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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스포츠] '우여곡절' 박은선, 이제는 넘어지지 않는다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김명석 기자] 지난달 14일, 이천대교와 서울시청의 여자축구 WK리그가 열린 이천종합운동장. 이천대교의 선발 라인업에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7월 러시아에서 국내로 복귀한 박은선(28)이었다.

그동안 교체로만 출전해오던 박은선은 이날 처음 선발로 나섰다. 다만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로 뛰었다. 발목이 좋지 못한 가운데 경기 감각을 최대한 끌어 올리기 위한 박남열 감독의 배려였다.

그래도 골에 대한 본능은 그대로였다. 후반 8분 헤딩골을 터뜨리며 이날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박은선은 "첫 풀타임보다 첫 골이 더 기쁘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의 '또 다른 부활'을 알리는 축포처럼 느껴졌다.

▶뛰어 놀기 좋아하던 아이, 축구화를 신다

어린 시절부터 그저 뛰노는 것이 좋았다. 일찍이 태권도도 배웠고, 오빠들과 공놀이도 즐겼다. 여느 때처럼 공을 차던 옥정중 1학년 시절, 한미애 창덕여중 코치의 눈에 띄어 축구를 시작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해보겠다고 졸랐어요. 그랬더니 부모님도 결국 허락해주셨어요. 그때 아버지가 축구화를 처음 사주셨어요. 축구화를 처음 신으면서 '한 번 잘해보자'라는 목표가 생겼던 것 같아요."

결국 창덕여중으로 전학해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을 차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그러다 코치의 소개로 알게 된 서정호 당시 위례정산고 감독이 박은선의 재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감독님이 중학교 때부터 따로 지도를 해주셨어요. 중학생인데도 고등학생 언니들이 축구할 때 같이 훈련도 하고요. 중학교 중간에는 골키퍼도 해서, 골키퍼 훈련도 하고 필드 훈련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만 16세에 단 태극마크

이후 박은선은 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위례정산고로 진학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이후부터 부쩍 크기 시작한 남다른 체격 조건이 그의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리고 2003년. 박은선은 국가대표팀의 부름까지 받았다. 청소년대표팀이 아닌 성인대표팀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만 16세에 불과하던 박은선의 '파격적인' 대표팀 승선이었다.

"당시에는 휴대폰을 거의 못 들고 있었어요. 아마 (서정호)감독님이 대표팀에 발탁됐다고 전해주셨을거에요. 처음 들었을 때는 설레면서도 긴장이 많이 됐어요. 나이가 많이 어리니까 언니들만 있는 대표팀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요."

그리고 박은선은 홍콩을 상대로 4골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해 9월 여자월드컵까지 뛰었다. 이듬해 나선 19세 이하 아시아 청소년 여자선수권대회에서는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고교 졸업을 앞두자 많은 팀이 '박은선 잡기'에 나섰다. 대학·실업팀은 물론 해외팀들도 박은선의 영입을 노렸다. 고민 끝에 택한 팀은 서울시청이었다. '은사'인 서정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고, 가정형편을 고려해 대학 진학보다 실업팀 입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국내 대학 진학을 원하셨어요. 어떤 대학에서는 1년만 있어주면 실업팀으로 보내주겠다는 얘기를 한 곳도 있었고요. 이것저것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서울시청을 택했어요. 서정호 감독님이 계셨으니까요."

▶19세 박은선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

그러나 박은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징계였다. 여자축구연맹은 '고교 졸업 선수는 대학에 입학해 2년을 뛰어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박은선에게 2년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기분이 많이 상했죠. 아무것도 모르고 서울시청을 택했는데 갑자기 2년 동안 못뛴다고 하니까요. 더구나 당시 어렸던 저는 한창 배워야 할 나이였어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얻어야 했던 시기였죠. 그렇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대표팀에도 공헌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데 대표팀에서는 자꾸 박은선을 호출했다. 소속팀 경기는 못 뛰고 대표팀 경기만 뛰는 상황이 반복됐다.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서 감독을 찾아가 "대표팀에 가지 않겠다"는 얘기까지 건넸다. 방황이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 실업팀 입단 직후 박은선은 2년간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받는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팀에 반드시 진학해 2년을 뛰어야 한다는 여자축구연맹의 규정 때문이었다. 방황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화가 나서 어린 마음에 방황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에는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그런 것 밖에 없었어요. 대표팀 소집 불응도 같은 이유였어요. 내가 정말 필요하면 경기에 못 뛰게 하는 징계를 풀어주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데 소집에 불응하면 또 다른 징계를 준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징계는 중간에 풀렸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박은선은 지칠 대로 지쳤다. 방황은 계속됐고, 축구화를 신지 않는 날이 길어졌다.

"운동을 할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것 같아요. 축구 생각은 났지만, 선수로 다시 시작해야 된다는 마음은 안 들었던 시기였죠. 그래서 다른 일을 시작했어요."

▶긴 방황의 끝, 다시 축구화끈을 동여맨 이유

징계 등으로 다친 박은선의 마음은 쉽게 아물지 않았다. 결국 축구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PC방 아르바이트도 하고, 야구장에서 물품도 팔았다. 넉넉지 못했던 집안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박은선을 향한 시련이 그치지 않았다. 팀에서 이탈한지 1년이 넘어가던 어느 날 가슴이 찢어지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암 판정이었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에 갔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아버지는 네가 운동하는 걸 좋아하셨으니까 다시 하면 안 되겠냐'고 설득을 하시더라고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애석하게도 2010년 2월, 박은선은 결국 아버지를 떠나 보냈다. 그리고 아버지 장례식장에 찾아온 서정호 감독과 만났다. 이제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축구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장례식에 서정호 감독님이 오셨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감독님이 넌지시 '축구를 다시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감독님께 '열심히 해보겠다'라고 답했죠."

▶더없이 화려했던 부활, 이어진 성별논란

다시 축구화를 신었지만, 2년 가까이 쉰 공백이 문제였다.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몸을 끌어 올려야 했지만 워낙 쉰 기간이 길었다.

"'다시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컸어요. 그래도 최대한 노력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후회하지 않을 만큼 하고도 안 되면 관두는 거고, 되면 될 때까지 해보는 거고. 그런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아요."

천부적인 재능에 노력이 더해지자 공백은 금세 메워졌다. 그리고 복귀 이듬해인 2013년, 박은선은 WK리그 22경기에서 19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화려한 부활이었다.

"그때는 축구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팀 자체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서로 믿음을 가지니까 골을 내주더라도 당황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경기를 하면서도 질 것 같다는 생각보다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그러나 그해 11월 박은선은 또 다시 상처를 입었다. 소속팀을 제외한 6개 구단 감독들이 그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리그 보이콧을 선언했다. 박은선이 맹활약하자 뒤늦게 딴죽을 건 모양새였다.

당시 박은선은 SNS계정을 통해 "평소에 웃으면서 걱정해주던 분들이 저를 죽이려고 드는 것이, 처음 실업팀에 왔을 때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는 심경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안넘어진다. 지켜봐라"라고 다짐했다.

  • 박은선의 오른팔에는 새로운 날의 시작이라는 의미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2013년 12월은 성별논란이 일어난 직후이기도 하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박은선은 정말 넘어지지 않았다

다짐은 현실이 됐다. 논란을 묵묵히 견뎌낸 박은선은 이듬해 5월 9년 만에 대표팀에 다시 발탁됐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 방황하던 전과는 달랐다.

"대표팀에 다시 발탁됐을 때 기분은 참 묘했어요. 그동안 동생들이 '왜 대표팀 안 가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너 같으면 사고 친 애 부르겠냐'고 우스갯소리로 답했지만, 사실 대표팀에 많이 들어가고 싶었거든요. 발탁되고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가장 기뻐하셨죠."

이어 박은선은 8월 러시아 로시얀카로 이적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을 미리 경험해보고 싶었다. 러시아 생활은 스스로가 "몸상태가 정말 좋았다"고 표현할 만큼 괜찮았다. 다만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정상적이지 못한 몸 상태로 월드컵에 나섰다.

"월드컵 준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죠. 월드컵에 따라가더라도 제대로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윤덕여 감독님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가게 됐어요. 팀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좋은 경험을 했어요. 물론 미안했죠. 팬분들께도, 동료들께도, 그리고 윤 감독님께도."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그녀를 뛰게 하는 힘

월드컵이 끝난 뒤 러시아 생활을 정리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서정호 감독이 없는 서울시청 대신 이천대교를 택했다. 실업팀 입단 과정에서 배움의 갈증을 풀지 못했기 때문인지, 여전히 배우는 것에 대한 욕심이 컸던 까닭이었다.

"나이가 있지만 더 배우고 싶었어요. 대교는 우승도 많이 하고 실력이 좋은 팀이잖아요. 박남열 감독님도 '나를 믿어라, 네가 생각하는 것을 하도록 도와주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이천대교 복귀 이후에는 여전히 좋지 못한 발목 탓에 경기에 많이 나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해 경기 감각을 끌어 올리는 중이다. 구단 관계자가 "참 열심히 한다"고 귀띔할 만큼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팀이 추구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감독님도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저도 빨리 배우려고 노력을 하고 있죠. 과거에는 제멋대로 플레이를 했다면 지금은 팀을 위해서 뛰고 싶어요. 이제는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달라졌죠."

인터뷰 말미, 본인을 뛰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박은선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박은선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 고난과 시련을 견뎌낸 박은선이 이제는 비로소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동안 저를 지켜봐주신 분들 때문이에요. 더 잘할 수 있다고, 일어설 수 있다고 늘 응원해주셨거든요. 팬들도,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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