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박세리 키즈’들이 LPGA투어에 본격 진출하면서 태극낭자들의 위상이 급변하고 있다.

터주 대감 미국을 비롯한 북미와 유럽, 대양주 출신의 서양선수들 독무대였던 LPGA투어가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가세하면서 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장정 등의 진출로 LPGA의 색깔에 다양성을 주더니 ‘박세리 키즈’들이 대거 투입돼 우승을 쓸어 담으면서 태극낭자들은 경계의 대상으로 변했다. 매 대회 상위권의 절반을 한국 선수나 한국계 선수가 차지하고 신인상도 한국선수의 몫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태극낭자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눈부신 활약으로 LPGA투어의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태극낭자에 대항할 의욕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던 북미, 유럽의 선수들이 재무장에 본격 나서고 지구촌 곳곳에서 태극낭자들의 전철을 밟기 위해 LPGA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청어를 싱싱한 상태로 공급하기 위해 수조에 천적인 메기를 넣은 데서 유래한 ‘메기 효과(catfish effect)'를 LPGA가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태극낭자들이 LPGA투어에서 메기 역할을 훌륭히 해냄에 따라 LPGA투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켰음은 물론 일본, 중국, 타이완,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골프를 외면해온 유럽의 국가에서도 LPGA의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LPGA 주최 측도 처음엔 태극낭자들의 질풍노도 같은 기세에 미국 내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으나 세계 각지의 우수 선수들이 몰려들면서 LPGA투어가 미국만의 리그가 아닌 지구촌의 스포츠이벤트로 도약하는 전기를 맞았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누가 뭐래도 태극낭자들이 LPGA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주인공들이다.

14~17일 미국 하와이 오아후섬 코올리나 골프클럽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대회는 태극낭자들이 불러일으킨 ‘메기효과’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마지막 라운드 우승경쟁은 대개 한국선수 또는 한국계 선수와 미국선수의 대결로 압축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예측불허의 각축전으로 열기를 더했다.

우승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몰아친 호주 교포 이민지(19)에게 돌아갔지만 이민지가 돌고래처럼 솟구쳐 오르기 전만 해도 미국의 케이티 버넷, 한국의 전인지, 장수연, 태국의 모리아 주타누간, 프랑스의 조안나 클라텐 등이 근래 보기 드문 명승부를 펼쳤다.

어렵지 않게 상위권에 포진하던 박인비(공동 68위), 김효주(공동 66위), 지은희(공동 39위), 유소연(공동 39위) 등이 중하위권으로 밀려나고 최나연, 미셸 위, 유선영, 이미향, 박세리, 나탈리 걸비스, 엘리슨 리 등 강호들이 컷오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국선수들이 지배하던 LPGA무대가 한국선수도 안주하다간 추락하고 퇴출당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추격그룹의 국적을 봐도 미국 한국 일본을 제외하더라도 태국, 남아공, 프랑스, 스페인 등 다양화됐다. 공동 7위에 오른 메간 캉(19)은 국적은 미국이지만 라오스 소수민족인 몽족 출신인데, 앞으로 비슷한 사례는 계속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쯤 해서 LPGA투어에서의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된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철옹성(鐵甕城)이란 없다. 까마득히 높아만 보이던 LPGA의 성벽을 태극낭자들이 무너뜨렸듯이 태극낭자들이 쌓아올린 성벽 또한 누군가에 의해 허물어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번 롯데 챔피언십대회에서 보듯 ‘타도 태극낭자’를 외치는 분위기는 더했으면 더했지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불가피하게 태극낭자들이 차지하던 파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골프란 특정한 대회를 제외하면 개인 간의 대결이다. 유난히 국가를 앞세우는 우리 습관 때문에 많은 팬들이 개인의 기량이 아닌 국적에 초점을 맞추는 우를 범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장기간 특정 국가가 특정 종목을 독점하다시피 지배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미국선수들끼리의 리그’에 태극낭자들이 도전해 ‘태극낭자들의 리그’로 만들었지만 태극낭자 전성시대도 지속될 수 없는 분위기다.

여자골프에서만은 세계적 선진국으로 도약했으니 이제는 독점이나 지배가 아닌 공동 향유의 차원에서 파이를 골고루 나누며 지구촌 골프스타들의 경기 자체를 감상하는 길로 접어들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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