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동네 연습장 지인들과 함께 라운드에 나섰다. 출발은 여유 있게 했으나 중도에 대화를 나누다 그만 진입해야 할 도로를 지나쳐 다른 곳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말았다. 별수 없이 한참을 달려 U턴을 해서 간신히 골프장으로 향하는 도로에 진입했으나 시간이 아슬아슬 했다. 가는 길에 해장국을 먹을 요량이었으나 편의점에서 김밥 살 시간도 없는 듯해서 그대로 골프장으로 직행했다.

차 소유주가 노련한 운전기술을 발휘해 다행히 티오프 시간 전에는 도착했으나 시간 여유가 없어 골프화와 모자만 챙겨 스타트홀로 달려 나갔다.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은 고사하고 퍼팅 연습이나 스트레칭을 할 시간도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쉰 일행은 드라이버를 뽑아들고 티샷 순서를 정한 뒤 연습스윙도 할 틈도 없이 티잉 그라운드로 올라섰다. 다행히 네 명 모두 티샷을 제대로 날렸다. 그러나 두 번째 샷부터는 거친 호흡 때문에 정교함을 잃어 겨우 한 명이 파를 세이브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홀도 불안하게 넘기며 두 사람이 파 세이브를 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운 듯했다.

마지막 동반자가 홀 아웃을 하자 나는 운동 삼아 카트로 가지 않고 지름길인 언덕으로 내달려 다음 홀로 이동했다. 그러자 한 명은 카트에 타고 나머지 두 명이 나를 따라 언덕길을 선택했다. 내 티샷은 원하는 대로 잘 날아갔으나 언덕길을 따라온 나머지 두 명의 티샷은 성에 차지 않았다.

“괜히 방형 따라 언덕길로 올라왔다가 숨이 차서 드라이브샷을 제대로 날릴 수 없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후 한번 흐트러진 호흡은 계속 게임에 영향을 미쳐 일행은 이어진 서너 홀에서 미스 샷을 냈다.

골프에서 호흡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증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티 오프 1시간 전에는 골프장에 도착하라’는 고수들의 당부는 바로 호흡안정을 위한 것이다. 라운드 중에도 호흡이 거칠어지는 일은 삼가야 한다. 볼이 러프지역으로 날아가면 동반자들의 플레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뛰어가 볼을 찾고 서둘러 샷을 날리는 경우가 많은데 노련한 고수가 아니라면 역시 거친 호흡 때문에 정상적인 샷이 나올 수 없다. 앞 홀이 비었다고 캐디가 재촉할 때도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의 동작은 금물이다.

물이 가득 담긴 유리잔을 들고 골프장의 18홀을 걸어서 돈다고 상상해보자. 온전하게 18홀을 도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움직일 때마다 물이 출렁거리고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발을 잘못 디디면 아예 물을 엎질러버리고 유리잔마저 깨뜨리기 쉽다. 실제로 골프란 물이 가득 담긴 유리잔을 들고 초원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리잔 대신 내 몸이 물 잔이 되는 것이 다를 뿐. 내 몸이 물이 가득 담긴 유리그릇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18홀을 허투루 돌 수는 없을 것이다.

거친 호흡은 신체리듬을 흩으러 놓아 평소의 샷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서너 홀이 지나야 호흡이 진정되는데 이때는 이미 스코어가 엉망이 되어버려 호흡이 진정되어도 망친 스코어를 만회하려는 또 다른 욕심으로 역시 제대로 된 샷이 나오지 않는다. 그날의 골프는 어김없이 망치고 만다.

신체적인 호흡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호흡이다. 마음의 호흡이 거칠어지면 신체적인 호흡도 거칠어질 뿐만 아니라 정신집중이 되지 않아 골프에 몰입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결코 마음의 호흡이 안정될 수 없다. 골프를 하다 보면 피할 수 없이 따라 다니는 희비애락의 감정을 적절히 소화해내야 함은 물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보다 나은 스코어와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욕심을 억누를 수 있을 때 마음의 호흡은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숨소리처럼 잔잔해질 수 있다.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