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은(24·미국이름 제니 신)이 첫 우승한 LPGA투어 텍사스 슛아웃까지 올 시즌 치러진 11개 대회 우승자들의 면면을 보면 LPGA투어에서 한국선수 또는 한국계 선수들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한국국적의 선수들이 우승한 횟수는 11개 대회 중 5개로 점유율이 45%를 살짝 넘는다. 이 정도로도 “LPGA투어가 슈퍼 KLPGA투어인가”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여기에 한국에서 태어나 이민을 간 교포의 우승을 포함하면 8개로 늘어나 점유율이 자그마치 72.7%에 달한다. 일본 국적이지만 어머니가 한국계인 노무라 하루의 우승 2회까지 포함시키면 90%까지 치솟는다.

국적을 떠나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선수들을 총칭해 ‘태극낭자’로 일컫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적지 않다. 미디어에 따라 태극낭자를 한국국적 선수에 국한시키는가 하면, 한국에서 태어나 이민 간 선수나 해외에서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선수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아직은 노무라 하루나 엘리슨 리처럼 혼혈인 경우 태극낭자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사실 그대로 부모의 어느 한쪽이 한국인이라는 정도로 밝히는 것을 보면 태극낭자의 범주를 지나치게 넓게 잡는 데는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태극낭자가 갖고 있는 이런 애매모호함 때문에 한국선수, 한국계 선수 등으로 구분하는 게 편리하고 무리가 없지만 ‘태극낭자’가 주는 정서적 공감대를 잃는다는 것은 좀 아쉽다.

4월29일부터 5월2일(한국시간)까지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라스 콜리나스CC에서 열린 텍사스 슛아웃 대회는 앞으로 다른 나라의 선수들이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들 틈에서 우승하는 일이 정말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기량이 출중한 선수가 대회 기간 중 워낙 컨디션이 좋아 우승을 꿰차는 경우는 더러 있겠지만 늘 우승권에 대거 포진하고 있는 한국선수 또는 한국계 선수들의 가열 찬 추격과 저항을 이겨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제리나 필러(31)가 한국선수와 함께 선두그룹에 끼어 선전하며 한때 3타 차이 선두로 치고 나서 올 시즌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우승한 렉시 톰슨(21) 이후 미국선수로는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듯 했으나 그녀를 추격하는 한국선수들에 포위되어 생애 첫 우승의 꿈은 끝내 좌절, 공동2위에 만족해야 했다.

첫 라운드에서 허미정 지은희 등과 함께 선두권을 형성한 제리나 필러는 3라운드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강자 스테이시 루이스, 크리스티 커 등이 좀처럼 상위권 진입을 못한 상황에서 파워나 경기력 면에서 한국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그의 앞뒤와 좌우에는 어김없이 한국선수들이 포진했다.

그것도 양희영, 허미정, 최나연, 지은희, 김세영, 이미림, 전인지. 유소연 등 LPGA투어의 대표주자나 다름없는 선수들 일색이니 제리나 필러로선 긴장되고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2타 차이 선두로 시작한 마지막 라운드에서 제리나 필러의 귀는 한국선수들의 숨소리로 채워지지 않았나 싶다. 동반자의 숨소리는 도전적이고 거칠게 들렸을 것이고, 앞선 조 선수들의 숨소리는 먹이에 접근하는 맹수처럼 조용했을 것이다.

무리 지어 추격하는 기마병의 말발굽소리, 소리 없이 접근하는 맹수의 풀잎 스치는 소리, 시위를 떠난 화살이 하늘을 가르는 소리 등이 여기저기서 들렸을 것이다.

제리나 필러가 무너지는 모습은 아프리카 동물의 왕국에서 맹수 무리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초식동물을 연상케 했다. 신지은이 아니었다면 또 다른 한국 선수가 제리나 필러를 쓰러뜨렸을 것이다.

134번의 사냥 실패를 극복하고 135번째 만에 대물을 건진 신지은에겐 ‘골프의 밀림’에서 버텨낼 전기를 만들어낸 셈이다. 9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신지은은 2006년 US 주니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할 정도로 골프기량이 출중했으나 퓨처스 투어 상금랭킹 4위로 2010년 LPGA투어에 입성한 이후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키 162cm의 왜소해 뵈는 체격에 평균 드라이버 거리 249야드로 LPGA투어 선수 중 115위에 머물고 있지만, 페어웨이 안착률(77.16%) 20위, 샌드 세이브율(79.07%) 1위, 파온 확률(71.39%) 29위, 평균 스코어(70.80) 15위 등 비교적 탄탄한 기량을 갖추고 있어 두 번째 우승도 기대된다.

너무 센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들이 대거 LPGA에 포진하면서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 청 야니처럼 우승을 휩쓰는 선수는 앞으로 구경하기 힘들 것 같다. 리디아 고, 노무라 하루, 장하나 등이 올 시즌 2승을 거두었지만 남은 시즌 기간 2~3승을 보탤 수 있을지 회의적인 느낌이 든다. 그만큼 언제나 우승할 수 있는 선수들, 특히 한국 및 한국계 우승후보 선수들이 즐비해 우승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 및 한국계 선수들에게 최대의 벽은 바로 한국 및 한국계 선수들인 시대가 된 것이다.

태극낭자가 태극낭자를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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