르는 등 4차례 다승 1위를 차지했고, 1987년 평균자책점 0.89로 방어율 1위를 차지하는 등 8차례나 최고 자리를 지켰다. 1993년에는 31세이브를 기록하며 구원왕에도 올랐다. 페넌트레이스 MVP를 3회 수상했고, 골든글러브를 6번이나 받았다.

1996년 현해탄을 건너 나고야에 입성했다. 그러나 똑같은 야구지만 한국과 일본의 풍토가 달랐다. 치고받고 던지는 것은 다를 게 없었지만 훈련 방식이나 경기를 풀어가는 노하우엔 이질적인 요소가 많았다. 천하의 선동열도 낯설었다.

언어부터 일상생활까지 적응이 쉽지 않았다. 부상까지 겹쳤다. 2군까지 내려가야 했고, 그 해 38게임에 나갔지만 5승1패 3세이브와 평균자책점 5.50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결국 일본 무대 첫 시즌을 끝낸 뒤 가을훈련부터 '호시노식 일본 야구'를 따라갔고, 야구 외적인 장애까지 서서히 극복했다.

오승환은 현역 최고의 구원투수다. 경기고, 단국대를 거쳐 2005년 삼성에 입단해 첫 해부터 61게임에 나가 10승1패 16세이브, 11홀드에 평균자책점 1.18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올해까지 9시즌 동안 통산 444경기에서 28승13패 277세이브, 11홀드에 평균자책점 1.84를 남겼다. 2006년과 2011년에는 무려 47세이브를 따내는 등 3차례나 4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면서 아시아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관심이 높아졌다.

오승환은 내년이면 서른 둘이다. 선동열이 일본에 진출할 때와 비슷한 나이다.

둘째, 믿음을 얻어라.

선동열은 1997년 시즌 첫 등판이었던 4월4일 요코하마와의 개막전에서 3-2로 앞선 9회초 2사 3루에서 선발 야마모토에 이어 구원 등판했다. 첫 상대인 다니시케를 상대로 초구에 시속 148km짜리 직구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2구째 몸쪽으로 던진 공은 높게 날아가 포수 나카무라의 미트를 맞고 백스톱까지 굴러갔다.

그 사이 3루주자 사이키가 홈으로 쇄도했고, 선동열은 재빠르게 홈플레이트로 달려가 나카무라의 송구를 받아 주자를 태그아웃시켰다. 아슬아슬하게 시즌 첫 세이브를 올리면서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그 해 5월초까지도 호시노 감독은 선동열을 크게 신뢰하지 못했다. 1~2명 타자만 상대하는 상황에서 투입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직구는 물론 시속 130km 중반대를 찍는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낮은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능력을 되찾자 점점 상대하는 타자수와 이닝을 늘려 나갔다.

선동열은 1997년 최고의 해를 보냈다. 43경기에 나가 1승1패 38세이브와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하면서 '나고야의 태양'을 우뚝 섰다. 호시노 감독은 물론 동료 선수들에게도 강한 믿음을 준 덕에 1998년 3승 29세이브와 평균자책점 1.48을 남긴데 이어 1999년에도 1승2패 28세이브와 평균자책점 2.61를 기록하면서 당당하게 현역 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다.

호시노 감독 역시 현역 시절 마무리를 전담했던 기억이 있다. 전성기의 구위를 되찾은 선동열과 호시노 감독은 신뢰감을 회복하면서 배짱이 잘 맞았다.

오승환이 일본 프로 야구 팀에 연착륙하기 반드시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셋째, 낮은 공을 던져라.

선동열은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직구, 슬라이더, 커브 정도만 던졌다. 그래도 통했다. 직구는 총알처럼 살아 있었고, 슬라이더는 날카로웠다. 여기에다 간간이 시속 120km 중반대의 커브를 던져 타격 타이밍을 빼앗았다.

선동열의 장점은 최대한 공을 놓는 지점을 앞으로 끌고 나가 힘차게 실밭을 채준다는 것이다. 공의 회전력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리고 중심을 아래에 두고 안정적인 체중 이동과 일정한 릴리즈 포인트를 유지하는 노하우를 지녀 제구력이 뛰어났다. 타자의 무릎 높이로 홈플레이트 좌우 끝선에 걸치는 공을 던질 수 있었다. 상대 투수의 장단점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파헤치는 일본 야구에서 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오승환은 선동열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진다. '돌직구'라 불리는 오승환의 공은 시속 150km를 훌쩍 넘기곤 한다. 여기에 슬라이더를 섞고, 커브를 보여주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다만 오승환이 형성하는 스트라이크 존이 선동열보다 높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볼 끝의 움직임도 좋고, 타석에서 타자들이 느끼는 체감 속도는 더 빠르다. 그러나 일본 타자들은 메이저리거처럼 공격적이지 않다. 이것 저것 고르고 재는 경우가 많다. 유인구를 던져도 낮게, 스트라이크를 던져도 낮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이창호기자 cha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